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사이버 신자
최초의 사이버 신자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2.07.14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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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목사 칼럼] 온라인 사도행전 (3)

온라인 세계에 관심을 쏟다 보니 지금까지 먹고 산 것이 신기할 정도로 돈 버는 일과는 관계가 멀었던 내가 급기야 가상화폐 세계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다단계 가상화폐 세계에 들어간 지인이 본인도 아직 득도를 못했으면서 가상화폐의 세계를 모르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긍휼한 마음으로 본인의 돈을 투자해서 나를 가입시킨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를 입문 시킨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가상화폐 세계에 대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부지런히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지만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생을 당분간이라도 살려면 모르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온라인 세상을 창조했다. 그런데 온라인 세상이 진화해서 가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어 이제 세상은 메타버스(Meta-verse)의 세계로 나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메타버스는 가상•초월(meta)과 세계•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뜻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전반적 측면에서 현실과 비현실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니까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내 눈에는 성경만 보였다.

블록체인의 원리는 '탈중앙화(Decentralized)이다. 즉 하나의 행위를 여러 명이 각각 검증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 기록이 거미줄처럼 얽혀 누적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 기록을 허위로 만들거나 조작할 수 없다는 게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이다. 마치 공관복음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시각에서 기록했지만 믿을 수 있는 것처럼.

인류는 지금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다. SNS 시대인 현대는 나는 내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었을 뿐이지만 내가 보는 모든 것이 어딘가에 데이터로 쌓이고 있다. SNS 기업들은 사용자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바로 '확실한 시장'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광고주가 팔고 싶은 제품을 살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들만 따로 추려 놓은 확실한 시장이다.

이처럼 알고리듬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나는 알고리듬에 의하여 조종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알고리듬은 곧 신인 것이다. 내가 믿음을 표현하면 교리라는 알고리듬이 나를 조종하는  것이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Untact의 시대가 닥쳐서 인간 즉, human being은 급격하게 being digital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만나서 해결’하는 길을 찾았다면 이제는 ‘만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백부장이 예수가 병든 하인을 고치려 자기 집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말씀만 하면 된다고 했다. 즉 비대면으로도 된다는 것이다. 사실 백부장은 예수를 만나러 오기도 전에 비대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의 얼굴을 본 적이 없고 소문만 들었었다. 그는 오프라인 신자가 아닌 온라인 신자였다. 예수가 바로 가까운 동네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인이 병이 들자 예수를 찾아왔다. 이만하면 최초의 사이버 신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인간끼리는 이제 막 익숙지 않은 비대면이 시작되었지만 원래 신은 비대면이었다. 그동안 인간 중에는 비대면으로 만나야 하는 신을 대면해 보겠다고 용을 쓴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이 헛발질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마치 신이 대면해 있는 것처럼 악을 쓰고(통성기도) 발광한다.

나는 로마 가톨릭의 큰 행사에 고위 성직자가 땅콩껍데기같이 높은  모자에 화려한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 알몸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인도의 요기들이 생각난다. 분명 그런 치장들은 신 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 보라고 한 것일 것이다. 만일에 신 보라고 한다면 요가의 구루같이 알몸으로 나서야 더 적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 앞에서는 가장 겸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적당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비대면의 신은 몸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다석 유영모는 ‘깊이 생각하는 것’에 신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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