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포르노에서 검찰 포르노까지
빈곤 포르노에서 검찰 포르노까지
  • 김기대
  • 승인 2022.11.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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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포르노를 어떻게 말하나

김건희씨가 캄보디아 방문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연출한 사진을 두고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나왔다. '포르노'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성적인 용어이기는 하지만 모든 성이 부정한 것이 아니듯이 빈곤 포르노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빈곤 현장을 찾아 도움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그것이 시혜자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면 포르노(비틀어진 )처럼 소비될 있기에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김건희씨의 선행(?)을 포르노와 연결시켰다며 분노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본래 말은 사회적 포르노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덴마크의 원조단체 대표 외르겐 리스너는 1981 굶주리는 어린이들의 이미지를 모금 캠페인에 사용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포르노(social pornography)’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리스너는 굶주린 아이의 이미지는 비윤리적이며 포르노 만큼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사진출처 : 비정부기구 공정개발컨설팅(Fair Development Consulting)
사진출처 : 비정부기구 공정개발컨설팅(Fair Development Consulting)

 

수잔 손택은 그의 타인의 고통에서 실질적인 도움 보다는 사진 통해 연민을 소비하는 형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수잔 손택의 비판에는 특정 진영에 유리하게끔 편집된 전쟁 사진들도 포함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포르노라고 부르는 것은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 준말이다. 포르노와 그림(또는 동영상) 합성이이다. 최초의 포르노그라피는 기원후 79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멸망한 폼페이에서 발견된다. 폼페이 유적 속에 있던 2 짜리 사창가 건물의 모든 방에는 포르노그라피 음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면 폼페이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신약 성경에서 포르노(porneia) 어떤 경우에 사용되고 있을까? 킹제임스 성경에는 fornication(간음)으로 번역되어 있다. 영어의 fornication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Zana 번역인 경우가 많다. ‘자나하나님께 믿음이 없는 상태 어원으로 한다.

현대 영어의 포르노는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를 어원으로 하며 그 의미는 현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서에는 본래의 의미대로 쓰인 경우가 많지만 은유적인 용례도 발견된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포르네이아)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음하는 것이다. (마태 5:32)

세다.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이포르네이아 아니다. 음행의 죄가 없는 사람을 버리는 것이 포르네이아다. 게다가 죄없이 버림받는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포르네이아다. 정작 마음에 품은 음욕에는 단어가 쓰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마태복음 5:32 상당히 페미니즘적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음행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신 아버지만 계십니다." (요한 8:41)

말은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것이다.”(요한 8:31) 같은 단락에 속해 있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본래 종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우리더러 자유롭게 하라 느냐고 따지자 예수는 너희는 진리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경고한다. 때문에 그들은 음행(포르네이아) 자식들이다. 예수를 거부한 것도 포르네이아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종이 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자유 남발한다. 대한민국의 누구처럼 말이다. 성경은 그런 왜곡된 세계관 역시 포르네이아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따라서 김건희씨의 이번 사진은 빈곤 포르노가 맞다. 앙코르 와트는 캄보디아의 자랑스런 유물로 각국 정상의 아내들의 방문을 계기로 관광 홍보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려운 나라를 돕는 일이다. 아니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아동병원 시설이 되어 있을 경우 곳을 방문함으로써 해당국의 의료 시스템을 홍보해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다르다. 오히려 캄보디아의 빈곤을 강조하는 듯한 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욕심(탐욕) 포르네이아다.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포르네이아) 악의로 가득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로마서 1:29).

 

여자는 자주색과 빨간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있었는데, 속에는 가증한 것들과 자기 음행(포르네이아)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습니다.(요한 계시록 14:4)

포르네이아는 화려한 치장에도 가려지지 않는다. 또한 계시록 18:3 처럼 정치의 문제에도 사용된다.

세상의 왕들이 도시와 더불어 음행하고

도시와 더불어 음행을 하고 방탕한 생활을 세상의 왕들은, 도시를 태우는 불의 연기를 보고, 도시를 두고 울며, 가슴을 것입니다.(요한 계시록 19:9)

윤석열 정부는 검찰권력을 이용해 사회 정의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남용함으로써 포르노처럼 자극적으로 겸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시점에서 빈곤 포르노보다 검찰 포르노의 해결이 더 시급한 당면 과제다. 

그러므로 정부 여당은 빈곤 포르노라는 말에 발끈하지 말고 지금 포르노로 세상을 망친 자들을 제대로 찾아내서 벌해야 것이다. 심판이 오기 전에.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음행(포르네이아)으로 세상을 망친 창녀(포르네) 심판하셨다. 자기 종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여자에게 갚으셨다. (요한 계시록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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