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를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 / Philadelphia Diary
Thanksgiving를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 / Philadelphia Diary
  • 백의흠 목사
  • 승인 2022.12.09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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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Thanksgiving이다. 오랜만에 갖는 휴식이다. 이날만 되면 교인들과 아는 목사님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같이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올해는 아내가 무조건 쉬고 싶다고 말을 한다. 아내의 노고를 아는 나는 편할 대로 하라고 했다.

아내는 오늘 쉬는 날, 김치나 해야겠다며, 어제 가게를 마치고 한아름에 둘러 배추와 무를 사왔다. 나는 아침을 먹고 TV에서 하는 New York과 Philadelphia Parade를 채널을 돌려가며 보고 있는데, 김치와 깍두기를 만들기 위해 배추를 썰어 절이던 아내가 자꾸 젓갈이 없다고 말을 한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못하고 은근히 젓갈을 사왔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몇 번을 그냥 흘러 넘기고 Parade만 보고 있는데,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하고 주방에서 김치를 하는 아내가 애처로워서 내가 젓갈을 사러 가겠다고 했다.

아내가 좋아하면서 같이 가겠다고 한다. 내가 아내에게 "젓갈 사오라고 한마디만 하면 내가 당장 갔다 올 텐데 왜 그 말을 못하느냐? 나는 당신이 하라면 하는 로봇이 아니냐?"라고 하자 아내가 "당신이 로봇이면 나는 당신의 리모컨이야!"라고 한다.

집을 나서자 집 밑의 마트 앞에 경찰차가 숨어 있다. 우리 집 앞의 길이 주택가이기 때문에 제한 속도가 25MPH이다. 그런데 언덕길이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45마일을 초과한다. 무조건 다 잡히게 되어 있다. 아내가 "Thanksgiving인데도 경찰이 쉬지도 못하고 수고하네"라고 말한다.

한인 마트에 가서 아내는 장을 보고 나는 주차장에서 시동을 켠 채 아내를 기다린다. 그런데 내 앞쪽의 담벼락에서 래디가 낙엽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천천히 깨끗하게 쓸고 있었다. 나는 아내가 나올 때까지 15분 이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야! 저걸 언제 다 쓸어!"
한 시간 이상 쓴 것 같았다.
낙엽을 다 치우려면 족히 몇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오늘 Thanksgiving인데도 나이 70인 래디가 일하러 왔구나!'

성실한 래디가 대견하기도 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Turkey라도 사드시라고 돈을 줄까 생각하고 지갑을 뒤져보니 5불짜리만 몇 장 있었다.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아내가 나오자마자 "저기 래디가 있는데 Turkey Money라도 주자!" 하니 아내가 망설임도 없이 래디에게 간다.

내가 래디에게 악수를 하려 하자 장갑을 벗고 자기 손을 옷에 닦고 악수를 한다. 내가 래디를 꼭 껴앉자 래디도 나를 꼭 껴안는다. 아내가 "Thanksgiving인데도 일을 하냐?"고 묻자 "2시까지 일한다"고 한다고 한다.

아내가 "Thanksgiving 선물이니 Turkey라도 사 드시라!"고 돈을 건네자 래디가 펄쩍 뛰면서 거절한다. 내가 "괜찮다. 너는 나의 친구다. 내 마음이니 받아 주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한다. 아내가 "내 남편은 목사니까 괜찮다"고 해도 거절한다. 그래서 내가 래디의 손을 붙잡고 아내가 그의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었다.

래디가 할 수 없이 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한다. 래디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나도 눈물이 핑 돈다. 래디를 보면 내가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는다. "저렇게 순진하고 좋은 사람이 있을까?"

 

래디와 처음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아내가 집에 오면서 한마디 한다.
"오늘 잘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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