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보복 흑역사, 이번엔 끊어내자
[시론] 정치보복 흑역사, 이번엔 끊어내자
  • 지유석
  • 승인 2022.02.10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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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복’ 흑역사 일깨운 윤석열 후보 유감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고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했을 때 '가짜뉴스' 같았다. 아니, 가짜뉴스이길 바랬다. 

그의 죽음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론인으로서, 아니 이전에 한 시민으로서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덕수궁 광장 분향소를 맴돌았다. 영결식 당일엔 이른 아침에 시내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고인의 시신을 실은 리무진이 안국동 동십자각을 통과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의 죽음이 피부에 와 닿았다. 

고 노 전 대통령 시절로 시계를 돌려보자. 고 노 전 대통령은 늘 언론과 불편한 관계였다. 조·중·동 등 ‘주류’ 보수 언론은 물론 <한겨레>, <경향>등 진보 성향 언론까지 고 노 전 대통령에게 날을 세웠다. 

뿐만 아니다. 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과도 냉랭했다. 아니, 검찰이 노무현 정부를 ‘같잖게’ 여겼다는 게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을 정치에 얽매이지 않게 해주고자 했다. 그래서 집권 초 검사와의 대화도 시도했다. 검찰은 이 같은 노력을 폄하했다. 

그리고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 노무현은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서야했다. 며칠 뒤 그는 세상을 등졌다. 

고 노무현의 비극은 한 개인의 비극으로 그치지 않는다. 해방 이후 한국 헌정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이 비극의 총감독은 이명박 전 정권이었고 언론과 검찰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야당 대선 후보의 공언 “정치보복 해야죠, 돼야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보복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 중앙일보 화면 갈무리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보복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 중앙일보 화면 갈무리

고 노무현의 비극을 소환한 이유는 다름 아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때문이다. 윤 후보는 2월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라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고 답했다. 

윤 후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나 국민의힘 입장에선 지지층을 의식한 단순한 정치적 수사일 수도 있겠다. 국민의힘도 “윤 후보 사전에 정치보복이란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미 한국 정치는 고 노무현의 비극을 생생히 목격했다. 게다가 윤 후보는 검찰총장 재직 당시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며 문재인 정부와 날을 세우기도 했다.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윤 후보의 발언이 정치보복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다. 

윤 후보의 발언을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윤 후보는 정권심판을 강조해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등극할 수 있었던 으뜸 이유도 그가 정권심판(내지 정치보복)에 최적임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집권하면 정치 보복이 자행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집권하면 정치 보복이 자행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이제 대선은 한국시각 9일 기준 꼭 한 달 남았다. 여론 조사 추이를 살펴보면 윤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저간의 맥락을 살펴보면 윤 후보가 정말 집권에 성공할 경우 문재인 ‘전’ 대통령이 화를 당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대선이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이 나온다. 그러나 모든 후보를 다 싸잡아 비판하는 건 너무 안이한 인식이다. 무엇보다 정치 보복을 드러내놓고 선언하는 후보의 존재는 실로 끔찍하다.

한국 헌정사는 정치 보복으로 얼룩져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 내야 한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는, 점잖빼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비평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오전 참모회의에서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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