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사상과 동학, 이들은 서로 낯설까?
다석 사상과 동학, 이들은 서로 낯설까?
  • 이정배
  • 승인 2022.11.05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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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9): 다석과 동학

평소 다석의 글을 읽으면서 큰 물음이 생겼다. 불교, 유교의 경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기독교를 풀이하고 죽음과 부활의 뜻을 펼쳤던 다석 이었지만 정작 동학, 천도교에 대한 그의 언급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간혹 말씀이 있었으나 긍정적이기 보다 오히려 부정적 톤이 강했다. 이점은 그의 제자 함석헌에게서도 예외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심지어 폄하하는 내용까지 찾을 수 있다. 한글을 천문이라 말하며 그 뜻을 가르쳤으나 최초로 한글 경전을 갖고 시작된 동학을 낯설게 느낀 이유가 많이 궁금했다.

평소 필자는 동학과 다석 사상은 같은 뿌리에 연원을 두었고 동일한 줄기에서 서로 색깔만 다른 열매를 맺은 것이라 여겼다. 동학사상의 본질과 구조를 기독교적 언어로 재구성한 것을 다석 사상이라 여길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필자의 궁금증을 풀고자 이들 두 사상의 공통기원과 사상적 관계를 밝히는 논문을 썼던 적이 있다.<<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모시는 사람들 2009)>>.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에서 발표했으나 논의가 많이 확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3.1선언 백주년(2019) 이래로 동학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필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짧은 지면이지만 본고에서 이 점을 체계적으로 적시해 보겠다.

서세동점시기에 대처했던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우리 것을 지키려는 위정척사와 서구 것을 수용하려는 개화파의 시각이 그것이다. 물론 東道西器(동도서기)와 같은 틈새의 논리도 있었으나 器(물질, 서구)에 대한 道(정신, 동양)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본질상 위정척사파의 관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동학 연구자들 중심으로 온전한 제 3의 시각, 즉 ‘개벽’적 차원이 회자되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나 서구를 답습, 추종했던 것과 달리 독자적 근대를 우리 식으로 잉태했다는 발상이다. 우리에게도 기독교 서구와 다르지만 동학사상에 토대한 ‘개벽적 근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고자 하는 주체적 태도로서 숙고할 가치가 있다.

본 주제를 갖고 출판된 연구서적 -<<개벽의 사상사-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창비 2022)>>-을 참고하면 좋겠다. 물론 논쟁할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동학을 폄하 내지 무시한 듯 보인 다석과의 비판적 대화를 위해 본 논지를 일단 수용할 것이다. 동학에 대한 다석의 부정적 편견 이면에 다음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무엇보다 그가 기독교적 세례를 받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기독교적 세계관, 개화파의 시각을 지녔다고 말 할 수 있겠다. 후일 정통기독교로부터 벗어났지만 기독교 –스승 예수론- 에 근거해서 사유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유불선을 통합시킨 歸一(귀일)사상도 결국 기독교적 색체를 강하게 띄고 있다. 다석 연구자들 대다수가 기독교 신학자인 것도 이를 반증한다. 다석이 천체 물리학에 남다른 관심을 지닌 것 역시 개인적 취향을 넘어 근대적 세계관의 영향이었다.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영성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합리적 사유 또한 중시했던 까닭이다. 하여 비합리와 초합리 간의 범주오류를 범치 않고자 애썼다. 이점에서 전쟁터에서 주문을 외라 가르치는 동학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영부를 불태워 물에 타 마시면 죽지 않는다는 설도 수용할 수 없었다. 오랜 전통을 지닌 유교, 불교와 견줄 때 자생적 종교인 동학이 미신(비합리)처럼 여겨진 탓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一理(일리)를 지닐 뿐 全理(전리)가 될 수는 없었다. 씨ᄋᆞᆯ(민)을 강조했으나 민중 종교성과 접하지 못했고 ‘다른’ 세상을 찾는 개벽의 불온성을 수용치 못한 까닭이다. 이는 다석 사상이 ‘우익’ 민족주의 사유와 연계되었음을 보여준다. 주지하듯 해방 전후 공간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독립이란 목표는 같았으나 이르는 방법에 있어 입장을 달리했다.

