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언론이 떡잎부터 알아본 목사 아들 진중권
보수 언론이 떡잎부터 알아본 목사 아들 진중권
  • 김기대
  • 승인 2023.02.24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목사 자녀 열전) 그에게서 진보의 미래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처음 읽은 진중권은 1998 즈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였다. 책은 박정희가 했다고 알려진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말을 제목으로 삼은 보수 논객 조갑제의 책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진중권의 책은 과도한 박정희 찬양에 대한 비판서로 조갑제 아니라 이문열도 해부 대상이었고, (지금은 책을 버렸기 때문에)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인화라는 필명을 쓰던 이대 국문과 교수 류철균의 ‘영원한 제국’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던 같다. ‘영원한 제국’은 정조대왕의 이야기로 류철균은 정조를 박정희에 빗대었고 이후 문화계에 정조 열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소설이었다.

진중권의 글은 신선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모티콘들이 활자로 책에 등장했다는 자체가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후 영화 잡지 ‘시네 21’을 통해 꾸준히 독자들과 만나 왔고 노유진(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이름으로 인기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사람의 합이 좋았고, 청취율이 높았던 프로그램이었다.

유시민 진중권 사람 모두 독일 유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 박사학위가 교수직의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학자로서의 한계를 경험했는지 유시민은 정계를 거쳐 작가의 길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대학 강단에는 기웃거리지 않았다. 반면 진중권은 중앙대, 동양대에서 계속 교수직을 이어갔다. 동양대에서 퇴직한 지금은 광운대학교 특임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사소한 같지만 사람의 인생관의 차이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지난 2022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다시 출판되었는데 인터넷 서점의 판매 지수는 초라하다. 인터넷 서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즐겨 사용하는 ‘알라딘’ 판매 지수는 형편없이 낮다. 가장 쉬운 비교로 나같은 무명 작가가 , 그리고 시간도 많이 지난 권의 책보다도 낮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2006 개정판은 중간 쯤의 판매지수를 기록하고 있고, 절판 상태도 아닌데 출판사는 2022 개정판을 냈을까? 보수층에서 사주기를 기대해서? 아마도 출판사의 전략은 거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판의 표지가 이문열 조갑제로 되어있는 반면 2022 판은 그냥 시커멓다.

유시민의 2022 ‘유럽도시기행 2’의 판매지수는 40,423인데 비해 진중권의 책은 초판, 개정판 합쳐서 2,000 넘지 않는 점이 진중권의 위상을 방증한다. 권의 책만으로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을 감안해도 비교적 판매지수가 높은 진중권의 다른 책도 유시민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되었을까?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을 의아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진중권은 사람들이 자신을 ‘빨갱이’라고 하는데 자신은 교회를 신실하게 다니는 기독교인이며 심지어 강남의 광림교회(당시 담임목사 김선도) 중등부교사라고 책에서 밝힌 것이다.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그같은 석학’이 중등부 교사를 한다는 지미 카터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수준의 겸손함과 성실함으로 보였는데 하필 강남의 광림이라니! 민중교회도 많고, 힘들게 꾸려가는 진보 교회도 많은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힘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진중권은 2011 조용기 목사가 '일본지진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말에 대해 "이런 정신병자들이 목사질을 하고"라며 " 문제는 저런 헛소리를 듣고 '아멘, 할렐루야' 외치는 골빈 신도들"이라는 독설을 자신의 트위터에 쏟아낸 적이 있다. 일본 지진의 경우가 아니라도 이런 정도의 말은 조용기뿐 아니라 김선도에게서도 충분히 나올 있는 말이다. 1990년대는 맞고 2010년대는 틀렸었나?

‘뇌피셜’에 따른 추정이지만 혹시 그의 아버지와 김선도는 신학교 동기는 아니었을까? 혹시 그에 따른 금전적 도움? 물론 밝혀진 것은 없다. 목사였던 진중권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다음과 같다.

충청도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중앙대 법학과를 다녔답니다. 그마저 생활고 때문에 불가능해지자 등록금이 면제되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셨대요. 그러면서 그는 "'목사님'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분이었어요. 날카롭고 지적인 스타일에 자존심도 강했죠"라며 "동네에서 영자신문을 읽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간혹 근처 미군부대에서 영어 설교도 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유신체제 홍보 책자 같은 보내오면 화를 내며 찢어버렸어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신동아' 527, 2003)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 했다. '여성중앙'에서였는데 흥미롭게도 인터뷰는 강용석이 진행했다.

-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 하시면서 먹여 살렸어요. 개척 교회는 목사 봉급이 나오거든요. 남들이 30만원 받을 우리 아버지는 7만원 받으셨어요. 누나가 주일 예배 반주자였는데, 당시 우리 교회 수준이 촌동네인데도 피아노 3중주가 있을 정도였요.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동네 교회인데 피아노연주로 유명했어요. 교회는 김포 공항동에 있는 중앙감리교회였는데 지금은 다른 분이 하고 계세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셨죠

- 아버지는 제가 1 연탄가스 마시고 질식사로 돌아가셨어요. 어쩌면 그때부터 살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같아요. 아버지는 교육을 받은 대한 한이 서린 분이세요. 그래서 목사가 거죠. 중대 법대를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중퇴하고, 신학대를 들어갔죠. 강화도에 있는 교회로 발령이 났는데, 거기로 가면 애들 교육을 시킨다고 개척 교회를 세운 거였어요. ('여성 중앙', 2013 3월호)

