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헛소리
거룩한 헛소리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1.1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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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경목사의 우면산 아래서

그때까지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 주일에 찬양대 연습실에서 반주하던 아내가 예배 시작 직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몇몇 교우들에게 아내를 부탁하고 저는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예배 중에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속으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아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겉으로는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침착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더위를 먹고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곧 회복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몰래 혼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습니다. 아내가 저 때문에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저는 목사는 청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목사의 집에서 에어컨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돈으로 선교하고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그렇게 살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여름마다 힘들어하던 아내가 쓰러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선교하고 구제하다가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것보다 에어컨을 사용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 주간에 우리 집에 벽걸이 에어컨이 생겼습니다. 전기 요금도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해 여름, 저는 운영위원회와 에어컨에 대해서 의논을 했습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 에어컨이 없는 가정들을 조사해서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해 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만장일치로 찬성했습니다. 연로하신 교우들의 가정부터 시작해서 요청하는 모든 가정에 에어컨을 달아드렸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가정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는 에어컨만 달아드리면 안 됩니다. 전기 요금이 부담돼서 에어컨을 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여름철마다 전기 요금을 지원해 드렸습니다. 교우들이 더위를 먹고 쓰러지면 목사가 괴로우니까 목사를 생각해서라도 전기 요금을 걱정하지 마시고 에어컨을 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우면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는 구제국에 올여름에도 해마다 해오던 것처럼 전기 요금을 지원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구제국원들이 전기 요금 지원 사역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구제국원들이 바뀌기도 했지만, 우리 교회는 우면동에 와서 한 번도 전기 요금을 지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전기 요금 지원 사역이 멈추고 있었는데, 저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내가 치매인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코로나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힘들었던 시절을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덧 에어컨이 익숙해졌고,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조금 커지고, 사례비도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난한 성도들의 힘겨운 삶을 잊은 것입니다. 아무리 그건 아니라고 부인하려 해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목사는 교회가 커질수록 점점 타락하는 것 같습니다. 입으로만 사랑하라고 외치는, 거룩한 헛소리를 하면서... 주님 앞에서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저는 왜 초심을 잃은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제가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돌봐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을 알고 있었고, 설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알게 되면, 그리고 그 말씀을 설교하면서 살게 되면 자신이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거룩한 헛소리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설교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데, 알고 있으면 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며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는 왜 그렇게 설교했으면서 네가 설교한 대로 살지 않았느냐?”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후배 목사가 찾아와서 자신이 목회를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저는 번지수가 틀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건 나에게 물어볼 질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후배 목사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너희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는 분들에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지 병든 교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목회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바르게 목회하면 교회는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껴 쓰고,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는 풍성하게 나눌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용기를 내서 재정을 담당하는 성도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가 거룩한 헛소리만 하는 교회는 재정을 담당하는 성도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실천하면서 운영되면 재정을 담당하는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재정을 담당하는 성도들이 실망을 하고 시험에 들 것입니다.

“목소리가 아닌 말의 가치를 높여라. 꽃을 피우는 것은 비다. 천둥이 아니다.”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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