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기도회에 대한 다른 생각
다니엘 기도회에 대한 다른 생각
  • 김태훈 목사
  • 승인 2023.12.15 09: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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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오륜교회에서 진행했던 다니엘 기도회에 참여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고, 지금 사역하는 교회에서 해마다 인터넷 생중계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타의였다. 참여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유익한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든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관련하여 몇 마디 하려고 한다.

일단 다니엘 기도회의 명칭과 전체적인 진행방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명칭부터 생각해보면, 이 명칭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21일 동안 기도하며 간증 집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번역 다니엘서 10장 2-3절에 보면, 다니엘은 삼 주 동안 고행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고 고기나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 즉, 다니엘은 세 이레 동안 금식했다. 그런데 왜 오륜교회는 ‘다니엘 기도회’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언제부턴가 한국교회에는 다니엘이 21일 동안 기도했다는 잘못된 믿음이 생겨버렸는데, 그것을 오륜교회가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이라는 숫자를 제외하고, 다니엘 기도회는 성경적 다니엘과 공통점이 별로 없다. 사실 이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다니엘 기도회’라는 워딩 자체가 성도들의 상상력을 지배하여 성경의 다니엘이 문제 해결을 위해 21일 동안 기도했다고 오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경의 다니엘이 이렇게 금식하며 고행한 이유가 중요하다. 다니엘은 왜 금식하며 고행했을까? 기조연설과 같았던 김은호 목사님의 설교와 같이 산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행했을까? 아니면 인생 역전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까? 전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 이유가 다니엘 10:12에 기록된 천사의 말에 암시되어 있다. 다니엘은 ‘깨닫기 위해’ 스스로 겸비케 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은 하나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자신을 비우며 고행했던 것이다. 마치 다니엘 9장에서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애를 썼던 것처럼, 다니엘의 고행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한 자기 부인이자 하나님을 향한 영점 조준이었다. 다니엘은 신앙을 통한 역전이나 콩고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만 관심이 있었고, 하나님이 중심이었다.

지난 11월 오륜교회에서 진행된 '2023 다니엘 기도회'의 한 장면
지난 11월 오륜교회에서 진행된 '2023 다니엘 기도회'의 한 장면

이것이 다니엘이 21일 동안 금식하며 고행한 이유라면,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슈퍼스타와 같은 찬양팀과 극적인 체험을 가진 강사들을 세워서 간증 집회를 하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화려한 찬양과 간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의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이름을 빌리려면, ‘다니엘 말씀 사경회’가 더 성경적이지 않을까? 21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말씀 사경회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스펙타클한 역전 경험과 그것을 나도 경험하게 해달라고 소원하게 하는 것보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의 의도대로 분명하고 감동 있게 전하므로 주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할 수 있는 가브리엘 같은 21명의 사자들을 세워서 말씀을 듣는 사경회를 나는 꿈꾼다. 한국의 대형교회가 성도들에게 이런 꿈과 성경적 상상력을 심어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아서 매우 유감이다. 다들 암암리에 종교와 기독교를 반반씩 섞는 것 같고, 다니엘 기도회는 너무나도 한국교회의 이런 단면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 같다. 성도들의 오염된 상상력을 정화해주는 성경적 다니엘 집회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간증에는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간증에 좋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증은 인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목적대로라면 간증에는 그것을 듣는 자들이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간증의 단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중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첫째로, 간증은 하나님보다 간증하는 사람을 더 드러낸다. 다니엘 기도회에 초청된 강사들은 거의 대부분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책을 써서 저술이 있는 사람이거나 독특하고 특별한 체험이 있어서 입소문이 난 분들이다. 왜 이런 사람들만 강사로 초청되는 것일까?

사실 간증이라는 말은 범죄 재판에서 관련된 증인을 일컫는 법률 용어였다. 이러한 용어는 공의회 재판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주님을 증거했던 사도들과 초기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당시 초기 교회 성도들은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다. 교회에서는 지도자라고 해도 사회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비주류였다. 그런 자들이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목숨 걸고 주님을 증언하는 것이 간증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오늘날 교회의 간증은 유명하고 대단한 체험을 가진 사람들만을 앞세워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게다가 이들은 너무 유명해져서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 나는 어떤 분이 간증 하나로 전 세계 7,000곳의 교회에서 설교했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마다 30만 원씩만 사례비를 받아도 간증 한편으로 21억을 번 것이다. 아, 이게 정상적인 상황인가? 요즘 회심한 연예인들이 교회마다 간증 집회를 다니는데, 이들이 한 번 와서 말씀을 전하고 가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액수의 사례금을 받아 간다. 모 가수는 한 번에 3백만 원이고, 모 코미디언은 5백만 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인기가 있는 연예인은 아닌데, 교회에서는 아주 짭짤하다. 1년에 이렇게 스무 곳만 다녀도 일반 회사원은 꿈도 꾸지 못할 연봉을 벌게 된다. 사람에 열광하는 간증 집회, 인기 있는 강사가 소비되는 간증 집회, 정말 한국교회에 필요할까?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원하실까?

