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여, 준비하라!
목사여, 준비하라!
  • 김태훈 목사
  • 승인 2023.09.20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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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한국 나이로 40살이 넘었다. 다양한 규모의 교회에서 12년이 넘게 사역을 해오면서 정말 수많은 목회자를 봤다. 그런데 그중에 제일 안타까워 보이는 부류의 목사가 있다. 바로 미래를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중대형 교회에서 일한다는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며 일개미처럼 시키는 일만을 하다가 40대를 맞이하는 목회자다. 이들의 깊은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곁에서 느끼기에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잘될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십만 명이 넘는 다른 한국교회 목회자와는 다르게 자신에게만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에게 임한 은총이 주어질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너무 큰 착각일 수 있다. 물론 이게 착각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도 애써 외면하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작정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월급을 주는 교회라는 보호막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현실을 맞닥뜨릴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 예장합동에 속한 교회의 수는 11,000개 정도다. 그런데 목회자의 수는 25,000명이 넘는다. 물론 복잡한 내용을 더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단순하게 이 통계를 이해했을 때, 한 교회에 한 명의 목회자가 간다고 해도 14,000명의 목회자는 갈 곳이 없다. 게다가 저 11,000개의 교회 중에 담임목사를 청빙하거나 부교역자를 둘 수 없는 미조직 교회를 제외하면 상황은 더 극심해진다. 추산에 의하면, 예장합동 전체 목회자 중에 10%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22,500명의 목사는 미래에 갈 곳이 없을 것이다. 이건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다들 너무 태평하다.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다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다. 막연히 잘될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십중팔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목회자들은 그래도 해온 게 도둑질이라고 목사라는 직분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 너도나도 개척을 하고 생계를 위해 이중직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월세나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아내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떤 경우는 자녀들까지 총동원되어 알바를 해야할 수도 있다. 이건 믿음이 아니다. 고귀한 헌신과 희생이라고 볼 수도 없다. 태만하고 게으른 것이다.

목회자들은 게으름을 떨쳐버리고 준비해야 한다. 첫째로, 청빙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청빙의 길은 매우 좁다. 전체 목회자 수의 대략 10% 정도만이 청빙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갈 사람은 가는 것 같다. 내 주변에도 담임목사로 청빙 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잘 준비된 사람이 가더라. 여기서 잘 준비된다는 말은 박사학위가 있거나 대형교회에서의 사역 경험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작은 교회 출신이고 그 흔한 한국어 목회학 박사학위(D. Min)가 없는데도 청빙이 된 분들이 꽤 있다. 반대로 목회학 박사학위가 있는 대형교회 출신 중에 지독하게 청빙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고 두 가지를 철저하게 구비해야 한다.

하나는 (교육, 선교, 목양 등에 대한) 목회 철학과 계획서이다. 요즘에는 해피캠퍼스에서 담임목사 청빙 목회계획서를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목회자들의 목회계획서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하는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전철을 똑같이 밟으면 안 된다. 목사가 다른 사람의 목회계획서를 복붙하는 게 말이 되는가? 목회 철학 및 계획서는 거의 팀 켈러의 『센터처치』 급으로 써야 한다. 성경과 신학에 근거한 교육과 교회와 도시와 선교와 운동에 있어서 종합적인 비전과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이 녹아져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목회자의 캐릭터와 일치하는 진심 또는 진정성이 담겨있어야 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목사님께서는 탁월한 목회계획서로 청빙 되셨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설교이다. 나는 지금까지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설교를 잘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목사를 본 적이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목회자도 본 적이 없다. 다들 끝까지 자기 생긴 대로 설교한다. 성능이 안 좋은 컴퓨터도 CPU를 바꾸고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데, 설교자들은 그런 노력을 안 한다. 설교에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즉, 말씀에 근거한 교훈과 그에 따른 적용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것보다 스피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실 스피치는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흐름을 알지 못하면, 화술은 소음이 되기 때문이다. 악보를 볼 줄 모르는 연주자가 건반을 세게 두드릴 때 견디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 두 가지를 견실하게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사역하며 교회를 살려내고자 하는 자는 그분께서 반드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두 번째로 목회자들은 자비량 이중직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지난 글에서 목회자들이 이중직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 생계형 이중직만 생각하고 자비량 이중직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글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나는 둘 중에 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생계형 이중직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무엇이 힘든지는 이전 글에서 밝혔기 때문에 생략한다). 그건 길이 아니다. 하루 빨리 생계형에서 탈출하고 한 직업 전업 목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되기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대안으로 자비량 이중직을 일찍부터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바울이 전형적으로 바로 이 케이스다. 바울에게 천막 만드는 일은 그저 거쳐 가는 하나의 임시적인 과정으로서의 직업이 아니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가업이었고, 이 직업을 통해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 부분적인 목회 활동을 자신의 철학에 맞게 소신껏 해나갔다. 그런데 여기서 부분적인 목회 활동이라고 한 부분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바울은 전도 축제를 열지 못했다. 바자회도 열지 못했고, 매년 대심방을 돌지도 못했던 것 같다. 오로지 가르치고 전하는 특화된 사역에만 집중했다. 이게 자비량 이중직의 장점이자 한계이다. 자비량 이중직 목사는 한 직업 전업 목사가 하는 모든 목회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특화된 사역을 하며 생계에 대한 걱정이 없이 세상에서 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는 분은 한국어와 영어로 하는 논술 학원을 차려서 아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며 유명한 영어 문학작품을 읽히고, 주일에는 학생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교를 한다. 또 어떤 목사님은 출판사를 하면서 매일 같이 성도들을 상담해주고 기도해주는 사역을 열심히 한다. 건너 아는 분은 군목 대위로 전역한 후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지금은 의사가 되었고, 주말마다 군선교 사역을 하신다고 한다. 또 일반대 교수가 되어서 기독교 동아리를 이끄시는 분도 있고, NGO 단체에서 일하시며 소소하게 가정교회를 이끄시는 분도 있다. 이것 말고도 혹시 7급 영사직에 합격해서 해외 파견을 받아 그곳에 있는 선교사님을 돕는 사역을 할 수는 없을까?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 되어서 목회자의 자세로 세상의 정의와 번영을 위해서 헌신할 수는 없을까? 어떠한 모양이라도 세상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에 기반한 특화된 부분적 목회 활동을 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각 교단들은 생계형 이중직은 허용해도 두 개의 직업을 갖는 목회자는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담임목사직과 겸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헛소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되묻고 싶다. 그러면 담임청빙에서 낙오된 수만 명의 목사들은 무조건 평생 생계형으로만 살아야 하는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대원을 졸업하고 부교역자를 하는 동안에 어떤 자비량 목회자의 삶을 살지 고민하며 준비해야 한다. 아니 신대원 때부터 이런 방향성을 전도사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나태하게 살아가면 안 된다. 40대 중후반이나 되어서 기사 자격증을 딴다고 열을 내기보다는 30대 초반부터 조금씩 시작해서 40대부터는 안정적인 자비량 목회자로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실 나는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이 아직도 중대형 교회에서 안정적인 월급이라는 마취제를 맞아 가며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껏 인류는 도전에 응전하면서 살아왔다. 무사안일이라는 신화는 신앙이 아니라 악마의 속삭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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