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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브 볼프, 이제 기쁨의 신학이다!미로슬라브 RNS 인터뷰
미로슬라브 볼프 <출처:RNS>

[미주뉴스앤조이=마이클 오 기자]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 '피로사회'에서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착취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내부로부터 오는 긍정성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끊임없는 자기개발의 강박 가운데 스스로를 착취함으로서 구원에 이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광장에선 기독교’, ‘배제와 포용’, ‘알라’ 등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의 공공성과 소통을 강조했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가 기쁨의 신학을 이야기 하는 이유이다. 후기 자본주의적 인간이 거짓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겪는 자기 학대로 부터 진정한 삶의 기쁨과 회복을 위해 참된 기쁨의 신학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볼프는 RNS (Religion News)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신학적 주제로서 ‘기쁨’을 소개하면서, 우리 삶에 있어 ‘기쁨’이 가지는 의미와 가능성, 그리고 왜 지금 기쁨의 신학이 필요한지를 설명하였다. 그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기쁨'은 무엇인지, 또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들어보자. 

다음은 RNS가 지난 5월 21일 볼프와 나눈 인터뷰 기사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예일 대학교 신학부의 ‘기쁨의 신학과 좋은 삶’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책임자로서, 어떻게 ‘기쁨의 신학’을 정의하는가?

기쁨의 신학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기쁨의 위치와 본질을 탐구하려는 신학적 노력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밝히는 과정에서 기쁨에 대해서 연구하며, 그 위치를 발견하고자 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기쁨은 행복과 어떻게 다른가? 행복이란 표현으로 해결할수 없는 부분이 있는가? 

오늘날 행복은 일반적으로 어떠한 종류든 자신이 얻는 즐거운 감정에 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기쁨은 좀더 구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될때, 그 대상과 함께 기쁨을 누린다. 기쁨은 무언가 좋은 것이 우리에게 다가올때 생겨난다. 대부분의 경우 그 좋은 것이란 자발적으로, 혹은 은혜로 다가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만족할만한 월급을 매달 받는다고 할때, 아마도 나는 ‘그렇지, 내가 일한 만큼 받는것이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것은 굳이 기쁨의 이유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연말에 예상하지 못했던 보너스를 받게 된다면, 나는 아마도 기뻐하게 될것이다. 어떤 좋은 것이 다가온 것이고, 그것이 그냥 나의 열심과 노력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기쁨이란 주제를 찾을수 있는 지점이 있는가? 특별히 눈여겨보는 성경의 이야기가 있는가? 

대표적인 성경 이야기중의 하나는 탕자의 이야기일 것이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다. 기쁨은 누가복음의 중심된 이야기이다. 누가복음의 시작부터 기쁨을 가져올 구원자의 도래를 알리는 장면이 나타난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할 때,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때 절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에 넘치는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이란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우리가 무엇을 행하거나 이루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쁨의 소식에 관한 것, 즉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이룬 무엇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올해초 다양한 전통 가운데 서 있는 다수의 학자들을 모아 기쁨과 좋은 삶에 대해서 토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것들 중 인상적인 것이 있었나? 

기쁨에 관해서 참여한 모든 전통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벗어나, 우리 자신보다 큰 무엇에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무엇이 기쁨을 가져오는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과연 기쁨 안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나’에 대한 것까지 연구해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가령 고난과 같은 것들을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에서는 어떤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는 성취감이 기쁨의 개념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성취하는 것에 대한 경쟁 의식 같은 것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폭발적인 우울증의 증가와 관련하여, ‘나는 절대로 충분히 좋은 사람이 아니야! 나는 절대로 충분히 이룰수 없어’ 라는 식의 자기비하의 감정이 이러한 성취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기쁨 <구글 이미지>

진정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는가? 아니면 기쁨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만 하나? 

누구라도 기쁨을 경험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든 적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 기쁨을 경험할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의미가 있는 지점은, ‘우리가 어떻게 기쁨의 상태를 조성할 것인가? 혹은 우리가 어떻게 다가오는 기쁨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일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나와 맺는 관계’에 훨씬 더 의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선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쁨을 풍성하게 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동시에, 뒤틀린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쁨을 질식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는 기쁨을 더욱 꽃피우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 없이도, 기뻐할수는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도 많은 기쁨을 누린다. 

기쁨은 미덕인가? 왜 그런가, 혹은 왜 아닌가? 

기쁨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사건이나 환경의 반응으로 촉발되는 감정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충만한 환희와 기쁨을 누릴수 있는 기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는 충만한 기쁨이란 기질이며, 기쁨이란 미덕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미덕을 기르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때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기쁨을 누리기가 매우 어려운 기분 가운데 있을 때가 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에게 어떤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을 때, 미칠듯이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기쁨을 누리고 우리 자신을 단순히 생존해있음이 아닌, 살아있음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기쁨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선행조건이 있나? 

예를 들어 감사나 겸손처럼 기쁨을 자라나게 하고, 기쁨 넘치는 사람으로 만들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 생태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항상 자신을 낮춤으로 인해, 그리 기쁨에 넘치는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겸손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 과도하게 집중하지 않는 상태이다.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기쁨에 열린 존재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기독교인과 유대인, 그리고 무슬림과의 대화에서부터 노동의 신학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 써왔다. 기쁨에 관해 연구하는 일이 더 쉽거나, 아니면 즐거운 일인가? 아니면 이제까지의 작업과 같이 어려운 일인가?

기쁨은 어려운 주제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주제는 지적으로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만약 기쁨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원한다면, 이 주제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사랑의 수고를 즐기고 기뻐하는 지를 아는 것이 어떻게 사랑의 경험을 즐기는지를 아는 만큼이나, 혹은 더 많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에게는 6개월된 딸이 있다. 아침 7시가 딸이 일어나는 시간인데, 내가 방으로 들어가면, 딸은 나를 보고 기뻐하며 계속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나는 ‘아,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이 아이는 나를 좋아해, 너무 사랑스러운 딸이야. 정말 행복한 삶이야’ 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기저기를 갈 때가 되었을때, 만약 내가 이 일에 짜증스러한다면, 내가 딸 아이와 느꼈던 모든 기쁨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의 수고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법을 배웠고, 계속 그 기쁨을 실행해 왔다. 내가 이 일을 딸을 위해 한다는 사실과 그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쁨을 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수고가 나의 지적 작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만약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줄수 있나?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가운데 이로운 일에 눈을 크게 뜨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마도 이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것 같다. 

원문출처: https://religionnews.com/2018/05/21/miroslav-volf-delves-into-the-theology-of-joy-a-qa/

Michael Oh 기자  michaeloh@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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