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독교
검찰 기독교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3.01.2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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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사도행전(13)

현재의 대한민국은 완벽한 ‘검찰공화국’이 되었다. 검찰 앞에서는 모두가 떠는 나라라는 것이다. 검찰에 가본 사람은 느끼는 것이지만 일단 검사 앞에 서면 “네가 죄인이다”로 시작한다. 또 한 군데 ‘죄인’으로 시작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교회이다. 다른 것은 검찰은 “네가 죄인이다”로 시작하는 것에 비하여 교회는 “내가 죄인이다”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는 검찰교와 검찰 기독교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검찰 기독교는 ‘죄인’이라면 기분이 나쁠 터인데 스스로 죄인이라고 하고 기분 좋아한다. 자체 변호 시스템에 의해서 무슨 죄든 용서 받는다면서…

니체는 기독교가 현실을 부정하고 來世를 내세우며, 인간의 본능과 생명력을 억압하고, 노예 의지와 노예 도덕을 주입하여 인간이 주체적으로 가치를 창조할 기회를 박탈한다고 비판한다. 타락 -구원의 패러다임의 기독교는 인간의 삶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다. 즉 니체는 자연스럽고 즐거워야 될 인간의 본성이 기독교에 의해서 죄스러운 것으로 매장되었다고 본 것이다. 

죄책의 강조는 땅 보다 하늘을, 정의보다 감정을, 재능의 발전보다 금욕을, 표현보다 억압에 방점을 두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니체의 비판에 대해서 기독교 안에 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역사에는 비주류가 대안을 제시했듯이 기독교에도 대안을 가지고 있는 비주류가 있다. 대표적인 존재가 11 세기 사람인 에카르트였는데 .20 세기에 들어와서 에카르트를 신학적으로 부활시킨 사람이 매튜 폭스이다.

현대에 와서는 전통적으로 종교가 담당하고 있던 역할을 심리학이 점점 많이 대신하고 있다. 매튜 폭스의 창조영성은 기독교와 심리학을 포함한 과학과 예술이 연결될 수 있는 다리를 놓는다. 매튜폭스의 창조영성의 시각에서 보면 어떤 학문, 심지어는 뉴에이지까지 갈등 없이 이해가 가능하다.

에카르트의 그리스도론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과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에서는 예수만이 그리스도일 수 있었다. 예수와 인간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원죄를 안고 태어난 인간은 어떤 노력으로도 그리스도의 분량에는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에카르트에게서는 예수와 인간 사이에 ‘질적 차이’가 없다. 다만 ‘인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기독교의 전통 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에카르트의 평등주의적 사랑은 인간 사이의 평등뿐만 아니라 우주로까지 확대된다.

매튜 폭스가 주장하는

창조영성은 이 세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와 시간과 몸과 물질과 사회를 포함한다.  그래서 창조영성에서는 곧 경제학, 예술, 언어, 정치, 교육, 성이 모두 똑같이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 관한, 세상 사람들에 의한, 세상 사람들을 위한 영성이다. 사람 중심의 영성이다.

누가 세상을 떠났다고 할 때 “곱게 죽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도무지 곱게 죽으면 안될 것 같은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이 죽은 다음에 살았던 결과대로 지옥과 천국으로 보내버리면 편리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시스템은 없다. 그렇다면 신이 있다면 최소한 죽을 때라도 ‘더럽게’ 죽거나 ‘깨끗하게’ 죽도록 조처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더욱 아쉽게도  그런 신은 없다. 있어도 그런 신은 아닌 것이다.

신학적으로 그런 신의 개념을 인격신이라고 한다. 인격신의 존재는 좋아하는 것이 있게 되고 싫어하는 것도 있게 된다. 그래서 그런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되고 그 반대를 피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우슈비츠와 같은 인류사의 모든 불행과 참극, 쓰나미와 지진 같은 재해에 대해서 조차도 억지로라도 신의 뜻을 찾으려 하다가 궤변을 늘어 놓곤 한다.

그러나 그런 신관은 데카르트 이전의 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신관이다. 데카르트 이전의 시대에는 관념이라는 용어는 신의 마음이 생각하는 내용만을 가르키는 말로 이용되었었다. 한 마디로도 인간에게는 생각이 필요 없는 시대이었다. 데카르트는 이 말을 인간의 마음에 적용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 전에는 오직 신의 뜻만이 있고 인간은 신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라는 인식이 통용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던 말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신에 대한 혁명적  독립선언이었던 것이다. 즉 인간의 신의 뜻에 의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생각함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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