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선글라스
플라스틱 선글라스
  • 승인 2023.04.13 07:49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준경 목사 / 우면산 아래서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잘 보내셨는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오래된 TV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정말 TV에서 본 것인지, 책에서 읽은 것인지, 아니면 누구에게서 들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난한 집의 엄마가 읍내에 나가서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서 판 돈으로 찐빵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어린 동생은 신나게 찐빵을 먹는데, 짧아진 엄마의 머리카락을 본 형은 찐빵을 먹지 못하고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큰 아들에게 괜찮으니까 먹으라고 권하자 아이는 찐빵을 입에 넣었습니다. 우리는 철없는 동생일까요? 철든 형일까요? 철없는 동생은 찐빵에 관심이 있고, 철든 형은 엄마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이 불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려고 오셨는데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짜로(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에게는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제가 여름 수련회 강사로 강원도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련회 내내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그리워하며 지냈습니다. 3일 동안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행복했습니다. 사당역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거리에서 장난감을 펼쳐놓고 파시는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아들에게 줄 선물이 있나 찾아보다가 3천 원을 주고 플라스틱 선글라스를 샀습니다. 마침 수요일이어서 교회에 들러서 수요기도회를 드렸습니다. 기도회가 마치자마자 집까지 달려갔습니다.

저는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막 잠이 들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침대에 올라가서 아이를 흔들면서 “아빠 왔어”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고민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어나서 아빠를 맞이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자야 하나?” 아이는 자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아이가 귀찮은 척을 하면서 잠을 자겠다는 사인을 보내서 아쉽지만 저는 포기하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제 손에 검은 봉다리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검은 봉다리가 손에 들려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제야 혼잣말로 “선글라스 사왔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아이가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방의 불을 켜더니 제 손에서 검은 봉다리를 낚아채고 선글라스를 꺼내서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선글라스를 쓰고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얼굴로 저에게 와서 껴안고 뽀뽀를 하면서 “아빠 사랑해요. 아빠 최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의 선물에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했습니다. 해머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는 하나님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이 있으셨는데, 나는 하나님의 손에 든 검은 봉다리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뻐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든 선물이었지, 하나님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서운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손에 든 선물보다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 생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책장에서 “기도 응답을 받는 방법” 류(類)의 책들을 다 뽑아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한 집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앞집에 사는 분은 불교 신자라서 절에 다니는데도 사업이 잘돼서 이번에 좋은 집을 샀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도 아직도 남의 집에서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 집사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우리는 나중에 천국에 갈 거잖아요. 우리는 나중에 좋은 집에서 살게 될 거니까, 이 세상에서 좋은 집은 천국에 가지 못할 분들이 사시면 안 될까요? 꼭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도 좋은 집에 살고, 죽어서도 좋은 집에 살게 하셔야만 하나님이 제대로 하시는 걸까요?”

그날 우리는 하나님은 잘못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열심히 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의 손에 든 선물입니까? 하나님이라면 이미 주셨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무엇을 얼마나 더 주셔야 합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더 바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미 다 주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이제 드릴 것만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더 바랄 것 없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정준경 목사 / 우면동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충현 2023-04-18 11:12:41
(밑의 댓글에 계속)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영광된 모습이 되셨고 지금 살아계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훗날 부활할 것을 소망하는 부활신앙, 부활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기쁘시다고요?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의 오심은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슬프십니까? 혹시 목사님의 교회에서는 부활을 안가르치시나요? 아니면 부활이 그냥 상징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부활하지 않으셨다고 믿으시나요???

이충현 2023-04-18 11:07:13
목사님의 좋은 글에 사족을 다는 것 같아 죄송하긴 합니다만... 저는 기쁘다 구주오셨네라는 찬송이 불편하시다는 대목이 불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와 함께 사셨다는 것은 놀랍고도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그분의 오심을 슬퍼해야 하는 겁니까? 예수님의 희생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말자라는 뜻으로 이해는 합니다만, 저는 그 부분이 불편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언급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죽어계신 것처럼 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현재 예배도 많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불쌍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기리는 그런 예배만이 있어 모든 예배가 장례식같을 것이고 즐거운 찬송도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