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기도 제목
가장 슬픈 기도 제목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5.03 21: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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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경목사의 우면산 아래서

여러분이 살면서 들었던 기도 제목 중에 가장 슬픈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나요? 몇 해 전, 우리 교회 집사님의 회사에 가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집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랑 아내는 우리 아들보다 하루 더 살고 죽는 것이 기도 제목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번도 집사님들이 그런 기도를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장애가 있는 집사님의 아들과 가정을 위해서 항상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렇게 가슴 아프게 기도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에는 심각한 장애를 가진 자녀보다 하루 더 살고 죽는 것이 기도 제목인 부모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가 빨리 변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부모와 가족에게만 맡기지 말고, 우리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날부터 저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장애를 가진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천국에 갈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해주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빨리 변해서 편견과 차별이 사라지고, 장애인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자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세요.”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장애를 가진 자녀들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며 살아야만 하는 부끄러운 나라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종도 자유인도, 남자도 여자도, 차별이 없습니다. 장애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아직도 우리의 생각 속에,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에 장애인들에 대한 멸시와 편견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전에 비해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럽고 눈물 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장애인 학교가 자기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일까요? 저는 우면동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면산 아래 넓은 공터를 지나갈 때마다 “하나님, 이곳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게 해주세요. 우리가 아이들을 많이 사랑할게요.”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동네도 장애인 학교가 있는 축복을 누리기를 학수고대합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해마다 우리는 장애인의 날이 지나면 장애인의 주일을 기념하며 지킵니다. 장애인의 주일은 정상인들이 장애인들을 긍휼히 여기거나 장애인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한 주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장애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몸의 장애보다 심각한 것은 마음의 장애입니다. 몸의 장애는 마음의 장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마음의 장애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장애인의 주일은 우리 모두 장애인이고, 우리 모두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20여 년 전, 제가 한울 장애인 공동체에 처음 갔을 때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빨래를 하고, 밥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한 자매님이 봉사하면서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우셨습니다. 그때 난감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울고 싶으면 혼자 있을 때 우는 것이 맞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와 친구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운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고마워할까요? 그 비참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을 것입니다. 저는 한울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야말로 진짜 장애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저의 마음의 장애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제가 한울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비웃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훨씬 더 심각한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자격이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 모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당하기도 합니다. 고아가 되거나, 자녀를 잃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어려움을 딛고 힘들게 용기를 내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불쌍하게 여기면 살아갈 용기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차 마시고,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면서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정하게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서로 부담 없는 친구가 되자는 것입니다. 남을 도우면서 사진 찍고, 티를 내면서 자랑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입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태 6:3)

여전히 저에게는 자기 아이보다 하루 더 살고 죽는 것이 가장 슬픈 기도 제목입니다. 그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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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찰스 2023-05-06 11:11:56
귀한 글 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