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 세 시간의 대화
수요일 저녁 세 시간의 대화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1.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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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아래서

무더운 여름, 할아버지는 우리 교회당 앞에서 폐지를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마트에서 나온 폐지가 많아서 그런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이 할아버지 말고도 폐지를 모아서 파시는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계십니다. 폐지는 누구나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여서 어떤 분들은 어두운 새벽에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기도 합니다. 
 
저는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서 할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평소에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주고받아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저를 안다는 표정을 건네시고 음료수를 받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목이 마르셨는지 음료수를 한숨에 다 드셨습니다. 그리고 건네신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나이 들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워요.” 
 
예상하지 못한 할아버지의 말씀에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뭐가 부끄러워요?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서 사는 것이 부끄러운 거죠. 할아버지처럼 정직하게 땀 흘려서 사시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본받아야죠. 동네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해서 환경도 좋아지게 하시는 거잖아요.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사실 그때까지 저는 폐지를 주우시는 어르신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내 일들만 가득해서 날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웃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말이 고마웠는지 할아버지는 접힌 박스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쪼그리고 앉아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말씀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저녁에 해야 할 수요기도회 설교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도 박스에 편하게 앉아서 할아버지의 말씀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수요일 오후 세 시간 동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0년 넘게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인생을 대충만 들었는데도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답니다. 어릴 때 배를 너무 많이 곯아서 키가 크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소원은 빨리 커서 군대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군대에 가면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소원이 굶지 않기 위해서 군대에 가는 것이라니,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하시면서 악착같이 사셨답니다. 설움도 참 많이 받으셨는데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결혼을 해서 아들 하나, 딸 셋을 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양재동에서 식당을 하셨는데 장사가 잘돼서 돈을 많이 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셔서 10여 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아내가 쓰러진 이후부터는 식당을 할 수도 없었고,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습니다. 아내가 떠난 이후, 자신의 모난 성격 때문에 자녀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셨다며 후회하셨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자녀들은 잘 성장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신다며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모두 부요하게 잘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폐지를 줍지 말라고 하시는데, 할아버지는 아직도 건강하니까 폐지를 주어서 용돈도 쓰고 손주들에게 과자도 사주실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바쁜 목사님의 시간을 많이 뺏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한 권의 좋은 책을 읽은 것 같았습니다. 물론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의 교훈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가 앞선 세대의 희생과 땀방울 때문이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주셔서 우리 후손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할아버지는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에게 폐가 되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지금 이 좋은 세상을 위해서 젊은이들이 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구어 놓으신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당당하게 받으세요.”  
 
할아버지는 그래도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뭐가 그렇게 미안한 것이 많을까요?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서 죽도록 일만 하시고, 이제 살만한 세상이 되니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늙고 병들어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시는데 뭐가 그렇게 미안하실까요?  
 
몇 년 후에 할아버지는 더 이상 혼자 사실 수가 없어서 인천에서 사시는 따님 댁 근처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요즘도 가끔 할아버지가 모자를 쓰고 땀 흘리며 일하시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를 위해서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모난 성질을 좀 고치셔서 자녀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기도하곤 합니다. 
 
할아버지를 만난 이후 저에게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입을 닫고 귀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수요기도회 시간이 오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마다 교우들을 만납니다. 만나서 세 시간씩 교우들이 살아온 삶을 듣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코이수저(코이노니아 수요일 저녁)라고 부릅니다. 오랫동안 우면동교회를 다닌 교우들인데 제가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목회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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