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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종북몰이를 이기다[인터뷰] 보수언론 명예훼손 재판에 승소한 재미동포 린다 리 씨

[뉴스 M = 경소영 기자] 재미동포 린다 리 씨가 2년간에 걸친 ‘종북몰이’ 재판에서 승소했다. 미주 한인 여성 대표 커뮤니티인 ‘미시USA’는 종북 단체가 아니라는 판결도 아울러 났다. 이에 ‘미시USA’를 ‘종북 단체’라고 보도한 한국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사가 수백만 원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3단독(장성학 판사)은 ‘미시USA’ 회원 린다 리 씨가 지난 2014년 블루투데이 홍 모 기자와 발행인 권 모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1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이어 SNS에 원고 린다 리 씨의 사진을 올리고 ‘저능아’ 등의 표현을 해 명예훼손을 한 양평군의회 송 모 의원과 이 모 씨에 대해서도 각각 150만 원과 3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린다 리 씨를 포함한 일부 ‘미시USA’ 회원들이 세월호 사건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자, 권 씨와 홍 씨는 ‘미시USA 주도 인사들은 종북 성향 단체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라는 내용의 기사를 일곱 차례 게재한 바 있다.

이에 린다 리 씨가 명예훼손을 제기하자 그들은 “해당 기사는 모두 공공적,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정치적 이념에 관한 것으로서 언론, 출판의 자유에 따라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공적,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정치적 이념에 관한 문제 제기가 허용된다 해도 구체적 정황의 뒷받침도 없이 악의적으로 모함해서는 안 된다. ‘미시USA’가 종북 성향의 단체라거나 종북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을 찾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백악관 앞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평화행진 중 'No War, Yes Peace'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린다 리 씨. 피켓을 든 손에는 핸드폰이 함께 들려있다. 시위 모습을 생중계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3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사드 반대 집회에서 린다 리 씨를 만났다. 반년 넘게 SNS에서만 봐오다가 실제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집회 장소에 도착하니 린다 리 씨는 사드 반대 집회 실황을 SNS로 생중계하고 있었다. 직접 대화를 해보니 역시 여성 활동가로서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정의를 위해서는 어디든 달려갈 것만 같았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 활동을 목숨 걸고 해요. 한국인으로서 빚진 마음이 있어요. 이곳 미국에서 저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매우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요. 안그래도 미안한데 한국에서 자꾸 안 좋은 일들이 터지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그로부터 딱 일주일 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드디어 이겼습니다, 2년만에. 제 승리가 아니고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동안 긴 싸움에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SNS에 올라왔다. 린다 리 씨의 활발한 사회 활동 뒤에는 길고 지리한 재판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한인 사회에서 진실을 외치는 린다 리 씨의 활동은 ‘종북’이라는 비난의 화살로 돌아왔던 것이다.

재판 승소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 그에게 메시지를 발송했다. 꽃바구니라도 사들고 만나고 싶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는 뉴욕에서 너무 멀었기에 SNS을 통해 기나긴 질문지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다음은 그와 서면으로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2년간 재판을 진행하면서 무엇이 린다 씨를 가장 힘들게 했었나요.

소송을 하기로 결심하고 자료를 모으던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입에 담기조차 험악한 인신 공격과 욕설, 그리고 저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글들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확인하는 작업은 끔찍하기조차 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소송비를 모아 소송을 시작했는데, 소송을 시작한지 얼마 후 2만불에 달하는 공탁금을 내지 않으면 소송이 기각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마터면 소송을 포기할 뻔 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처음 소송을 한 6명 중 2명의 케이스는 기각하고 4명으로 줄이고, 공탁금 조정신청을 법원에 제출해서 공탁금의 액수를 낮추고서야 소송을 다시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소송비와 공탁금 마련을 위해 도움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께서 함께 해 주셨기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랜 시간 재판으로 싸우면서 지칠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린다 씨가 힘들 때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힘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책임감’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소송을 하게 되었던 이유도 표면적으로는 저를 표적삼아 공격했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던 모든 재외동포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종북몰이’와 인신공격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서 누군가는 나서서 싸워야만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많은 분들이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셨기에 십시일반으로 소송비용을 모아 주셨는데 힘들다고 도중에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헐리우드 거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시위하고 있는 린다 리 씨의 모습.

소송 당시, 린다 씨와 몇몇 분들은 단지 세월호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로 인한 자발적인 모임을 했던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린다 씨를 비난하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명예훼손을 했던 사람들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세월호 참사 직후 미주 37개 도시에서 세월호 시위가 열릴 정도로 해외에서 세월호 시위는 뜨거웠어요. 주로 아이들을 키우는 30, 40대 엄마들이 ‘미시USA’ 사이트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전부터 시민운동을 해온 분들도 있었겠지만, 어느 단체 소속이 아닌 엄마, 아빠 개인으로 모였습니다.

