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말씀! 오직 말씀만?
오직 말씀! 오직 말씀만?
  • 이재근
  • 승인 2019.08.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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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목사 영상 칼럼 [오픈 마인드]

[알뜰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얼마 전 종영한 종편 프로그램인데요. 예능계 미다스의 손 나영석 PD의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알쓸신잡]의 매력 포인트는 여행과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녹아든 인문학의 향연이었습니다. 작가 유시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뇌 과학자 정재승, 그리고 음악인 유희열 등 예기치 않았던 기쁨 마냥 이들의 조합은 절묘했으며, 그 만남이 빚어낸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가히 21세기형 인문학의 성공적 모델이 되었습니다.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통상적 인문학 분야에 과학마저 버무려버린 그 맛깔스러운 상상력과 함께 말이죠.

믿는 이들과의 만남 가운데 성경이 지닌 인문학적 통찰에 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사건들. 이 역시 문학과 역사, 지혜와 철학의 형태로 쓰였고, 이 다양한 표현양식 속 신앙 고백들은 사람들의 오늘을 풍성케 하는 하늘의 보고가 됩니다. 이 점에서 개혁교회의 외침인 ‘오직 말씀’ Sola Scriptura는 여전히 지켜야 할 믿음의 유산이지요. 말씀은 진실로 우리가 심히 사랑할 그것입니다. 그런데요. 때로는 사랑의 마음이 잘못되고 어긋나고 뒤틀리는 것처럼 말씀을 향한 사랑 역시 왜곡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 사람, 성경을 향한 외사랑 덕에 시중의 다른 책은 가까이 못 할 너무 먼 당신이  되어 버리는 사람, 삶의 모든 문제 해결은 성경만이 줄 수 있다는 믿음에 천착 된 사람…심한 일반화일지 모르나 의외로 오랜 신앙인들의 말씀 사랑이 이렇듯 기울어진 배처럼 위태로움을 보일 때면, 오늘의 교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다름 아닌 문자적 성경 읽기의 극복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구원의 신비를 압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성경만큼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는 매체는 없지요. ‘오직 말씀’의 전통은 이 점에서 타협 불가능한 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이 말이 곧 성경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인문적 접근을 금하거나 세상 학문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종교개혁 전통에 어긋난단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오직 말씀’을 주창한 마틴 루터와 존 칼빈, 이들의 성경 연구에 기반한 개혁의 동력은 당시 유럽을 휘감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였습니다. 1534년 당시 500굴덴(현시가 5억 원)에 달하던 라틴어 성경을 단돈 1.5굴덴 (약 150만 원) 독일어 성경으로 완역 출판한 루터에게 구텐베르크의 인쇄 기술은 ‘오직 말씀’의 종교개혁과 함께 사회개혁을 가능케 했습니다. 1559년 칼빈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 (현 제네바 대학)에서는 성경(신학)과 함께 언어, 논리, 수사, 수학, 음악과 문학을 전 유럽에서 몰려든 청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문학과 예술 과학적 발견과 함께 사람들에게 펼쳐졌으며, 세상 학문과 성경간  상호 대화 속에 오히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사람들의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었던 것이죠.

주변에 혹시 ‘저는 오직 말씀만 읽습니다’라며 신령함을 드러내는 개혁교회 목사가 있다면, 오히려 의심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말씀’은 세상 학문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이 간직한 구원의 길을 오늘의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심지어 과학과의 대화에까지 넉넉히 확장해 갑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오직 말씀의 정신이고, 바로 그 능력과 함께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오직 말씀으로 살아가시겠어요? 그렇다면 성경과 함께 더욱 세상의 많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보세요. 하나님이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한 세상이 곧 하나님 나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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