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지옥에 간 여성의 죄는 순결거부
최초로 지옥에 간 여성의 죄는 순결거부
  • 김기대
  • 승인 2022.02.1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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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행전 이야기(4)- 남자가 되어야 주의 나라에 갈 수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지옥은 기독교만의 고유개념은 아니고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 요소다. 오히려 히브리인들에게 지옥은 늦게 찾아 왔다. 기원전 7세기  쓰여진 이사야서 마지막 절에 지옥 비슷한 묘사가 처음 나오기는 하지만 조르주 미누아의 표현처럼 히브리인들은 지옥의 존재를 놓고 기원전 3세기까지망설였다’.

그들이 나가서 나를 거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것이다그들을 먹는 벌레가 죽지 않으며, 그들을 삼키는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들을 보고 소름이 끼칠 것이다.(이사야 66:24, 새번역)

기원전 3세기 이후가 되서야 전도서나 다니엘서에서 구체적으로 죄와 지옥의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하는데 이것 역시히브리인들의 사상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조르주 미누아).

이런 망설임은 신약에 와서도 이어진다. 지옥은 바울 문서에 번만 나온다.

그리하여 하늘과 위와 아래(지옥, katachthónios, Inferno)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빌립보서 2:10, 새번역)

지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도마 행전, 베드로 묵시록 등이 정경에 속하지 않은 것을 보면 초대 교회 교부들도 지옥을 놓고 상당히 고심한 하다. 그러면 기독교권내에서 최초로 지옥에 (정확하게 말하면 다녀온) 특정인은 누구일까? 도마행전은 사람과 그의 죄를 특정한다. 기존의 이야기에 등장한 지옥의 죄인들은 이러저러한 죄를 지은 불특정 다수였던 것과 달리 도마행전에서는 특정했던 것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오래되지 않은 어떤 남성이 믿음을 지키며 순결하게 살겠다고 연인에게 밝히자 연인은 그러한 삶을 거부했다. 그러자 남성은 여성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오해를 하고 칼로 죽여 버렸다. 살인 직후에 성찬식에 참여한 남성의 손이 마비가 되어 성찬에 참여할 없었는데 도마가 시키는 대로 성수에 손을 담그자 손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남성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마와 함께 여성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가서 도마의 기도로 그녀를 되살려 놓는다. 죽음에서 깨어난 여성이 하는 말이 방금 지옥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곳은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으며 주로 성적으로 순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고문이 시작되려는 예수처럼 생긴 사람이 안내자에게 여자는 길잃은 양이니, 여자를 데려가라 하자 그녀의 숨이 되돌아 왔다. (도마행전 6 요약)

기독교권에서 처음으로지옥에 다녀온사람은 여성이었고, 남성의 순결 요구를 거절한 '죄'를 지었다.  초대 교회가 여성의 순결에 집착했던 이유는 순결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기 결정권이 뚜렷한 여성들이 남성에게 도전하려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초대교회의 성적 순결은 남녀모두에게 요구되었지만 남성의 살인보다 여성의 순결거부가 지옥에 갈만한 죄로 인식되었던 점은 부인할 없는 사실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권장한 금욕적 생활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교부 클레멘트는 결혼이 금욕적 생활보다 못한 차선책이며, 결혼을 후에도 배우자 각각이 금욕적인 삶에 헌신하는순결한 결혼 성적으로 활발한 결혼생활보다 낫다는 관점을 확립했다. (일레인 페이걸스, 아담, 이브, )

도마행전의 여인은 결혼 전에 이미 이러한 삶을 거부했으니 초대교회 입장에서는 지옥에 가도 마땅한 인물이었다. 오히려 교회는 그녀에게회개의 기회 허락하면서 남성중심적 세계관을 강고히 했다.

이러한 세계관은 초대교회가 막달라마리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예견된 일이었다. 

1945 12 이집트 나그함마디 사막에서 아주 흥미로운 문서가 발견되는데 시기는 쿰란(사해)문서가 발견된 1947 보다도 먼저다. ’나그함마디 문서’에 속한 빌립복음을 보면 구세주의 동료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녀를 나머지 제자들보다 사랑하셨으며 그녀에게 자주 입맞추곤 했다. 나머지 제자들은 이에 마음이 상하였다. (…) 그들은 예수께 여쭈었다. 우리들보다 여인을 사랑하십니까? 구세주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여인을 사랑하는 만큼 너희를 사랑하지 않겠느냐( 말씀하셨다).”

