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이 요셉이라고? 아도니야에 가깝다
황교안이 요셉이라고? 아도니야에 가깝다
  • 김기대
  • 승인 2019.03.29 0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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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는 더더욱 아니다

극우 기독교계에서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다음 대통령으로 낙점하고 그를 밀고 있는 모양새다. 교회는 모진 세월을 견디고 난 후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의 이미지를 그에게 덧입히는데 과연 황교안이 모진 고난의 시절을 살아 왔을까? 안타깝게도 ‘총리’라는 단어 말고 요셉과 비슷한 점이 없어 보인다. 

그는 고물상집 아들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지금 폐지를 주워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 고물상은 일종의 만물상으로 서민들이 애용하던 중고물품상이었다. 그의 집안이 가난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금의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만물상의 주인은 가난한 계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황교안은 평준화 이전 최고의 명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머리 좋은 그는 일찍부터 주변의 총애를 받았을 것이기에 요셉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 총애를 받았던 것과 비교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황교안과 요셉을 연결하면서 발견하고 싶어하는 이미지는 ‘고난’이기 때문에 이 또한 맞지 않다. 게다가 그는 고교시절 학도호국단장을 맡았다. 유신시절 일찍 정치에 눈뜬 학생들이 많았던 경기고등학교의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교련복을 입고 잔뜩 힘을 준 그를 학우들이 ‘조롱’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이 조롱을 고난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에게 찾아온 첫 고난의 시기는 서울법대 진학실패다. 재수를 했으니 그는 서울 법대 입시에 두번 실패했다는 말이다. 학생들이 서울법대에 응시할만한 실력을 가진 것만으로도 수재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경기고등학교와는 상관없는 말이다. 서울대 진학을 당연시 할만큼 경기고는 명문교였다. 그가 재수를 해서 경쟁한 상대들은 전년도에 비해 학력이 떨어지는 평준화 1기들이다. 여기서도 고배를 마신 황교안은 이를 악물고 고시공부를 했을 것이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얼마나 공부가 힘들었으면 피부병이 다 걸렸겠는가? 두번의 입시실패로 인한 고난의 시기 또한 요셉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했을 지옥의 경험에 버금가는 군대를 면제 받은 그는 꽃길을 걸은 검사였지 요셉처럼 남의 집 종살이도 감옥살이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간증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검사들이 지방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언급하는데 이 ‘좌천’에서도 살아났으니 요셉과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다. 그 시절 검사장이 안된 것이 그가 말한 유일한 고난의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요셉 이미지에 묻어 가려고 한 것 같은데 과연 합당한 비유일까? 위키백과가 정리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의 그의 경력을 보면 결코 한직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1997.02 ~ 1999.06: 사법연수원 교수

1999.06 ~ 2000.02: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5부 부장검사

2000.02 ~ 2000.07: 대검찰청 공안3과장

2000.07 ~ 2001.06: 대검찰청 공안1과장

2001.06 ~ 2002.02: 서울지방검찰청 컴퓨터수사부 부장검사

2002.02 ~ 2003.03: 서울지방검찰청 공안2부 부장검사

2003.03 ~ 2004.05: 부산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2004.06 ~ 2005.04: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2005.04 ~ 2006.02: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2006.02 ~ 2007.03: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지청장

2007.03 ~ 2008.03: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그의 말대로 다른 공안검사들이 지방으로 좌천되고 사표를 내던 시절에도 그의 경력은 화려했다. 검사장 진급이 남들보다 늦었을지는 몰라도 이 정도 경력이 고난이라면 고난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보는게 정확하다. 

그는 아도니야의 결정적 실수,

즉 아비삭을 달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행동도 한다.

그렇다면 요셉 이미지 대신 성서의 인물 중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면 누가 있을까?

다윗의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는 다윗 후계를 꿈꾸는 야심이 많은 왕자였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압살롬에게 살해 당하고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었기 때문에 아도니야는 자신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사무엘하 3:1∼5). 그는 후계를 준비하면서 요압과 아비아달을 끌어들여 이른바 출마선언을 한다 (열왕상 1: 5). 하지만 나단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의 편에 서지 않고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와 대책을 강구한다. 아도니야가 후계로 굳어진 솔로몬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실적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왕이라고 참칭한 그는 제사장을 불러다가 제사를 지내고 사람들을 모아 그를 향해 환호하게 만드는 이벤트를 제일 먼저 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아도니야는 급하게 밧세바를 찾는데 이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그는 밧세바에게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요청했다. 아비삭은 다윗이 임종이 가까워 병상에 있을 때 밧세바가 간호를 위해 다윗의 침실에 넣어준 여인이었다. 정식 후궁은 아니었지만 아비삭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사방 영토내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찾았던 것을 보면 단순한 간병인의 수준은 아니었다. (열왕상 1:3). 아도니야는 아버지의 여자를 공유할 힘을 가졌다는 점을 부각해 밧세바와 솔로몬을 겁박하려 했을 것이다. 이 위세에 어느 정도 눌린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제안을 솔로몬에게 전하는데 이 제안이 솔로몬의 분노를 자아내 그는 정치적 종말을 맞는다. 

황교안 대표가 정치적 야심을 갖는 것은 자유다. 그가 안정감 있는 차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없고 ‘좌파 독재’ 따위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실적은 커녕 박근혜 탄핵후 증발된 특수활동비 35억, 병역면제, 김학의 사건 인지 여부 등의 구설수가 뒤따른다. 아도니야가 그랬듯이 종교적 열심을 전면에 내세우고 환호에 의존한다.  

아도니야의 결정적 실수, 즉 아비삭을 달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행동도 한다. 그는 대통령 대행 시절 수감중인 박근혜 전대통령이 구치소에 침대를 넣어 줄 것을 요청했는데도 거절했다. 침대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제공되었다. 이처럼 그는 탄핵을 당한 후 박근혜와 거리를 두다가 요즘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박근혜의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데 그 모습이 아비삭 사건과 닮아 있다.

그가 한국의 건전한 보수를 대변하는 신망있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요셉 코스프레를 벗어나야 하지만 아도니야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참신한 정책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한다. 

황교안 대표에게 마음이 옮겨가지 않은 일부 박근혜 전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은 그가 박전대통령을 배신했다고 해서 가룟 유다에 비교하곤 하는데 이는 더더욱 안될 말이다. 가룟유다는 예수와 가는 길은 달랐지만 누구보다도 민족을 먼저 생각하던 열심당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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