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4일, 미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저녁 9시 경(미 동부 시간)을 전후해서 각 주요 언론은 조흐란 맘다니(Zohran Mamdani)의 당선 소식을 타전했다.
그는 불과 34세. 이민자 가정 출신의 젊은 정치인이, 그것도 무슬림이자 사회주의자로서 미국 최대 도시의 수장이 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정권 교체가 아니라, 미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1. 우간다에서 뉴욕까지 — 인권과 예술의 유산을 물려받은 가족
맘다니는 우간다 캄팔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권학자이자 포스트콜로니얼 이론가 마무두 맘다니(Mahmood Mamdani)이며, 어머니는 인도계 영화감독 미라 네어(Mira Nair)다. 미라 네어는 ‘Salaam Bombay!’ ‘Monsoon Wedding’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감독으로, 인도와 아프리카의 사회적 현실을 영화적으로 풀어내며 “서구의 시선에 맞선 대안적 스토리텔러”로 평가받는다. 몬순 웨딩은 200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조흐란은 어린 시절부터 인권 감수성과 예술적 상상력을 함께 배웠다. 그는 어머니의 영화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와 이주민의 이야기를 보았고,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식민주의의 구조적 폭력과 사회정의의 언어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의 삶은 ‘세계시민적 감수성’ 위에 세워져 있다. 우간다에서 태어나,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뉴욕에서 정체성을 완성한 그는 “국경 없는 세대”의 대표격이다.
2. 무슬림, 아프리카계, 사회주의자 — 세 겹의 경계 넘기
맘다니의 정체성은 미국 정치의 기존 구도를 송두리째 흔든다. 그는 우간다 출신의 무슬림(시아파) 이민자 2세이자, 민주사회주의자(DSA)로 자신을 명확히 규정한다.
그동안, 특히 트럼프의 두번의 집권기동안 미국 정치의 중심은 백인, 개신교, 중산층 남성이 차지해 왔다. 그 정체성은 ‘전통적 미국인상’으로 신화화되어 있었고, 트럼프 정부 시기에는 그것이 다시 강화되었다. ‘백인 기독교 중심’의 정치문화는 배타성과 우월감 위에 세워진 정체성 정치였다.
하지만 맘다니의 등장은 이 오래된 신화를 무너뜨렸다. 그의 승리는 미국이 더 이상 ‘단일한 미국’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다중적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3. 맘다니의 정치철학 - 거리 중심의 정치인
맘다니는 뉴욕 주 하원의원 시절부터 이미 급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정책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임대료 동결, 무상 대중교통, 공공주택 확충, 부유세 도입 등 ‘사회적 정의’를 중심으로 한 정책을 꾸준히 내놓았다. 이런 접근은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실제로 뉴욕의 서민과 이민자, 흑인·라틴계 공동체의 현실적 고통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인권학자의 아들이자 예술가의 아들로서, 그는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정의를 보고자 했다. 이 점에서 맘다니는 과거 미국 진보 정치인들과도 다르다. 그는 ‘워싱턴의 정치’를 넘어, 이민자 노동자와 지하철, 거리, 그리고 소규모 상점의 언어로 말하는 정치인이다.
4. 트럼프의 그림자와의 단절
맘다니의 승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누구를 넘어섰는지를 봐야 한다. 이민자에 대한 배타, 무슬림 입국금지, 흑인 생명운동에 대한 적대가 일상화된 미국의 현실에서 맘다니의 당선은 새로운 미국의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맘다니의 당선을 두려워 했지마 결국 당선됐다. ‘정체성의 폐쇄’가 미국의 현실에서 뉴욕 시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맘다니는 바로 그 반대편에 섰다. 그는 무슬림임을 숨기지 않았고, 사회주의자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심지어 보수 언론은 그의 가족 배경을 들어 “좌파 엘리트의 아들”이라 비판했지만, 유권자들은 오히려 그를 통해‘새로운 미국의 가능성’을 보았다. 맘다니의 당선은 트럼프 이후 미국 정치가 ‘백인 중심의 동일성’을 벗어나 다양성의 회복력(diversity resilience)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5. 뉴욕이 먼저 움직이면, 미국이 따라온다
뉴욕은 언제나 미국의 실험실이었다. 인종, 언어, 종교가 가장 다양하게 얽힌 도시이자,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무슬림 사회주의자가 시장으로 당선됐다는 것은, 단순한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전국적 정치문화의 변곡점이다.
그의 승리는 젊은 세대의 감수성과도 맞닿아 있다. 기후위기, 주거난, 의료비 폭등, 총기 문제 등 당대의 문제를 ‘체제적 정의’로 해결하려는 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맘다니는 그 세대의 언어로 말한다. 이번 선거의 화두는 생존을 위해 투표가 아니라 존엄을 위한 투표였다. 이 말은 뉴욕을 넘어, 오늘의 미국이 듣고 싶어 했던 진실이다. 정치가 국민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미국 민주주의가 잊고 있던 원점이다.
6. 가족이 남긴 정신적 유산 — 예술과 정치의 만남
미라 네어의 예술적 시선은 맘다니에게 ‘정치의 인간적 온도’를 가르쳤다. 맘다니는 “정치는 결국 스토리텔링이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 도시가 변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정치가 공동체의 서사를 다시 쓰는 과정임을 강조해 왔다. 그에게 정치란 숫자나 권력의 게임이 아니라, 공동체의 서사를 다시 쓰는 행위다.
한편 아버지 마무두 맘다니는 식민주의와 권력의 폭력을 비판하며, ‘국가폭력 이후의 정의’를 연구한 학자다. 그는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기억의 문제”라고 말해왔다. 조흐란은 이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처럼 인권학자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아들은, 인문적 감수성과 사회적 분노를 동시에 품은 세대의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7. 남은 과제 — 다양성의 실험을 제도로 완성시킬 수 있을까
물론 맘다니의 앞에는 수많은 난제가 놓여 있다. 그가 제안한 공공주택 확대, 무상 교통, 부유세는 재정적 저항과 기득권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뉴욕의 경제적 구조는 여전히 부동산 자본에 의존하고, 부유층의 탈뉴욕 움직임도 현실적 변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도전은 상징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 그가 상징하는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도시 행정의 언어로, 재정과 법률의 구조로 옮길 수 있을 때, 비로소 그의 승리는 ‘사건’이 아니라 ‘시대’가 된다.
8. 결론 — 다양성이 미국을 구한다
맘다니의 당선은 단지 뉴욕 한 도시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의 자기치유 과정이다. 백인 기독교 중심의 동질화된 권력이 지배하던 시대가 저물고, 복수의 정체성과 다양한 서사가 공존하는 새로운 미국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존재는 “미국의 미래는 단일한 목소리가 아니라, 다성적 합창 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생생히 증명한다. 이제 뉴욕의 새로운 시장은 그 이야기를 다시 써 나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아니라, ‘미국을 다시 다양하게’(Make America Diverse Again) 만드는 길이다.
무슬림을 악마화해온 한인 교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