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자선
그리스도인과 자선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2.12.2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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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자선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선을 베풀 수 있고, 자선을 삶의 목표나 모토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자선은 그런 이름을 남길 수 없다.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그렇게 하듯이,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 가운데 남에게 보이려고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하는 일이 큰 일이 아니며 그것이 알려지는 것이 오히려 부끄럽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자선이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것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를 원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나도 그렇다. 나는 오래도록 한 고아원을 드나들면 그곳의 아이들을 섬겼다. 내가 그곳 원장님의 마음에 든 것은 내가 그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그것을 자랑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곳에 와서 아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면서 기념촬영도 하고 자신의 베푼 것을 아이들이 먹는가를 확인하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 아이들에게 직접 먹을 것을 만들어준 경우는 있었지만 내가 전한 물품이 아이들에게 배분되는 것을 확인하거나 보면서 즐긴 적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원장님은 그런 나를 좋아하셨다.

그러니 생각을 해보라. 아버지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선을 베풀고 그것을 숨긴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나는 위 말씀에서 나팔을 분다는 표현이 정말 실감난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나팔을 불곤 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그래도 그다지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 사람 축에 속했다.

사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자선에는 큰 기쁨이 있다.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 실은 기쁨이 배가 된다. 나는 지금도 내가 돕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돕는 분이 있다. 그러나 다 알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관계에는 신뢰가 자리하게 된다. 그것이 아버지에게도 그런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께서는 숨어서 그것을 보시고 그것을 갚아주신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의 갚아주심이 얼마나 풍요한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샬롬을 이해하게 되면서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님은 내가 아뢰지 않은 것까지 헤아리시는 분이시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그것까지 더해주시는 분이시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 역시 작은 일이 아니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몸값을 올려주기도 하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사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초연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정말 초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만일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정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 일을 계속하기가 어렵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은 중단될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제나 자선은 감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이 구제나 선행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아쉬워하지 말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그래서 자끄 엘륄은 그리스도인은 선전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가 하는 일들을 보라. 그들이야말로 나팔수가 되었다. 하기도 전에 나팔을 불어 자신들이 하는 일에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그것으로 물품과 돈을 끌어 모은다. 그러나 돈에는 장사壯士가 없다.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돈에 함몰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부자들의 편에 서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 아는가. 부자들의 편에 서면 확실히 유리한 점이 있다. 부자들의 편에 서면 교양도 있고, 돈도 구하기가 쉬워진다.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쥐어 짜도 나올 것이 얼마 안 된다. 하지만 부자들은 큰 손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일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맘몬의 영광이 되고 만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선교? 그거 다 돈입니다.” “자선? 그거 다 돈입니다.” “건축? 그거 다 돈입니다.” …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교회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런 그리스도교와 사람들은 한사코 큰일을 하려고 한다. 더 큰 일을 하려고 한다. 물론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맘몬의 종이 된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슬퍼하는 것이 어떻게 복이 있는가. 나는 이전 번역인 애통하는 자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난다. 돈이 없어 돕지 못해 슬플 때 그것이 애통하기까지 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그냥 버려두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샬롬이 돕지 못하는 사람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모두 위로하신다. 이것이 얼마나 완벽한 도우심인지 아는가.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하시는 아버지를 망각한 것이다. 돈 몇 푼에 아버지를 판 것이다.

오늘날 선전이 일반화된 곳에서 선전하지 않기란 정말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감추고 또 감추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모범을 보이신 작고하신 고든 코스비 목사님을 나는 정말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분은 그렇게 위대한 교회의 목사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세이비어교회가 하고 있는 일들을 다 소개할 수 없지만 년 간 그들의 예산은 우리 돈으로 수백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자랑하거나 특히 더 안정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일을 선전하는 일이 없다. 그들이 감추면 감출수록, 그러나 그들이 애통하면 애통할수록 그들의 일은 더 아름다워지고 모두가 행복한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임한다. 아버지께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선전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다. 그러나 돈이 많아질수록, 하는 일이 커지는 것만큼 사람도 부풀고 부푼 사람은 나팔수가 된다. 그리고 불식간에 맘몬의 노예가 된다. 물론 커진 사람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선은 분명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선도 그리스도인을 함몰시키는 올무가 될 수 있다. 그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선을 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에게 자선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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