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동산 시장이 10.15 대책 이후 거래가 급감하고 가격 상승률도 둔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지속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가격이 하락세로 급전직하한 것도 아니다.
기실 이미 이재명 정부는 서울 등의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세 가지 조건은 대략 충족시켰다고 봐야 옳다. 금융의 부동산 시장 유입의 최소화, 갭 투기에 대한 강력한 통제, 시세 조작 등 시장교란 행위 엄단이 그것이다.
이제 남은 것 중 하나는 특히 ‘한강 벨트’에 과잉집중된 투기수요를 억제할 기대수익률 하락 장치의 도입이다. 이를 위한 최적의 정책수단이 종부세 현실화임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종부세 현실화를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단행할 로드맵을 설계하고 발표해야 옳다. 1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 및 노령자 특별공제를 대폭 없애고, 보유 주택 수가 아니라 합산가액을 기준으로 하는 등의 개혁내용이 포함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입장에선 내년 6월 열리는 지방선거의 승리가 절박하고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지상과제라 종부세를 건드리는 것이 영 내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울 요지에 공급 폭탄을 퍼부어 시장을 하향 안정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뻔한 공급대책은 시장 투기심리만 부추길 뿐
서울에 공급대책을 설계함에 있어 관건이자 핵심은 온갖 플랫폼과 디지털 디바이스로 완전 무장한 시장참여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혁신적·파괴적 공급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재명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이 시장의 외면을 받은 건 시장이 예상하는 대책들로 채워져 있어서였다. 주택공급 이슈가 있는 서울 같은 경우 노후 공공임대주택 전면 재건축, 노후 공공청사 등 재정비·복합개발, 도심 내 유휴부지 활용 공급, 정비사업 제도 종합 개편 등등의 대책들은 소비자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이 시장 심리 안정에 실패한 까닭은 무엇보다 서울에 획기적인 주택공급이 단기간에 이뤄질 것이란 신호를 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주택공급대책의 필요충분조건 다섯 가지
그렇다면 혁신적·파괴적 공급의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이며 어떻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 공급대책의 필요충분조건은 새로운 유형, 압도적 물량, 최적의 입지, 최대한 빠른 입주타이밍, 시장 중립성이라는 다섯 가지다. 이를 풀어 설명하자면 기존의 분양·임대 이외의 공급유형을, 최소한 서울 아파트 1년 입주 물량을 아득히 상회하는 물량으로, 직주 근접(직장-주거지 근접지역)의 요지에, 5년 이내 입주가 가능하면서도, 시장에 투기재료로 기능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에 주택공급이 끊임없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주택공급이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긴커녕 오히려 투기심리에 휘발유를 붓는 역할을 했던 건 위에서 열거한 조건들과 어긋나는 지점이 많아서다.
용산공원부지·태릉골프장에 토지임대부 및 공공임대 주택을 대량 공급하자
취지는 좋은데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주택공급이 서울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용산공원 예정 부지 100만 평에 토지임대부 주택을 용적을 최대한 많이 줘서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용산정비창(면적 약 51만㎡)이 용산공원 예정부지의 1/6 크기다. 그런 용산정비창 부지에 정부는 1만 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준주거지역 예정인 용산정비창을 중심상업지역으로 지정하면 2만 가구도 가능하다고 한다. 용적률이 배 이상 늘기 때문이다.
단순히 계산해 봐도 용산정비창에 1만 가구가 들어갈 수 있다면 용산공원 예정 부지에는 6만 가구가 가능하다. 만약 용산공원 예정 부지를 중심상업지역으로 지정하면 10만 가구도 너끈히 가능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서울 아파트 준공물량(입주물량)이 대략 3만 8000호였다. 만약 용산공원 예정부지에 최대 10만 호의 주택이, 토지임대부 형식으로, 일시에 공급된다면 시장참여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압도적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앞서 혁신적·파괴적 공급대책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새로운 유형, 압도적 물량, 최적의 입지, 빠른 입주타이밍, 시장 중립성의 다섯 가지를 들었다. 용산공원 예정부지에 최대 10만 호의 아파트를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한다면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며 투기의 재료는커녕 시장 안정의 트리거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
주지하다시피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는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공급유형이다. 건물을 분양받는 사람은 전용 25.7제곱미터 아파트를 대략 3~4억 원 남짓에 매수한 후, 매년 공공에 시장 가치 상당액의 토지임대료를 납부하며 평생 자가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다. 건물에 대한 재산권 행사는 전적으로 보장된다.
용산공원 예정 부지에 공급되는 10만 호 토지임대부 아파트는, 분양 혹은 임대라는 선택지 이외의 선택지라는 차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주택공급방식이 될 것이다. 물량은 서울 아파트 평균 입주물량 3년치에 해당할 만큼 압도적이다. 입지는 강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국공유지인 만큼 정부가 결심만 하면 재개발이나 재건축과는 입주속도가 비교될 수 없이 빠를 것이다. 끝으로 서울에서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은 투기 유발형 공급인 반면, 토지임대부 방식은 시장 중립을 넘어 시장안정형 공급이다.
또한 용산공원예정부지만이 아니라 태릉골프장에도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태릉골프장도 공공주택을 대규모로 밀어넣기에 최적의 자리다. 한편 공급물량은 조절할 수 있을 것이고, 공급유형도 토지임대부 분양주택과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함께 공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용산에 필요한 건 ‘공원’이 아니라 ‘공공주택’
만약 이재명 정부가 용산공원 예정부지와 태릉골프장 등을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한다면, 주택시장은 중대한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무주택자들의 추격매수세는 실종될 것이고, 멀지 않은 장래에 공급 폭탄이 시장에 투하될 것을 우려하는 주택소유자들이 대거 주택 처분에 나설 확률이 있다. 가격 하락이 전망되니 지금이라도 시세차익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보유세 폭탄 대신 공급 폭탄으로 시장을 하향 안정화시킬 묘방인 셈이다.
용산에 공원을 만들자는 사람들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서울은 시내 곳곳에 좋은 명산들이 산재하는 천혜의 도읍이다. 센트럴파크 같은 도심 한복판의 대규모 공원이 필요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
단언컨대 용산에 서울판 센트럴파크를 조성한다면 그 편익과 수혜는 그 주변의 초고가 주택소유자들이 독식할 것이다. 지금 용산에 절박하게 필요한 건 공원이 아니라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들어가서 안온하게 살 수 있는 ‘부담가능한 공공주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