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아담을 먼저 유혹했다면
뱀이 아담을 먼저 유혹했다면
  • 김기대
  • 승인 2023.07.07 01:5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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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끼로 무엇을 부수고 싶었을까?

시몬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제 2 (Le Deuxième Sexe)’을 출판한 것은 1949년이다. 해는 프랑스에서 여성참정권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난 뒤였다. 여기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18세기 프량스 혁명기에 프랑스와 영국에서 꿈틀대던 페미니즘이 ‘제 2 성’에 와서 묵직한 논쟁을 사회에 던져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 68혁명기에 보부아르는 이론가에서 페미니즘 실천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기독교 여성신학의을 메리 데일리(Mary Daly) ‘교회와 2 성’(황혜숙 옮김, 여성신문사, 1997) 통해 보부아르의 2 개념을 교회로 가져온다. 그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으나 페미니즘 연구를 하면서 종교와 결별한다. 아일랜드 가톨릭은 북아일랜드와 종교 분쟁으로 결국 북아일랜드 지역을 영국연방에 남겨두고 혼자만 독립할 만큼 신심이 남다르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2002)에서도 아일랜드 출신의 갱들의 남다른 신심을 다뤘다.

메리 데일리는 페미니즘 연구가로 활동하던 초기에는 성서와 페미니즘의 대화가능성을 열어 놨었으나 연구가 거듭될 수록 교회안에 머물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기존의 신학방법론은 여성의 존재를 무시했기에 성서에 머무는 대립적 구조는 극복할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히 무신론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서가 서구 문화의 텍스트로 남아 있는한 해결방법이 없다고 것이다. 그는 보부아르의 ‘제 2 성’도 결국은 여성을 ‘타자’로 규정하는 남성중심적 세계관에서 출발했다고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메리 데일리의 사상은 현존하는 페미니즘 학자중 가장 유명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허물기’개념과 비슷하다. 굳이 성서를 가져오자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성도 여성도 없기 때문이다.

메리 데일리 이후 E.S 피오렌자는 여성적 시각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피오렌자의 사상은 ‘크리스찬 기원의 여성 신학적 해석' (김애영 옮김, 종로서적, 1986)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책의 원제는 In Memory Her. 번역이 뜬금없기는 하다.

남성 중심적 성서 텍스트들이 그러한 가부장적 억압과 또한 여성들의 고난에 관한 회상의 망각, 이것에 관한 침묵, 혹은 근절의 영속화와 합법화를 위해서, 사용되는 , 텍스트들은 하나님의 계시적 말씀이라고 주장할 없는 가부장적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남성 중심적 법전화(法典化)들로서 비신화화 되어야만 한다.  ('크리스찬 기원의 여성 신학적 해석')

 

여성을 굳이 기억하려면(In Memory Her) 성서는 비신화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성을 원죄의 근거로 삼는 ‘신학(또는 )’은 에덴 동산에서의 하와 때문이다. 뱀은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먹어 하나님처럼 되라고 유혹하고 그것을 따먹은 하와는 아담에게도 권한다. 그로부터 여성은 (사탄)에게 넘어간 줏대없는 존재, 남성을 유혹한 마녀같은 존재, 에덴에서 쫓겨나는 원죄를 낳은 마녀같은 존재로 서구사(교회사)에서 글자그대로 ‘제 2 성’으로 추락해 버렸다. 물론 성서탓만은 아니다. 히브리 성서가 문서화 되기 이전 이미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 시절부터 여성은 저급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기원후 후기 플라톤 주의와 기독교가 만나면서 여성 혐오의 원죄는 기독교 세계관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일종의 모방 욕망이다. 그러나 르네 지라르가 말한 모방욕망에서는 욕망의 매개자가 등장한다. 하와가 하나님을 직접 모방한 것이 아니라 뱀이라는 매개를 모방하고 싶었을 있다. 쉽게 말해 내가 호화 사치품을 갖고 싶은 이유는 제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모방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뱀은 단순한 사탄이 아니라 세속 지혜(신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싶은 지혜)의 상징이 있다. 하와는 단순히 지혜를 갖고 주체적 존재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뱀이 아담을 유혹하지 않은 것은 이미 존재하던 여성 혐오적인 세계관을 성서가 차용한 결과일 뿐이다. 아담을 뱀으로부터 지키고 싶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성서를 편찬했기에 그는 ‘보호’받을 있었다.

