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서사와, 기록 속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목소리 사이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이동해 지음, 휴머니스트출판그룹)는 그러한 불편함을 직면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일제의 치안기구가 작성한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서 출발한다. 경찰 기록이라는 차가운 자료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단순한 감시의 흔적이 아니라, 이름 없는 다수의 숨결과 삶의 결기다.
1965년 내무부 치안국 창고에서 유관순의 수감 사진이 발견되며 알려지기 시작한 이 카드들은,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경찰에 보관되다가 1980년대 말 국사편찬위원회로 이관되며 세상에 드러났다. 약 6000여 장 가운데 4837명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교과서에 실린 영웅적 인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 40명의 이야기를 세심히 복원해 냈다는 데 있다. 학생, 교사, 점원, 소작인, 지역 유지, 심지어 좀도둑까지—이들의 일상은 ‘순응적 식민지 조선인’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작은 카드 한 장이지만 그 울림은 크다. 그 속에서 우리는 쉼 없는 저항의 흔적을 본다. 치안 당국자의 눈으로 본다면 끊임없는 골칫거리였을 것이고, 역사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한 시대를 다시 읽게 만드는 귀중한 사료다.
책 제목은 독립운동가 황웅도의 글에서 따왔다. 그는 3·1운동 당시 고성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된 후에도 ‘고성일심회’를 조직해 활동을 이어갔다. 1934년 남긴 글은 오늘날에도 강한 울림을 전한다.
“우리 사회가 작년 이래 처음으로 눈을 떠서 손을 움직여 수백 년간 황폐하고 쇠퇴하여 꽃이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황웅도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신앙은 단순한 개인적 구원의 체험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향한 신념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기독교는 많은 이들에게 독립운동의 학교였다. 교회는 억압된 공간 속에서 서로의 자유를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복음의 메시지는 곧 “민족의 자주와 해방”이라는 정치적·윤리적 외침으로 연결되었다.
3·1운동에 앞장섰던 수많은 기독교인들, 감옥과 고문을 마다하지 않았던 목회자와 청년들은 모두 같은 신앙을 공유했다. 신앙은 하늘나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정의와 자유를 세우라는 부름이었다. 황웅도의 호미와 괭이의 은유는 바로 그 기독교적 토양 속에서 자라난 희망의 언어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를 떠올리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일제강점기의 교회가 독립과 자주의 배움터였다면, 21세기 한국 교회 일부는 외세 의존과 권력 추종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당시 신앙인들은 복음을 통해 식민 권력에 맞섰으나, 오늘날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외세의 논리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강대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당연시하거나, 무역 압박과 경제 종속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도대체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신앙이 독립과 자주를 가르쳐주었던 시절과 달리, 오늘날 교회가 외세 의존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본질을 배반하는 일이 아닐까? 황웅도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그분들이 믿은 기독교와 아스팔트 위의 저들이 믿는 개신교가 과연 같은 신앙인가?”라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한 영웅만이 아니라, 이름 없는 다수의 작은 발걸음이었다.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을 이어갔다. 그 사실은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2025년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압박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관세 강화,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압박, 글로벌 경제 재편 속의 불리한 협상 구도. 정부와 대기업이 전면에 나서 협상하겠지만, 실상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시민들의 목소리다. 생활 현장에서 자영업자, 노동자, 청년, 농민이 각자 호미와 괭이를 들어 풀뿌리를 가꾸고 자갈(극우)을 치워내는 일이 시급하다.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복원하는 책이 아니다. 이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가 모여 거대한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앙이 독립과 자주를 가르쳤던 시절, 교회는 희망의 등불이었다.
결국 나라를 새롭게 일구는 힘은 정부나 대기업의 회담장이 아니라, 시민들의 호미와 괭이에서 비롯된다. 역사는 언제나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작은 실천 속에서 움직여왔다. 꽃이 떨어진 동산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산을 가꾸는 것은 이름 없는 시민들의 손, 그리고 독립과 자주를 잊지 않는 신앙의 목소리일 것이다.
이번 책 : 이동해,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지난 책 :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플루토 크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