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몹쓸 곳에 들어왔다
앗, 몹쓸 곳에 들어왔다
  • 정준경 목사
  • 승인 2023.03.15 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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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경목사의 우면산 아래서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학생 때 아르바이트는 해 봤지만 정식으로 직장 생활을 해 본 경험은 없습니다. 신대원 2학년 때 교육 전도사가 되어 처음으로 월급을 받는 사회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스물일곱 살이 되던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마치고 담임 목사님이 월요일에 새로 부임한 목회자들을 환영하는 식사 모임을 갖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날 저는 교회 봉고차를 얻어 타고 교회 관리 집사님과 둘이서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반포고속터미널 근처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주차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출입구 쪽에서 주차 안내를 하시는 분에게 주차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턱으로 방향을 가리키면서 “저기”라고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고압적이고 불친절했습니다. 기분이 상했지만, “원래 무뚝뚝하신 분이거나, 아침에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집사님과 함께 건물 뒤쪽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출입구 쪽으로 오는데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방금 전 그 무뚝뚝하시던 아저씨가 활짝 웃으면서 차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주차요원 같았습니다. 저는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찌그러진 봉고 차를 몰고 온 우리에게는 손을 들기도 귀찮았는지 턱으로 가리키면서 “저기”라고 하시더니, 좋은 차가 들어오니까 활짝 웃으면서 문을 열어 주시다니...

“이게 뭐지? 내가 아주 몹쓸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어른들의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저에게 하나님께서 강력한 메시지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는 앞으로 절대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타락한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늘 본 것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절대로 교회에서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검소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부유하게 살면서 가난한 성도들의 심정을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타락한 죄인이었고, 교회도 세상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가진 사람들은 존중받고, 없는 사람들은 무시당했습니다. 교회는 말로만 평등을 말하고, 말로만 사랑을 말하는 위선적인 공동체였습니다. 차라리 말이나 말든지......

그날 호텔에서 본 모습을 교회에서 볼 때마다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모습은 내 안에서도 자주 발견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뼈 속까지 스며든 내 죄를 토하듯이 회개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에는 신대원에서 배운 대로 했습니다. 성도님들의 헌금 봉투를 하나씩 보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헌금 봉투에 감사 내용과 기도 제목을 쓰시는 분들도 있어서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헌금 액수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저분은 어려운 중에도 많은 헌금을 하시는구나. 저분은 믿음이 좋은 줄 알았더니 헌금을 조금밖에 하지 않는구나......”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의 헌금을 보니까 죄를 짓습니다. 저는 그릇이 작아서 여러분의 헌금을 보면서 판단하지 않거나 차별하지 않고 여러분을 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헌금 봉투를 보지 않겠습니다. 저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겠습니다. 헌금과 교회 운영은 교우님들이 맡아 주세요. 그리고 기도 제목이 있으면 저에게 따로 보내 주세요.” 그때가 개척 초기였고, 그 후로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헌금 봉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우님들이 누가 얼마나 헌금하는지를 모릅니다. 저에게 그럼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려는 저의 다짐을 지키는 데 아주 유익했습니다. 영적인 난쟁이인 저에게는 참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초심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해마다 저에게 승용차를 사 주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담임목사가 승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불편한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 사 주시겠다는 분들도 계시고, 교회에서 담임목사인 저에게 사 주겠다는 말씀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차가 필요 없으니까 사 주고 싶으면 선교사님들에게 사 주라고 말합니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고, 심방에 차가 필요하면 교회 승합차를 이용하면 됩니다. 그 돈으로 선교하고 구제하라고 말합니다. 교우님들에게 담임목사랑 밥 먹고 싶으면 1만 원 이하의 메뉴로 골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막무가내인 성도님들이 생겨서 항상 지켜지지는 않지만, 요즘도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저는 차도 없고 집도 없습니다. 저를 위해서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저보다 돈이 필요한 이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난해서 멸시를 받는 일들이 가끔 있기 때문에 가난한 성도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그 호텔 주차 요원 아저씨 덕분입니다.

정준경 목사 / 우면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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