그런 자발적인 모임을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몇 핵심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지목해서 ‘종북’으로 몰고 신상을 털면 두려워서 그만둘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아요. 제가 로스앤젤레스 지역 리더이다 보니 저를 배후로 지목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익명 사이트인 ‘미시USA’에서 편의상 ‘리더’라는 명칭이 제게 붙여지긴 했지만, 혼자 집에서 슬퍼만하고 있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촛불이라도 들고자 거리로 나온 분들의 소통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했을 뿐이었죠.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리더였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배후였습니다.

소송을 꼭 해야만 했던 이유와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결과와 상관없이 이 소송의 가치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사고’라는 것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세월호는 전원 구조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밖으로 탈출한 탑승자들 외에는 선내에 있던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인재’이며 ‘대참사’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과 해외에 살고있는 우리 재외동포들 모두가 그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봤습니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책임을 물으면 북한을 추종하지 않아도 ‘종북’으로 몰아갑니다. 특히 해외에 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간 재외동포들에 대한 ‘종북몰이’는 도를 넘을 정도로 지나쳤다고 봅니다.

비판을 들을 줄 알고, 그 비판을 통해 잘못된 것을 개선해 나가는 사회가 건강하죠. 조국의 분단된 현실을 이용해서 국민들을 겁박하는 ‘종북몰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며, 반드시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누군가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소송을 하게 된 것입니다.

뉴욕 맨하탄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린다 리 씨(가운데)의 모습.

지금처럼 열정적인 사회적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세월호 사건’이라고 들었어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을 떠나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입니다. 저도 30년 전 고등학교 때 가족들을 따라 미국에 이민 와서 이 곳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죠. 그간 나 살기 바쁘고 내 가족만 돌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린다 씨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입니까.

대한민국은 나와 내 아이들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잘 돼야 우리도 자부심을 느끼고 당당하게 이곳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저의 근간이라고 할만큼 의미가 큽니다.

미주 한인사회가 보수적이고 우경화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70년대, 80년대에 이민 온 분들 중 그 시절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때는 군사 독재 시절이었고 ‘반공’을 가장 중요시 여기던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란 그분들의 자녀들도 부모들의 영향을 받아서 ‘빨갱이’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지난 워싱턴 사드 반대 집회에서 만나 뵈었을 때 ‘죽을만큼 열심히 이 활동을 하고 있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풀어주신다면요.

‘죽을만큼 한다’라기 보다는 ‘살아있으니 한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가정했을 때, 저는 이미 그 절반을 살았습니다. 지금껏 제 인생의 절반을 저와 제 가족만을 위해 살았다면, 남은 인생은 사람이 살기 좋은 평화롭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잠깐 왔다가 가는 이 세상에서 조금은 의미있게 사는 것이고,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 주부로서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 아이, 내 일만 챙기기도 바쁜 세상이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론 엄마이기 때문에 더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신지요.

부끄럽게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전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이가 둘이 있는데, 이제는 둘 다 대학생이고 자립해서 나갔기 때문에 전처럼 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린데도 활동하는 엄마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제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activist(활동가)’라고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본이 되도록 더 잘 살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1 운동' 기념행사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린다 리 씨(오른쪽 맨 끝).

미국에 살기 때문에 활동하기 좋은 장점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미국에 살아서 듣는 안 좋은 소리들도 있을 것 같은데. 가령 ‘미국에 살면서 무슨 상관이냐’ 또는 ‘당신은 미국에 사니까 뭘 알겠어’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슬퍼할 겨를도 없이 2년이 넘도록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거리에서 투쟁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면, 너무 편히 살고있는 게 죄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투쟁에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저도 가족이 있고 생업이 있는데 많은 시간과 힘을 사회 활동에 쓰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힘들 때마다 저도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무관심한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지?’ 라며 제 자신에게 질문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내 조국이며 저는 내 조국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좀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면 제게 “미국에 살면서 무슨 상관이야?” “미국에 사는 당신이 뭘 알아?”라고 따졌던 사람들도 그 세상을 누리게 되겠지요. 저는 그분들께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을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한인들에게 ‘한국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동참해달라’는 격려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우리 조상들은 나라가 없는 설움과 수모를 36년이나 겪었습니다. 그 아픔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어린 나이에 끌려가야 했던 소녀들, 그 소녀들이 이제 90세가 다 된 나이에도 진실을 규명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받고자 아직도 싸우고 계십니다.

우리가 역사를 잊는 순간, 잘못된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됩니다. 우리가 비록 멀리 타국에서 살고있지만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이 잘 살아야 우리도 이곳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잘 산다는 의미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인들만의 일이 아니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만의 일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캘리포니아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포함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린다 리 씨(맨 오른쪽)

경소영  soyoung@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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