'여성중앙'과 '신동아',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신문 중에 두 신문이 오늘날의 그를 떡잎부터 알아본 셈이다. 위 '신동아'의 인터뷰는 유시민이 이른바 '백바지 국회 등원'으로 보수언론으로부터 난도질 당한 2003년 4월에서 3개월 뒤에 이루어진 인터뷰다. 변희재가 안티 조선운동에 몸담았던 것과도 다르다. 보수언론은 일찌감치 그의 가능성(?)을 알아 봤던 것이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그의 말처럼 2 2녀의 형제 자매들은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교육열이 높아 경기도 지역에서 목회하면서 진중권을 서울로 위장전입시켰다. 진중권 세대는 이미 중고등학교 추첨제가 자리 잡았을 때인데도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당시 명문중학교 입학률이 높았던 덕수국민학교로 전입시킨 보면 진중권이 존경하던 부친도 시대를 앞서 갔던 인물은 아니었던 같다.

진중권은 가난의 , 출세의 욕망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 조종술을 배우고, 고급 문화 향유에 거부감이 없고(그는 계급에 민감한 PD계열출신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무식 타락 촌티’를 견딜 없어 한다. 그가 박정희의 영웅신화를 그토록 경멸했던 것은 오히려 안에 꿈틀대는 영웅 욕망을 짓누르려는 무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조국교수와 한때는 친한 관계였으나 지금은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되어 있다. 조국과 그는 출신이 완전히 달랐지만 조국은 계급운동 계열의 운동권에 투신하다가 투옥된 경력이 있다. 진중권은 별다른 학생운동 경력이나 투옥이 없었다. 자신이 위장전입의 수혜자였으면서 조국 장관의 자녀들에게는 가혹했다. 

조국이 기성 정치권에서 민주당 계열의 스타가 되자 배신감이 더했을 것이다. 진중권이 말해왔듯이 한국의 민주당 계열이 ‘진보’ 로 분류될 수 없는 것 맞다. 박노자의 분석처럼 한국에서 왼쪽에 자리잡은 이들은 ‘리버럴 중도 우파’로 보는 편이 옳은데 극우 계열의 ‘국민의 힘’에 의해 어쩔 없이 왼쪽으로 밀려난 것이다.

진중권이 대중들에게 알려 주었던 수많은 진보 사상가들의 생각이 같을 없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슬라보예 지젝이 다르고, 그람시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다르다. 심지어 우파들의 전유물이었던 카를 슈미트가 진보진영에서 소환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좌파는 얼마나 다양한가? 자주파(NL)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진중권이 몸담고 있는 정의당은 평등파(PD)도 진보도 대변하지 못한다. 노사모 이후 진보 진영에 새롭게 유입된 ‘진보’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이후 형성된 김어준식 진보들, 이재명의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진보가 모두 다르다. 한국의 진보로 불리는 리버럴 중도 우파들은 모든 차이를 껴안고 가야하는데 진중권은 하나만 다르면 견디지 못해낸다.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 결코 포스트모더니스트가 될 수 없는 행태다. 

한국의 ‘진보’가 진영논리로 모든 것을 분석했던 과오는 분명히 가지고 있다. 진중권은 한때 NLL(북방 한계선) 변희재와 토론이 붙은 적이 있는데 변희재가 압승했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NLL 이승만 정권에서 북한과 협의 없이 마음대로 그은 것이고, 따라서 북한이 넘어 오면 퇴치하면 되지,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변희재가 압승했다고 하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글은 NLL 주제가 아니므로 자세한 내용은 다루지 않지만 아무튼 진보에게 과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중권은 NLL 대해 인터넷에서 읽고 왔고 자기는 수많은 논문을 탐독했으니 토론의 압승은 당연하다고 변희재는 주장했다.

진중권 역시 그런 과오를 반성해야 하는데 혹독한 자기반성과 따뜻한 충고가 바뀌어 있다. 그의 과오보다 그가 한때 몸담았던 세력들의 과오에 대한 비판이 혹독하다. 그래서 비판이라기 보다는 모종의 피해의식으로 보이는 것이다.

요즘 각종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와 ‘격이 안맞는 상대’(오해하지 마시라, ‘상대’를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현실을 서글퍼 하는 표현이다) 토론하며 주장하는 내용은 포스트모더니스트에게는 모욕적이겠지만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게다가 이런 프로그램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패널을 구성하는데 다른 명은 분명 진보인데 자신이 보수로 나온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무척 성실하게 보수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윤석열 김건희에 대해서는 따뜻하고 이재명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검찰을 동원한 칼춤이 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도 그의 눈에 검찰은 한없이 공정하다. 어떤 주제를 던져도 그는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옛날의 총명함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뻔(뻔)함'만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니 그 결말이 예측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는 과연 아래 인터뷰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 장인어른이 대처승인걸요. 제가 종교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는 어떤 보편적 신성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같은 것들이요. 오히려 '정치' 가지고 '종교'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종교적 욕구는 교회 가서 해소하시고 정치는 정신으로 하라구요"라고 했다.

'종교에서 무엇을 얻나요'라는 질문에는 "판단이 , 개입하고 발언하는 옳다 싶지만 불안할 시편 23편을 떠올려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람마다 나름의 존재미학이 있다면 제겐 신앙이 뿌리인 거죠"라고 답했다. (신동아 527)

그는 목사 아버지로부터 열린 사고를 물려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 그런 모습은 눈씻고 찾아 봐도 없다. 아쉽고 슬프고 안타깝다. 주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