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더 알기 위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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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3.04.15 22: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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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사도행전(21)

아둘람공동체를 잘 아는 지인에게 요즘은 왜 안오느냐고 하니까 농담으로 “내가 봉숭아 학당에 왜 가냐?”고 했다고 한다.

봉숭아 학당은 1990년대초 KBS TV에서 방영했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신식 학당에서 신식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역사상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인이 아둘람을 봉숭아 학당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아둘람은 갑자기 닥쳐온 펜데믹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서투른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봉숭아 학당에서 출연자 모두가 자유분방하게 참여하는 것처럼 아둘람은 주도자가 따로 없이 전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면에서 봉숭아 학당과 같은 점이 있다.

 

우리는 아둘람을 통하여 우리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아닌 ‘판데믹 시대의 사색’을 배운 것이다.

나날이 진화하는 아둘람에서 또 한가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이름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지었다. 기본컨셉은 자신을 객관화 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를 찾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은 잘보아도 자기 자신은 잘 보지 못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타인은 눈으로 보지만 자신은 마음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법을 모르면 평생 동안 한 번도 자기를 보지 못해서 세수를 한 번도 안한 얼굴로 죽는 사람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교실 앞에 나가 손을 들고 벌을 서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선생님은 꼭 벽을 향해 서 있도록 하였다. 앞에 나가 벌을 서고 있어도 쑥스러운 얼굴로 나마 친구들과 마주 보면서 눈으로 교신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벽을 보고 있으면 시간은 짧아도 더 지루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손을 들고 서있는 고통 보다는 벌을 서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괴로웠기 때문에 시간이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자신의 뒷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호미를 들고 휘적 휘적 걸어가는 늙은 농부의 뒷모습은 앞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도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보이는 앞 모습과 뒷 모습은 다르다.

이런 현상을 철학적으로는 ‘분열적 주체’라고 표현한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주체를 말한다

인간이 철이 든다는 것은 세상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좀더 철이 들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철학에 ‘반성적 성찰’이란 개념이 있다. 한 마디로 ‘팔 들고 벌 서는 자세’를 말한다. 나는 팔 들고 벌 서는 것부터 감옥살이까지 많은 벌을 받아보았지만 ‘반성적 성찰’을 해 본 기회는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반성적 성찰’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적 성찰’은 하지 못하는 것은 닦지 않은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자기 모습이 비추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비추이지 않는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흐려져서 나중에는 거울 앞에 서면 흐릿하게 형체만 보일 뿐이다. 이것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려는 이유이다.

처음 시작할 때 자기의 현재의 좌표를 정하고 여행 도중에 남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의 좌표를 항상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 달 정도 모임을 해보고 나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요즘같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임의 이름을 '세상을 더 알기 위한 모임'으로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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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현 2023-04-21 04:29:44
누가 절에 가서 스님이 된 후 예수님과 십자가를 전한다면 어떨까요? 무슬림이 된 후 붓다를 전한다면요? 아마 엄청나게 욕먹고 쫓겨나겠지요.

지금 지성수라는 사람의 글을 보면 목사가 되어서 예수님, 십자가, 하나님에 대한 것은 하나도 안가르치고 신경 안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의 관심은 오직 세상이며 실제로 먹고사는 일을 말하지 않는 설교는 짜증이 난다고 어느 글에서 밝혔습니다. 대체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가 타락해가는 것은 목사들이 십자가의 도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사람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라는 사람, 성경은 읽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