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존재는 가볍지만 실존은 무겁다
(커피 이야기) 존재는 가볍지만 실존은 무겁다
  • 류태희
  • 승인 2023.07.27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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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의 커피 이야기)밀란 쿤데라를 위한 커피

밀란 쿤데라를 위한 커피. 밀란 쿤데라가 떠난 지도 어느덧 이 주일이다. 바로 그의 떠남을 추모하고 싶었으나 게으른 나의 천성은 따라 주지 않는 체력을 핑계로 추모의 글조차 이리 더디게 쓰게 하는 듯하다. 추모의 글을 늦었지만 그가 떠나던 날, 소식을 듣자마자 난 그에게 어울리는 커피를 볶았다. 그의 삶을, 그리고 그의 글을 삶의 의미가 거세된 가벼움으로만 기억하기 싫어서 삶의 목적이나 의미 같은 무거움이 아닌 맛과 향이 찰나에 주고 사라질 수 있는 무거움을 선사하고 싶어서 과테말라 휴휴테낭고 워시드를 볶았다. 하지만 동시에 우연히 이 지구란 별에 떨어져 운명이란 단어로 아무리 해석하려 해도 해석되지 않는, 삶의 의미 너머로 중력을 거슬러 바람에 날리는 깃털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그와 같이 찬양하고 싶기도 해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내추럴도 볶았다. 그렇게 볶아놓은 과테말라와 에티오피아 커피를 4대 1 비율로 섞어서 그에게 한잔, 그리고 나에게 한잔 선물한다.

에티오피아 커피 노동자들- '블랙 골드' 화면 갈무리
에티오피아 커피 노동자들- '블랙 골드' 화면 갈무리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나는 존재의 가벼움을, 그리고 존재의 무거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왜 존재의 가벼움을, 아니 존재의 무게감을 참지 못하는 그 무엇이라고 표현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 역시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놓인 그 거대한 간극이 존재의 노력으로 메워지지 않을 것이란 걸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란 그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의미와 무의미의 사이에서, 우연과 인과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진동하며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 간극이 넓이가 넓을수록 그 간극사이에서 너무 큰 진폭으로 우리 삶이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간극이 주는 공간덕에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도 일생을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면 자유를 만끽했듯 나 역시 그 우연과 소명사이에서 끊임없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유로와 져야겠다는 생각이 커피 한모금에 섞여 목구멍을 넘어간다.

밀란 쿤데라에게 선사한 커피에 섞은 에티오피아 커피는 달달한 꽃향과 상큼한 산미가 매력적인 커피이다. 산미에 관해서라면 에티오피아를 따라올 커피는 없다. 꽃향을 머금은 가벼운 산미라면 더더욱 에티오피아가 독보적이다. 커피나무가 처음 태어난 땅이 에티오피아다 보니 어쩌면 꽃향과 산미는 커피의 본연의 맛과 향일수도 있다. 산미는 분노를 조절하는데 효용이 있다. 에티오피아 커피가 가진 꽃향이 묻은 산미는 우리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분노할 때, 삶의 목적과 의미가 우리를 심연으로 주저앉힐 때 우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우리를 일으켜 세워줄 부력을 선물한다.

에티오피아커피와는 반대로 과테말라커피에는 무게감이 있다. 마치 다이버들이 물 위로 밀어 올리는 부력에 대항해 착용하는 납벨트 같은 역할을 해준다. 무게감이 없이는 의미 없이 날뛰는 성난 파도만 보일뿐 물속의 평온함을 볼 수 없고 잔잔한 물결의 지루함만 보아서는 물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생명력을 느끼지 못한다. 반드시 수면 밑으로 내려가야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의미의 세상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수면 밑으로 가라앉혀줄 수 있는 무게를 과테말라 커피는 제공해 준다.

이런 이유로 난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간극에서 끊임없이 흔들릴 우리들을 위해, 그리고 그 흔들림을 끝까지 즐기고 떠난 밀란 쿤데라를 추모하기위해 에티오피아와 과테말라를 섞어서 커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맛은 한마디로 “쨍”하다. 아마도 끊임없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진동해야 할 어지러움 때문인 듯싶다.

이런 어지러움에는 에티오피아 커피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도 영향을 미친다. 에티오피아 커피 노동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블랙골드(2007년)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는 1,500만명 이상이 커피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고 이 나라 수출액 중 67%가 커피로 인한 것이다. 가히 커피 명가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의 노동 현실은 커피 맛처럼 씁쓸하다. 커피의 씁쓸함이 주는 달콤함의 비밀은 에티오피아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는 날 밝혀질까? 존재는 가볍고 싶은데 실존은 여전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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