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쨌다는거냐?
그래서 어쨌다는거냐?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3.03.02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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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버리 신학교 현상을 보며

최근 기독교계에서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에즈버리 신학교에서 생긴 특별한 종교적 현상에 대하여 관심이 높다. 모처럼 간만에 에즈버리에서 벌어진 운동을 벤치메이킹 하는 움직임이 많이 생겨서 기독교가 활성화 되기를 기대하고 있고 물론 나도 그렇다

그러나 그런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어떤 영양을 미칠 수 있을까? 소수의 사람들은 강력한 영적인 경험을 통하여 개인의 삶이 변화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개인의 심리변화 만으로는 세상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번은 시드니의 안식일 교회에서 미국에서 유명한 청년 부흥사가 왔다고 해서 가봤다. 28살 먹은 청년이었는데 8살 때 미국으로 가서 성장해서 마약 중독이 되고 깽생활을 하다가 개과천선해서 지금은 훌륭한 전도자가 되었다는 진부한 스토리였다.

그러나 닳고닳은 일요일 교회 신자들에 비해서 순진해빠진 토요일 교회 교인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해서 천사처럼 흠모를 하고 있었다. 그 청년은 안식일 교회에서 떠 오르는 스타처럼 전 세계의 한인 안식일 교회를 순회 하면서 설교를 하고 다녔다.

그래서 내가 청년을 호주 백인들 교회에 데려가서 간증을 시켰다. 호주 교인들의 반응은 전혀 무덤덤할 뿐 아니라 “제가 왜 자기의 사생활 이야기를 하나?”하는 표정이었다. 가장 호의적인 반응이었다면 예배가 끝난 후 어느 노인이 다가오더니 청년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너 참 좋은 경험을 했구나” 하는 정도였다. 나는 그날 청년에게

‘복음은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라는 교훈을 주고 싶어서 데려간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을 부르면서 앞에 붙이는 수식어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전능하신, 은혜로우신, 사랑의, 살아계신, 거룩하신…” 기타 등등이다. 그런데 왜 '바쁘신'은 왜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바쁘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아서 내면의 변화가 생기는 것도 좋지만 바쁜 하나님을 도와줄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9.11이 일어난 대 나는 미국에 있었다. 화요일에 사건이 터지고 토요일 아틀란타 시내에 나가보니 소수의 사람들이 “아랍인들을 희생제물로 삼지 마라.”, “전쟁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윤리적 상상력이 발달한 사람들은 벌써 앞 일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일에 테네시 주 네쉬빌에서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 젊은 유학생들이 모인 교회였는데 지구가 뒤집어지는 사건이 발생한 주일에도 지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외계인들처럼 복음 성가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소위 CCM 에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날은 정말로 기가 막혔다.

내게는 ‘경배와 찬양’ 스타일은 마취, 자기도취의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사랑, 은혜, 평화’ 등등의 표현을 상투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잠시 이웃의 고통을 잊고 있을 뿐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설교 시간에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아는가? 이제 당신들 중에 전쟁에 나가서 미국 때문에 죽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 후 윤장호 병장이 아프칸에서 전사하여 슬프게도 예언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처참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 여파로 전지구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마치 뽕맞은 사람들처럼 ‘예수는 나의 왕 어쩌꾸.... ’ 하는 찬양을 과연 하나님이 좋아할까?

성령은 좀 시대에 맞게 역사하면 안되는가? 너무 올드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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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식 2023-03-04 22:21:35
전혀 기대할 게 없는 글.
글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는다는 상단의 광고가 딱 정확함.
믿을 게 없는 사람들이, 믿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지식이 곧 믿음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냉소가 곧 대단한 통찰력인 것처럼 휘갈겨 쓴 글에 지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