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우선순위
  • 박충구
  • 승인 2019.03.20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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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우리 사회를 풍자한 것이라며 ”세상이 저렇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스카이 캐슬의 자식들은 과연 행복할까? 이 나라 최고의 학벌을 가진 야당 대표, 아주 잠시 법무부 차관을 지낸 분, 그리고 박근혜 시절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하신 분, 그녀의 비서관, 지금은 구금되어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 전두환, 노태우, 최근의 이명박 .... 좋은 대학 나와 이 나라 최고위직을 지낸 양반들을 보면서 그들이 ”정말 부러운가?“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 나는 되묻고 싶다. 그동안 숨겨진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저들'의 진면목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우선순위는 사람의 성품과 삶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는 측면이 있다. 사람 중에는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정하지 못해 늘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성공적인 사람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Steven R. Covey)는 네 가지 범주로 순위를 정하라고 우리에게 권했다. 아주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그리고 급히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도 될 것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당연히 중요하고 급한 것이고, 그 다음이 덜 중요하면서도 급히 해야 할 것, 그 다음이 중요하면서도 천천히 해야 할 것, 그리고 마지막이 덜 중요하고 천천히 해도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사람의 성품에 따라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우선순위를 바꾼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의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인류의 지혜가 담긴 철학적 전통은 우리의 가치판단을 형성하는 세 가지 기준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판단을 지배한다고 말해준다. 그 세 가지는 관계적 의무, 물적 효용가치, 그리고 개인의 덕스러움이라는 범주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러한 윤리적 범주는 대부분 우리 자식들이 우리 품 안에 있는 청년기 이전에 형성된다.

고전적인 철학적 전통이 일러주는 가치들은 사실 오늘의 현대인의 일상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오히려 어려서부터 이상한 우선순위를 강요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잘하면 법대나 의대를 가고, 법대나 의대를 나와서 결혼을 잘한 후, 돈이나 권력을 가지고 잘 사는 방법이 불문율처럼 규격화되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진부한 삶의 우선순위는 사실 우리의 삶을 깊이 멍들게 한다. 돈과 권력을 얻어 잘 사는 것이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과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일까?

남보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공부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도의 경쟁구조 속에서 공부를 잘 하려면 자신의 인격이나 덕스러움이나 인간다운 의무를 위해 사용해야 할 시간과 관계를 우선순위에서 배제해야 한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 적용했던 논리다. 피라밋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학생의 도리와 과제가 되려면 다른 것들을 버리거나 밀어내야 한다. 인간다움을 지켜야 할 의무나 스스로의 성품을 형성하는 덕목들은 차라리 장애로 기능한다. 이렇게 길러진 인간은 참된 인간의 얼굴을 가질 수 없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사진:JTBC 영상캡처)
드라마 '스카이캐슬' (사진:JTBC 영상캡처)

대한항공 사장 집안의 구조나, 코리아나 호텔 사장 집안의 패륜적 행태, 장자연 성접대 사건으로 인해 법무부 차관까지 올랐다가 내려 온 김모 변호사의 경우가 그 사례다. 이들이 가진 우선순위는 “남이야 어찌되었든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논리에 따라 서열화된다. 자기에게도 자식이 있을 것인데, 자식 같은 여배우를 성폭행하고, 노동자를 마치 노예 취급하며, 자신의 어머니조차 돈 줄을 막았다며 쌍욕을 퍼부어대는 말종들의 세상에는 결국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나누는 그들의 우선순위에 도덕이나 인격이나 타인의 존재가 아예 생략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을 모방한다. 우선순위를 강요하며 자식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코리아나 사장의 부인은 자식들이 벌린 사건들을 무마하며 경쟁 구도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무척이나 애를 쓴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자신들이 배려해야 할 우선순위에서 아예 배제해 버렸다. 무가치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에게 권력과 부를 대물림해줄 수 있는 사람 편에 서서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어머니를 버리고 모욕한 것이다. 그녀는 결국 삶의 근거를 잃고 한강에 자기 몸을 던져 버렸다.

이어서 요즈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 장자연 사건, 젊은 연예인의 막장 세계, 그리고 군을 내세워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들어 집권했던 전두환, 그리고 1948년 제헌 국회가 결의하여 조직했던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위를 일러 국론 분열 사건이라 평가하는 공당 대표 –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동일하게 인간다운 가치를 배제하고 우선순위를 매겨온 자들이 벌린 패륜적 행위들이다. 이렇듯 권력과 돈에 둔 우선순위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인간다움을 상실하기 쉽다. 왜냐하면 목적을 위한 삶을 위해 다른 것을 생략하거나 제거하는 습성을 언제나 정당하다고 느끼는 별종들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목표를 위해 우선순위만 잘 매긴다고 하여 행복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영성우월주의에 빠져 “기도만 하면 다 된다”고 가르치는 것도 거짓말이다.

한동안 “목적을 위한 삶“을 강조하는 신앙서적이 있었다. 목적을 단순하게 하고 그것에 열중하는 삶이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어떤 이는 영혼구원에, 교회사랑에, 예수사랑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가르친다. 영성적 삶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공리는 세속적 성공의 형식과 모두 동일하다. 그 우선순위를 제외하고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마치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마차를 끄는 말이 곁눈질 하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려버리듯 가리고 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일정한 목표 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좋은 신앙인이 된다고 착각한다. 이성도 삶의 합목적성도, 사회 정의도, 사회의 공정함에도 관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인간다운 도리와 의무도 외면한다.

삶은 어느 단면을 살펴보아도 최소한 세 겹줄의 관계 구조를 가진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물질적 조건에 매여 있기에 물질적 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손익계산을 지혜롭게 할 수 밖에 없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다중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의무가 있고 예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만인가? 아니다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 할 자기 존재에 대한 떳떳함을 가져야 한다. 공정해야 하고 진실해야 하며 정직해야 한다. 최소한 세 겹줄 – 인격적 관계, 사회-경제적 관계, 자아와의 관계는 어느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우리의 행복을 구성하는 세 겹줄이다.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자아와의 관계가 망가진 사람은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되고, 인격적 관계가 깨진 사람은 평화를 잃는다. 정치 경제적 관계가 건실하지 못하면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안정감을 얻을 수가 없다. 자아 형성의 과제가 자기 책임이라면, 관계의 문제는 인격적인 관계에서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고, 사회-경제적 관계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 참여하는 공동의 책임적 과제다. 그러니 특정한 목표를 위해 우선순위만 잘 매긴다고 하여 행복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영성우월주의에 빠져 “기도만 하면 다 된다”고 가르치는 것도 거짓말이다. 차라리 사회의 변혁을 불러오는 일은 비기독교인에게 맡기고 그들의 노고로 이룬 사회 변화의 열매만 얌체같이 따먹겠다는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는 것이 훨씬 솔직한 일이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피라밋형 우선순위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어려서부터 자기의 인격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사람과의 관계를 예의 있게 하고, 성실하게 스스로 일하여 번 것이 아니면 내 것이 아니라는 신념을 가르쳐야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다. 물론 가르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쳐도 안 되는 자식도 있고,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스카이 캐슬을 보며 속으로 “맞다 맞어...”하면서 세상이 “다 저런 거야‘하는 부모는 최소한 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낳았으면 자식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최소한의 책무는 수행해야 부모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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