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상처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대에게
상처를 상처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대에게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0.08.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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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영봉, 가만히 위로하는 마음으로, IVP, 2019년
2020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김영봉 목사의 신간(사진=책 표지)

 

[뉴스M=장민혁 크리에이터] 매주 하루는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DJ는 아니고 고정 게스트인데, 도착한 사연에 대해 상담해주는 역할이다. 필자는 얄팍한 신학지식을 엮어 나름의 해결방안을 제시해 보곤 하는데, 답변을 하면서도 늘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정답만 말하려는 건 아닌지, 청취자의 고민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마음으로 함께 해주는 것이 먼저이고 또 전부인 건 아닌지 싶어서 말이다.

MBTI 검사 때마다 ‘사고중심형’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필자에게, 공감과 위로는 참 어렵고 서툰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 주 라디오 주제가 “위로 특집” 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어디 가서 위로 특훈이라도 받고 방송에 임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마침 누군가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위로를 잘 못해 고민인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심정으로 첫 장을 넘겼다.

[가만히 위로하는 마음으로].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참 따스하다. 가만히, 위로하는, 마음으로. 찔리는 마음도 든다. 특히 ‘가만히’ 위로한다는 게 좋다. 위로란 요란스러운 말과 행동이 아닌, 우직하게 귀와 어깨를 내어 줌으로 시작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듯 싶다. 책을 쓴 김영봉 목사님과는 두 번째 만남인데, 이 책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나는 왜 믿는가?] (복 있는 사람)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김 목사님의 글은 문장이 쉽고 간결해서, 부담 없이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저자는 느슨하지만 선명한 흐름으로 글을 엮어 나간다. 책으로 건네는 저자의 위로는 저마다의 아픔을 솔직하게 인정하자며 운을 뗀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우리는 상처받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해야 합니다.” (22) 우리 모두는 아프다는 공감대 아래,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픔이 연결된다. 나 자신의 우울증과 삶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로 확장되며, 개인의 용서는 공동체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글은 불의한 현실과 고난을 대하는 지혜를 나눈 뒤 죽음을 대면하는 기독교인의 자세를 다루며 마침표를 찍는다.

위로 특훈을 마치며 필자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필자가 위로에 서툰 이유는 상처에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고, 외로울 때 외롭다고 말하고, 울어야 할 때 울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상처에 정직해지는 길입니다.” (22) 생활고를 겪던 어린 시절부터 혹여나 필자의 투정에 부모님께서 속상하실까 봐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어른이 되었다. 전도사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지금도 여간해선 아프다, 지친다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힘들지 않다고, 필자 자신까지 속이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 힘들 때 딱히 해줄 말과 행동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처를 꼭꼭 숨기고 살아온 탓에, 위로받아본 경험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헨리 나우웬이 말하듯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야 할 텐데, 치유자로 나서기엔 아직 ‘상처 입은 나’를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다. 위로에 필요한 단 한 가지, 어쩌면 용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 타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용기, 그리고 ‘나’와 ‘너’의 걱정을 ‘우리’의 고민으로 끌어안을 용기.

저자의 부드러운 토닥임을 받다 보면, 어느새 한 줌 용기를 얻어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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