둘째로, 오늘날 간증은 역전의 성공사례담 정도로 격하되었다. 이번 다니엘 기도회에서 들었던 메시지 중에 생각나는 것은, 고아였다가 입양되어 미국 우주항공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 된 간증, 장애인이었는데 서울대 교수가 된 간증, 아무도 가지 않는 시골 교회에 부임했다가 엄청나게 부흥한 간증, 우유배달을 했다가 유명해진 목사의 간증 등이다. 이러한 간증이 목표하는 바와 신앙생활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도 예수를 잘 믿으면 저렇게 된다는 것인가? 우리도 21일 동안 열심히 기도하면 저런 간증자들처럼 된다는 것인가? 만약 정말 이런 목표와 의도라면, 다니엘 기도회는 기독교 신앙 집회가 아니라 종교집회이다. 그러나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주최 측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더 극적으로 보여 주고 싶어서 극적인 인물을 섭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상위 1%의 간증이 역효과를 낸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할까?

성공하고 역전을 경험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요셉과 다니엘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그런 간증을 할 만한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세상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으며, 질병에서 치유되고 회복되기보다 그냥 그 병과 함께 생을 마감하시는 분이 수백 배 더 많다. 가정이 회복되지 않고, 계속해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 보통 신앙인들에게 역전과 성공의 간증이 어떻게 들릴까? 아마 희망 고문으로 들리거나 반대로 소외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간증 집회는 베데스다 연못과 다를 바 없다. 베데스다 연못은 천사가 물을 움직일 때 연못에 들어갈 수 있는 비교적 정상적이고 괜찮은 사람들에게만 치유가 일어나고, 38년 된 병자와 같이 심각한 병에 걸려서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에게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병폐의 온상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천사와 같은 간증자들이 내려와서 간증을 통해 일 년에 한 번씩 21일간 다니엘 기도회라는 연못을 움직이지만, 그곳에 들어가서 공감하고 위로받지 못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주최 측은 공감해야 한다.

간증에는 역전과 성공의 간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만 간증으로 여기며 전한다면, 한국교회는 반드시 병든다. 간증에는 죽음과 고통의 현실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간증도 있고, 어떤 분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빌었는데 이 땅에서는 죽이시고 하늘에서 영원한 삶으로 살리시는 간증도 있다. 자신의 야망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냥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간증도 있다. 아버지가 금식기도를 하다가 돌아가셨더니 아들이 초대형교회를 이루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간증만이 간증이 아니다. 늦게 부르심을 받아서 개척교회를 섬기다가 얼마 안 되어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이 소천하신 분의 간증도 있다. 그 어떤 스펙타클하고 극적인 역전이 없다고 해도 간증일 수 있다. 이런 간증도 듣고 싶고, 또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다니엘 기도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나는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의 경우에 다니엘 기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들이 다시 자극되었고, 사탄은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간절히 애원하던 것을 저 간증자에게는 주었는데, 왜 너에게는 주지 않으셨을까?”라고 속삭였다. 싸우느라 힘들었다.

이제 글을 줄이려 한다. 나는 다니엘 기도회에 좋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어서 비평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니엘 기도회에 참여한 모든 강사들을 도매금으로 다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나는 이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새롭게 경험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방향성은 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더 나은 비전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으니,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세계 92개의 국가에서 다니엘 기도회에 참여하는 1만 6천여 개의 교회와 그곳의 성도들, 그리고 불신자를 포함한 12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시청자들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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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2023-12-22 12:24:11
사탄은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간절히 애원하던 것을 저 간증자에게는 주었는데, 왜 너에게는 주지 않으셨을까?”라고 속삭였다. 싸우느라 힘들었다.

왜 목사님께서 못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목사님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씨로 거듭나셨지 않으셨나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성품과 능력과 영광을 목사님께 약속해 주셨는데 왜 주시지 않으셨다는 확증을 가지고 계신가요?

왜 '성공하고 역전을 경험하는 사람은 극소수' 일까요?
단지 그들이 특별해서 인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귀하게 쓸 그릇들을 구별하셨다고 하지만 왜 그게 내가 아니라고 확신을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의 말씀으로 많은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을 내 것으로 취하느냐 취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