그러면 성서를 재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르네 지라르보다 앞선 세대이기는 하지만 자크 라캉에게 ‘모방’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지라르는 모방에 윤리적 의미를 부과하려 했지만 라캉은 인간의 욕망(모방)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타자(other) 인식하는 상상계와 각종 이데올로기가 타자로 작동하는 상징계를 거치면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실재에 도달한다. 그것은 타자(大他者,Other)이며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모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틈새를 통한 진입의 공간이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죽음충동을 감수해야 한다.

쉽게 풀어쓰면 나를 보호하던 여러 모방과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면 온전한 나를 발견하는데 그곳에는 나를 보호해줄 어떤 것도 없다. 그래서 죽을만큼 두렵다. 하지만 잃어버린 존재를 되찾고자 하는 열정(passion of being) 진리(실재계) 세계로 인도한다. 그래도 충분히 용기를 가질 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던 본회퍼는 나치의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하와를 이론에 적용하면 하와는 남성중심적 세계관에서 희생된 존재가 아니라 지혜가 그리웠던 주체다. 그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하나님은 텅빈 실재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성은 이미 가진 존재로 착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존재의 결여감이 없었다. 여성만이 그것을 인지하고 과감히 선악과에 손을 대었다. 그래서 하와는 마침내 타자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에덴동산을 떠날 있었고 하나님은 주체가 그가 이상 필요없기에 불칼(라하트 하헤렙) 에덴 입구를 막아 버렸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 안에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빌립보 2: 3-8, 새번역)

 

이제 모방의 대상인 타자에 다가가기 위한 경쟁심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이미 자기를 비워(kenosis) 텅빈 실재가 오래다. 그는 하늘에 있지 않고 인간에게로 들어 왔다. 이 본문 영어 성경에서 (he또는 himself) 그리스 원어는 모두(every) 이거나 인류(anthro), 성이 없는 단어로 쓰였다. 그러므로 8절의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신’에서 그의 원형은 아담이 아니라 텅빈 실재를 먼저 알아본 하와가 있다.

 

후학들이 편집한 The Mary DalyReader’의 표지에는 도끼를  메리 데일리의  모습이 있다. 그는 무엇을 깨고 싶었을까? 성서의 세계관, 교회, 남성중심적 세계관 모두 깨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깨부수지 말고 성서를 여성들의 것으로 가져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피오렌자 처럼 단순히 여성의 시각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예수와 사도바울은 화두만 던져 놓고 이런 해석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마치 예수가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해 편견을 부순 것같은, 바울이 남성도 여성도 없는 세계를 꿈꿔왔던 것같은 화두를 붙잡고 씨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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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팩트 2023-07-11 21:27:59
지금 충격전인 반전
진실과 팩트는
유튜브
놀러와 김원희
막차타
썰록과 와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충현 2023-07-07 15:58:01
세상에는 성서에 담긴 이야기들을 사실로 믿지 않고 신화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김기대 목사님처럼 저명하신 분이 이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뱀이 아담을 유혹하지 않은 것은 이미 존재하던 여성 혐오적인 세계관을 성서가 차용한 결과일 뿐이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성서가 "여성혐오적 세계관" 때문에 그렇게 쓰여졌다는 말입니까? 즉, 성령이 주신 영감으로 성서가 쓰여진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풍조에 영향을 받아 "쓰여진" 글이 성서라는 말입니까?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그저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라는 말입니까?

일리아드나 오딧세이 같은 그런 글들은 그시대의 풍조를 반영하는 소설들이지요. 성서도 그와 같은 부류의 글이라는 말입니까?? 황당한 분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