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이니아 남부의 복음주의 가정에서 나고 자라 교회와 청소년 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테일러 요더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스타벅스에서 함께 일하는 LGBTQ 동료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단지 나와 다른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지옥불에 떨어져야 마땅한가?"라는 의문이었다. RNS의 보도다.
이후 가족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고, 결국 신앙을 '해체(Deconstruction)'하는 과정을 겪는다. 요더는 "정치가 교회와 너무 얽혀 있다는 사실이 가장 속상하다"고 토로한다. 그녀는 "제 삶 속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정말 추악하게 변했다"고 비판했다. 현재 31세의 무신론자가 된 그녀는 과거 복음주의자였지만 종교에서 이탈하는 수많은 젊은 여성 중 한 명이다.
‘skeptical_heretic’이라는 틱톡 아이디로 활동하며 복음주의와 그 정치적 연관성을 비판하는 요더의 영상은 약 24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하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그녀는 가족들과 거의 연락을 끊고 지내며, 가족들은 그녀가 지옥에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처럼 요더는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를 상징한다. 이른바 "전복음주의" 여성들은 복음주의 문화를 억압적이고, 건강하지 못하며, 심지어 해롭다고 묘사하는 회고록, 팟캐스트, 소셜 미디어 채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의 비판은 정치적 편향, 가부장제, 학대 은폐, 그리고 LGBTQ에 대한 배척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수렴된다.
공공종교연구소(PRRI)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 사이 여성의 40%가 무종교인으로 집계됐다. 이는 약 35%에 머무는 젊은 남성의 무종교 비율을 처음으로 앞지른 수치이다. 특히 복음주의를 떠난 여성들의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 종교를 이탈하게 된 주된 이유에 대한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신앙 가르침에 대한 불신(80%)
-
LGBTQ에 대한 적대적 견해(58%)
-
신앙이 정신 건강에 해를 끼쳤다는 경험(50%)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교회의 쇠퇴를 넘어선, 신앙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붕괴를 보여준다. 비즈니스, 정치,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이 최고가 되라는 압력을 받는 현대 미국 문화에서, 보수 교회가 여성 지도자를 금지하고 '순수성' 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PRRI의 CEO인 멜리사 데크먼은 "그런 메시지는 오늘날 젊은 여성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베일러 대학교 역사학자 베스 앨리슨 바는 전국 교회 여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여성들은 교회를 통해 자신의 소명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좌절감을 확인했다.
트럼프 지지가 드러낸 교회의 '추악함'
많은 여성에게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과 그에 대한 복음주의 교회의 압도적인 지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도의 약 80%가 그에게 투표했다.
워싱턴주 스포캔에서 여성 사역을 이끌던 에이미 호크는 2016년 트럼프가 '액세스 할리우드' 테이프에서 여성을 희롱했다고 자랑했음에도 교회 친구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호크는 "교회가 그를 사기꾼이자 학대자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여성들을 위해 헌신해왔는데, 교회가 여성을 공격하는 사람을 보고 기뻐하라고 말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2020년에 교회를 떠나며 "복음주의가 건강에 해로워졌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주의에서 이끌어내셨다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많은 여성들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옹호하는 행위를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다. 나아가 이는 교회의 진정한 우선순위가 **'권력'과 '가부장적 남성성'**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인스타그램에서 'deconstructiongirl'로 활동하는 애나 캐서린 브리튼은 "복음주의자들은 마초적인 남성이 모든 것을 운영하기를 갈망했다. 그걸 깨닫기 시작하니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고 일갈한다.
교회 내 만연한 성적 피해자들을 지칭하는 학대 생존자(Abuse survivor)들의 고발은 복음주의 교회가 안고 있는 또 다른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낸다. SBC(남침례교 협의회)가 의뢰한 2022년 독립 조사 결과는 2000년 이후 수십 명의 목사와 기타 인사들이 성 학대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주요 교회 지도자들이 생존자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했음을 폭로했다.
학대 생존자이자 생존자 옹호자로 활동하는 크리스타 브라운은 자신의 회고록 『침례교의 땅』에서 복음주의를 남성의 권위와 책임감 부족에 뿌리를 둔 "지배의 문화"로 묘사한다. 브라운은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이 만들어진다"고 비판한다. 목회자에게 책임을 묻는 데 소극적인 교단의 모습은 이 '지배의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리즈 쿨리지 젠킨스는 교회의 가부장적 현실이 노골적이지 않더라도, 여성의 일상이 과소평가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평범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전형적인 계층적 모델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적 경험을 더 원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이러한 미국의 '해체' 현상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젊은 층, 특히 청년층에서는 진보 정권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가 남성 청년들을 압도하는 정치적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젊은 여성들이 복음주의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정치적 편향과 가부장제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내용을 입력하세요.
비록 한국에 젊은 여성들의 교회 이탈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는 없지만,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진보 여성 유튜버들이 과거의 교회 경험을 고백하며 현재는 교회를 떠났음을 이야기하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상황이 한국에서도 작게나마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방증(傍證)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의 보수 교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다수 개신교 목사들이 특정 보수 정치인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며 그를 '하나님의 도구'로 용인하는 행태 역시 근본적으로는 교회가 누려온 남성 중심 사회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과 교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복음을 정치 권력에 종속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오늘날 우파 복음주의 교회들의 목소리는 정치적으로 매우 크고 영향력이 강해 보인다. 그들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강력한 보수적 입장을 표명하며 세력을 결집하고,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공격적으로 확산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강한 정치적 결합과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행위가 교회를 떠나는 젊은 세대, 특히 여성들의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나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들을 보면, 교회가 복음이 아닌 정치와 권력에 종속될 때 어떤 '추악한' 모습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목소리 큰 행동들은 오히려 신앙의 순수성을 해치고 교회의 해체(Deconstruction)를 가속화시킬지 모른다는 깊은 불안감이 우리 사회와 교회에 퍼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탈자들이 돌아와 안착할 만한 대안적인 신앙 공동체, 즉 진보 교회들조차도 이들을 포용할 만한 매력적인 상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의 이탈은 제도권 교회의 공멸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자괴감과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