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 사랑하니?
너 나 사랑하니?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2.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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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경목사의 우면산 아래서

길 건너에 사는 한 자매님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번도 교회에 다닌 적이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권유로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집 앞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착한 남편과 어린 딸도 함께 교회에 나왔습니다. 자매님은 최근에 암 수술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새 가족 모임을 마치고 권사님을 통해서 일대일 양육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자매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얼마나 예쁘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먼저 믿었던 우리들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될 즈음 자매님에게 암이 재발했습니다. 힘겨운 투병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온 교우들이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저는 매주 두세 번씩 관악산에 올랐습니다. 속이 타서 가만히 앉아서 기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며 산에 오르면서 기도하면 답답한 속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등산객들이 거의 없는 육봉능선으로 다녔습니다.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상까지 왕복 세 시간 동안 기도제목은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 OO 엄마를 살려주세요.” 서럽게 울면서 기도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산에 오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매님의 암세포가 나에게 옮겨져서 자매님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자매님 대신 죽을 수 있을까?”

쉽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사숙고했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제가 죽으면 저희 가족과 교회가 걱정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죽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들을 대학까지 다 키웠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의 딸은 이제 네 살입니다. 저희 가정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의 친정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도 제가 더 좋습니다. 그러니 제발 자매님의 모든 암 세포를 저에게 옮기시고 자매님을 살려주세요.” 그날 이후로 저는 육봉능선을 오르내리는 세 시간 동안 암세포를 저에게 옮겨 달라고 하나님을 졸랐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열심히 치료를 받았지만, 자매님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자매님은 “목사님, 저 너무 힘들어요. 이제 예수님께 편안히 천국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돼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린 딸을 위해서 꼭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하라고 혼을 냈습니다. 그리고 육봉능선을 올랐습니다. 얼마 후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자매님은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날마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병실에 찾아가서 함께 예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매님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실로 달려가서 함께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자매님은 8시간 동안 우리와 함께 찬양과 기도를 반복하다가 천국으로 갔습니다. 다섯 살 난 딸을 남기고, 서른 아홉의 나이에.

저는 8시간 동안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잖아요. 제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잖아요. 제발 자매님의 암세포를 저에게 옮겨 주세요. 저를 데려가시고, 아이 엄마를 살려주세요.” 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저는 깊은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내가 좀 더 거룩하고 경건했더라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셨을 텐데... 내가 좀 더 금식을 했더라면... 내가 좀 더 기도를 했더라면... 자매님을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성도가 죽어 가는데 꾸역꾸역 밥을 먹었던 저를 증오했습니다. 성도가 아파서 죽어 가는데 밤마다 잠을 잤던 저를 증오했습니다. 그때부터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주일마다 엄마를 잃은 자매님의 딸을 안아 주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목회를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못하겠어. 난 자격이 없어. 그리고 내 안에 목회할 힘이 없어.”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주님이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준경아, 너 나 사랑하니?” 다른 질문이었으면 저는 분명히 주님이 원하시는 대답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에게 화가 나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에 제가 어떻게 아니라고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네,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목회는 그만 할 겁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목회를 그만 두지 말거라. 목회는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거다.” 저는 그날 새벽에 주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목사의 자격 조건은 신학 박사 학위가 아닙니다. 목사 직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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