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의 장기화로 병력 부족이 심화되면서 이스라엘 사회의 오랜 갈등 요인인 초정통파 유대교 집단 하레디(Haredi)의 병역 면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스라엘 대법원의 하레디 징집 명령과 이에 반발하는 하레디 공동체의 강경한 시위가 맞물리며, 국가 안보와 사회적 형평성, 정치적 안정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하레디 징집, 갈등의 중심에 서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최근 하레디 남성 5만 4000명에게 징집 명령을 발송할 계획을 발표했다. 징집 기피자를 단속하기 위한 검문소 설치와 강제 연행 계획도 공개되며 정부의 강경한 입장이 드러났다. 이는 2024년 6월 대법원이 “하레디 병역 면제는 위헌”이라며 징집 의무화를 최종 판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그러나 하레디 공동체는 “토라 공부가 국가에 대한 최고의 기여”라며 징집을 거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거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고속도로 점거와 국기 훼손 등 강경 행동으로 반발하며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하레디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뜻하며, 유대교 경전인 토라와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초정통파 유대교도다. 이들은 세속 문화를 거부하고 폐쇄적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며, 남성들은 평생 토라 연구에 전념한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가 400명의 토라 연구자에게 병역 면제를 부여한 이래, 하레디는 병역 의무에서 제외되어 왔다. 그러나 하레디 인구가 전체 유대인 인구의 14%(약 130만 명)로 급증하며, 병역 면제는 ‘안보 무임승차’라는 비판의 핵심이 됐다.
하레디의 독특한 삶과 사회적 갈등
하레디는 검은 정장과 중절모, 땋은 옆머리 등 독특한 복장과 생활 방식으로 구별된다. 여성은 긴 옷과 두건으로 단정히 몸을 가리며, 기혼 여성은 머리를 깎고 가발을 착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 현대 기술을 엄격히 제한하고, 유대교 전용 라디오만 허용하는 등 폐쇄적 삶을 고수한다. 하레디 가정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평균 7명의 자녀를 낳아, 이스라엘 전체 평균(3.09명)을 훨씬 웃돈다. 이러한 높은 출산율로 2050년에는 하레디가 전체 인구의 3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레디 남성의 대다수는 직업 없이 율법 연구에 매진하며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로 인해 하레디 가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에 속하며, 국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반면, 하레디 여성은 가정과 육아를 책임지며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종교적 정체성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유리천장”에 직면한다고 호소한다.
병역 면제, 역사적 뿌리와 현대적 도전
하레디 병역 면제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소수 하레디를 배려한 정책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인구 급증으로 징집 대상 하레디 남성이 6만 6000명에 달하면서, 이스라엘의 징병제 안보 체계에 균열이 생겼다. 대법원은 2012년과 2017년, 2024년 잇따라 병역 면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며 형평성을 강조했다. 특히 가자 전쟁 발발(2023년 10월) 이후 병력 손실이 커지자, 하레디 징집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레디를 위해 하스모네안 여단을 창설하고, 코셔 식단과 토라 공부 시간을 보장하며 징집을 유도하고 있다. 일부 하레디 청년은 군 복무 후 IT 기술을 활용해 창업에 성공하며 긍정적 변화를 보여주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징집을 거부하며 “죽어도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맞선다.
경제와 정치의 딜레마
하레디 문제는 병역을 넘어 경제와 정치로 확산된다. 하레디 남성의 낮은 경제 활동 참여율(약 50%가 직업 없음)은 이스라엘 경제에 부담을 준다. 첨단 기술 산업이 GDP의 12.5%를 차지하는 이스라엘은 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1만 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하레디의 노동 시장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구글, 모바일아이 등 기업과 협력해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들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치적으로, 하레디 정당(샤스당, 토라 유대주의 연합)은 네타냐후 연정의 핵심 축이다. 120석 의회에서 연정이 64석을 확보한 가운데, 하레디 정당의 18석은 연정 유지에 필수적이다. 하레디 징집 강행은 이들의 이탈로 연정 붕괴와 조기 총선을 초래할 수 있다. 네타냐후 정부는 징집법 수정안을 검토 중이지만, 대법원 판결과 여론의 압박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어렵다.
하레디 통합, 이스라엘의 미래 과제
하레디 병역 문제는 단순한 군 복무 논쟁을 넘어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점진적 통합 모델, 세속 교육 확대, 경제적 인센티브 강화, 사회적 대화 증진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하레디의 종교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병역과 경제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하레디의 노동 시장 진입은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고, 기술 산업의 인력난을 해소할 잠재력을 지닌다. 동시에, 하레디와 세속 사회 간의 대화는 문화적 간극을 좁히고 사회적 결속을 강화할 것이다. 하레디 문제는 이스라엘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현명한 해결책이 없다면, 안보, 경제, 정치적 안정은 더욱 흔들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