민족주의가 계급적 사유에 냉담했던 반면 사회주의는 민중 모순에 둔감한 민족주의를 비판했던 것이다. 대다수 종교들이 민족주의와 결탁하여 사회주의와 맞섰고 이들 중심으로 나라가 세워졌다. 우익 민족주의가 대한민국의 건국 주체가 된 것이다. 이점에서 다석 역시 사회주의와의 연결점을 갖지 못했다. 이에 반해 동학의 경우 사회주의 경향성을 지닌 그룹과 인물이 적지 않았고- 물론 모두가 그렇지 않았으나- 폭력도 불사한 측면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다석은 물론 제자 함석헌도 미신성 및 사회주의 성향을 띤 동학에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살아생전 다석이 관계했던 사람들 면모에서 우익민족주의에 경도된 그를 살필 수 있다.(<<다석전기 류영모와그의 시대>> 교양인 2012). 허나 그럴수록 필자는 동학과 다석 사상의 관계성을 역설할 필요를 느껴왔다.

짧은 지면에 이들 연관성을 모두 적시할 수 없지만 골격은 밝혀야겠다. 필자는 다석 사상이 동학을 경유, 최치원의 풍류사상과 만날 수 있으며 누차 언급했듯이 <<천부경>>에까지 소급한다고 생각해왔다.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에 실린 ‘玄妙之道, 包含三敎, 接化群生’(현묘지도, 포함삼교, 접화군생)이란 말이 동학의 경우 侍(시)자를 풀이한 ‘內有神靈, 外有氣化, 各知不移’(내유신령, 외유기화, 각지불이)란 개념은 물론 다석이 언급한 계소리(하느님), 예소리(예수), 제소리(성령)와 내용 및 구조적으로 비슷함을 넘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들 사상 모두가 天地人(천지인)삼재사상의 틀거지 하에 있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즉 하늘, 땅, 사람, 곧 삼재론을 펼쳤으며 특히 사람에게서 하늘과 땅이 하나(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가 되었다는 <<천부경>>에 토대를 둔 사유체제란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각각은 표현에 있어 다르지만 구조 및 뜻으로는 전혀 다를 수 없다.

한국 고유한  道(도), 風流(풍류)는 본질에 있어 <<천부경>>속에 담긴 天地人삼재론과 관계있다. 유불선을 품는 모체이자 일상에서 생명을 잉태하는 힘인 풍류가 바로 삼재론이 산물이었다. 하지만 풍류의 핵심을 멋(조화)에서 봤던 유동식과 달리 필자는 生(생), 곧 살리는 일(接化群生, 접화군생)에 그 본질이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接’이란 말이 包含三敎(포함삼교)의 ‘包’와 합쳐져 후일 동학은 包接 제도를 발전시킨 것이다. 최치원과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모두 경주 崔(최)가로서 家學(가학)으로 연결된 된 것도 이런 관계성을 뒷받침한다.

동학에서 말하는 내유신령은 우리들 속에 거룩한 영이 내주한다는 것이며 외유기화는 이 영이 우주만물 속에서 활동한다는 뜻이고 각지불이는 이들 생명의 영을 누구도 옮기거나 망가트릴 수 없다는 의미를 지녔다. 다석은 이를 순수 우리글을 사용하여 ‘계’, ‘예’, ‘제’ 소리로 풀었다. 계는 인간을 하늘로 이끄는 하늘의 소리, 예는 그곳으로부터 이어 이어져 이 땅에 까지 이른 말씀 그리고 제는 그 말씀을 만나 그와 하나 된 삶(바탈태우)을 일컫는다. 이렇듯 최치원, 동학 그리고 다석 사상은 형식적으로는 삼수 변화에 토대를 두었고 내용적으로는 ‘인중천지일, 곧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는 사상이며 단순한 조화(멋)가 아니라 세계와 삶 자체를 바꾸려는 뜻을 담고 있다. 짧게 이야기 했지만 이들 사상 간의 골격과 맥을 잡아 함께 이해할 때 우리는 다석을 좀 더 발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학의 민중성, 생명성이 다석을 통해 드러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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