또한 나그함마디 문서에 속한 도마복음의 114장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우리를 떠나야 합니다. 여자들은 생명을 얻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여자를 인도하여 남자로 만들어 여자도 여러분 남자들처럼 살아계신 영이 되게 하겠습니다. 스스로를 남자로 만들어 여자도 여러분 남자들처럼 살아 계신 영이 되게 하겠습니다. 스스로를 남자로 만드는 여자가 천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녀를 인도해 온전한 사람-안드로포스 Anthropos-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너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숨결이 것이로되 온전한 사람이 여자는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 (오강남역, 붉은 글씨는 하희정의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에서 번역된 것)

 

초대교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시대상황을 고려한다해도 이처럼 폭력적이었다. 여성은 남성의 정서를 가진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만 주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도마복음), 여성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성의 일방적인 순결서약을 당연히 따라야 하는 존재로 규정했다(도마행전). 

초대교회의 여성의 지위에 쐐기를 박은 사람은 그레고리우스 교황이었다. 그는 591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에로틱한 분위를 연출한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로 규정하고 창녀라고 명토박아 버렸다. 창녀로 규정하기까지 세기 동안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자기 결정권이 강한 여성들을 지옥에 갈만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여론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중세의 마녀 사냥 역시 이러한 여론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중세가 정점에 달했을 단테는신곡 통해 지옥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죄목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신곡 기원전 1세기 베르길리우스가 저술한 로마의 국가 서사시이자 저승여행기의 형태를 아이네이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단테가신곡에서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로 베르길리우스를 소환한 것도 때문이다.

그레고리우스와 단테 사이에 700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여성의 성에 대한 인식은 괄목할 정도로 바뀌었다. 음탕한 죄를 지은 사람이 주로 여성인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신곡의 지옥편에서 음탕한 죄를 지은 사람은 번째 지옥에 있다. 다시말해 약한 지옥이라는 뜻이다. 거론되는 인물도 클레오파트라와 앗시리아 니누스 황제의 부인이었던 세미라미스 정도다.

연옥편에서도 색욕은 7번째 연옥,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구체적인 이름들이 많이 거론되지 않는다. 성의 문제는 천국편에서도 한번 언급되는데 첫번째 하늘인월성천에는 순결서약을 했으나 폭력에 의해서 좌절된 영혼들이 있다.  7번째 연옥의 바로 다음 단계가 첫번째 하늘이라는 점에서 단테는 색욕과 순결 서약의 실패를 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12세기 중세 유럽을 떠들석하게 했던 신부 아벨라르와 10대 때부터 그로부터 철학, 신학을 배워 뛰어난 여성 학자가 된 엘로이즈 사이에 벌어졌던 중세 최대의 연애 스캔들 사건을 단테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터인데 단테는 '신곡'에서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성의 성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바뀐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단테는 교황파 입장에서 피렌체의 개혁을 도왔으나 교황파로부터도 버림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단테의 여성관이 당시 교회의 여성관을 대표하지 않았다

단테의 여성관이 초대 교회 문서에서 보다는 너그러워질 수 있었던 까닭은 첫 사랑 베아트리체 때문일 것이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기획자다.

신곡에는 하나님도 있고, 예수도 있고, 성모마리아도 있지만 베아트리체가 핵심인물이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이런 상상의 동기가 되었어도 대단하지만 베아트리체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인물이라는 주장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베아트리체가 천국에서 단테를 만났을 때 지상에서 왜 다른 여성을 만났었냐고 그를 향해 질책까지 한다. 순결에 대한 질책에서 남녀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단테는 정점을 지나면서 무너져가는 중세를 가상의 여성을 통해 되살리려고 했던 대단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한국교회는 아직 도마행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차별금지법'에 경련하며 '순결서약'을 권장한다. 중세의 수준에도 미친 한국 교회의 여성관은 언제쯤 개선될 것인가?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1475~1485년, 프레스코, 이탈리아 볼로냐 국립회화관.
에르콜레 데 로베르티,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1475~1485년, 프레스코, 이탈리아 볼로냐 국립회화관.

 

오강남, ‘ 다른 예수’, 예담
하희정, ‘역사에서 사라진 그녀들’, 선율
일레인 페이걸스(류점성, 장혜경 옮김), ‘아담, 이브, , 아우라
바트 어만(허형은 옮김), ‘두렵고 황홀란 역사’, 갈라파고스
조르주 미누아(고준석 옮김), ‘간략한 지옥의 역사’, 가톨릭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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