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아주세요
그냥 받아주세요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1.1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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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아래서

 

새로운 할머니 한 분이 예배에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교회는 새로 나오신 분들이 부담을 가지실까 봐 등록을 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려한다고 했는데 가끔은 새로운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새로 오신 분들이 계속해서 예배에 나오시면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등록하기를 원하시는지 묻습니다. 그 할머니 권사님도 계속해서 예배에 나오셨습니다. 새벽에도 저녁에도 늘 교회당에 나와서 기도하시는 참 귀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어떻게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셨는지를 여쭈었습니다.

권사님은 우리 동네의 작은 교회를 다니시던 분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목사님과 열심히 전도를 하셨지만 열매가 없어서 새벽에도 수요일에도 목사님과 둘이서만 예배를 드렸습니다. 개척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주일에도 열 명 미만의 성도가 모이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할머니는 교회가 성장이 안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오랫동안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권사님, 권사님이 다니시던 교회의 목사님은 저도 잘 아는데 정말 좋은 목사님입니다. 권사님이 교회를 옮기시면 그 목사님은 누구랑 전도를 다니고, 누구랑 새벽기도회를 합니까? 저도 교회를 개척해서 오랫동안 교우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면 목회자들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저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본 교회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신대원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라. 남의 목장에서 양을 빼앗으려고 하지 마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를 돌려보내고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정준경 목사는 늙어서 봉사도 못하고 헌금도 많이 못하는 사람은 받아주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알아보니 그 권사님께서 낸 소문이었습니다. 며칠 후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권사님, 이 세상에 성도가 자기 교회에 오는 것을 싫어할 목사는 없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오면 모두 좋아할 것입니다. 권사님이 오시면 저는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같은 동네에서 성도가 몇 명 안 되는 작은 교회의 권사님을 환영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누가 얼마나 헌금을 하는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우들이 헌금을 많이 하시는지 적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권사님처럼 열심히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교회에 꼭 필요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권사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권사님이 본 교회에서 섬기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한 마디도 거짓이 없는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자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성도들에게 교회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옮기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바로 옮기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저도 2년 이상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결정하고 나왔습니다. 목사님이 본 교회로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저는 이전 교회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교회 옆에 있는 다른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성도들이 찾아오면 그냥 받아주세요.”

충격이었습니다. 권사님의 말씀은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까지 그 권사님처럼 돌려보낸 성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왔던 교회로 돌아갔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바른 목회를 하겠다는 저의 교만이 그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다시 험지로 몰아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도 그 권사님의 원망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후 그 권사님이 다니시던 작은 교회의 목사님이 교회 문을 닫기로 결정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교회당을 찾아갔더니 목사님이 혼자서 옥상의 십자가 탑을 분해하고 있었습니다. 건물주가 원상복구를 하고 가라고 했답니다. 십자가 탑을 분해하면서 목사님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십자가 탑을 분해해서 고물상에 팔고 가는 목사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 목사님은 교회가 월세를 내지 못해서 보증금도 다 까먹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생계를 위해서 대리운전을 하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 목사님은 무능하고 게으른 목사님이 아닙니다. 공부도 많이 하셔서 실력도 있고, 성품도 착하고 성실하신 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성도님들을 사랑하시고 전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지 못해서 결국 교회 문을 닫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왜 저 같은 목사는 목회를 계속하게 하시고, 그 목사님은 목회를 멈추게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목회 현장의 상황은 힘들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목회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회의 성공과 실패는 주님의 평가에 달려있습니다. 주님께서 성공했다고 하시면 성공한 것이고, 주님께서 실패했다고 하시면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주님의 평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다를 것입니다. 저는 그때 그 성도님들에게 그 목사님의 사랑과 기도와 말씀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저는 새가족들이 오면 어떻게 왔느냐고 물은 후에 그 권사님의 이야기를 해드리곤 했습니다. 저의 말을 듣고 나왔던 교회로 다시 가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권사님의 말씀이 맞다면서 등록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목회 현장은 가슴 아픈 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정준경 목사 / <서울 우면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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