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한 다말과 현대판 이세벨
매춘한 다말과 현대판 이세벨
  • 김기대
  • 승인 2022.11.30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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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생아 논쟁의 목적은?

우리 말로 번역은 안되어 있지만 제인 샤버그(Jane Shaberg) The Illegitimacy of Jesus : A Feminist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Infancy Narratives에서 Illegitimacy 사생아(私生兒)이지만 Illegal(불법)에서 나온 말이므로 혼외자로도 번역할 있다. 혼외자는 사생아에 비해 도발적이지만 저자가 이미 고인이 데다가 제목 탓에 번역 출판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반기독교적 서적은 아니고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예수의 어린 시절을 페미니즘에 기초해서 해석한 신학서이다.

 

제인 샤버그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 5명의 여인에 주목한다. 다말, 라합, , 밧세바, 마리아가 그들인데 고대 사회의 족보에서 여성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샤버그는마리아 역시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암시하기 위한 배치라고 주장한다.

 

매매춘녀로 변장해서 시아버지에게 다가가 마침내 임신에 성공한 다말, 여리고 성을 열어준 기생 라합, 시어머니 나오미를 매파()삼아 보아스와 결혼한 룻, 이들과는 다른 경우지만 다윗과 혼외 관계를 맺은 밧세바로 이어지는 족보에서 마리아가 나왔으니 충분히 짐작 가능한 추정이다.

 비유의 위력’(한국기독교 연구소)에서 저자 존도미닉 크로산은 마태복음의 원전 격인 아람어로 나사렛인의 복음서 나오는 전혀 다른 달란트의 비유를 소개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 주인의 채물을 창녀들과 피리부는 여인들에게 탕진했으며A1

(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재물로 많은 돈을 벌었으며, B1

(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달란트를 감추어 두었다. C1

사람은 (기쁨으로) 받아 들여졌으며 C2

사람은 책망을 들었고B2

다른 사람은 감옥에 던져 졌다. A2

많은 이윤을 남겨 칭찬을 받았던 종들과 땅에 묻어 두어서 감옥에 종을 대비시킨 마태복음의 이야기와 달리 나사렛인의 복음서 이야기는 파격적이다. 크로산은 이렇게 파격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나서는 난데 없이 역순 병행법이라는 말로 논란을 피해가는게 조금 비겁해 보인다.

역순 병행법이란 A1 A2, B1 B2, C1C2 쌍으로 보는 해석이다. 다시말해 탕진한 사람(A1) 감옥에 갔으며(A2), 많은 돈을 사람(B1) 책망을 들었으며(B2) 땅에 감추어 사람(C1) 기쁨으로 받아 들여졌다(C2)

나사렛인 복음서 역순병행법을 썼다면 마태복음도 역순병행법을 쓰는 것이 옳은것이 아닌가? 어쨌든 재산을 남긴 사람이 책망을 받았다는 주장만으로도 오늘날 재산 증식의 이야기로 소비되는 달란트의 비유에 크로산이 제동을 것은 인정할 하다.

그래픽 노블(만화와 소설이 함께 하는 양식) 형태의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눈물을 떨구다-성서속에 나타난 매춘과 종교적 순종’(미메시스)에서 체스터 브라운은 크로산이 거론한 비유를 역순병행법 없이 그대로 옮겼다. 다시말해 창녀들에게 낭비한 사람(A1) 기쁨으로 받아들여졌다(C2) 것이다.

 

체스터 브라운(이원경 옮김),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눈물을 떨구다-성서 속에 나타난 매춘과 종교적 순종'(미메시스) 중 '다말'편에서
체스터 브라운(이원경 옮김),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눈물을 떨구다-성서 속에 나타난 매춘과 종교적 순종'(미메시스) 중 '다말'편에서

 

 

원초적 본능’, ’엘르’(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7562), 실제 역사를 다룬 ‘수녀원 스캔들-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원작으로 한 ‘베네데타’의 영화 감독 폴 버호벤의 책 ‘예수의 역사적 초상’은 제인 샤버그의 책과 존도미닉 크로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현재 절판상태여서 필자는 안타깝게 읽지 못했지만 그의 영화에 나타난 신학적 해석들이 상당히 도발적인 점이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엘르’에서 보여주는 신학을 다루는 그의 솜씨는 웬만한 신학자보다 앞선다(위 링크 참조).

족보와 매춘이 연결되는 논쟁을 연 인물은 다말이다. 다말은 야곱의 아들 유다의 며느리로, 유다의 아들 엘과 결혼했지만 엘이 일찍 죽는다. 형사취수의 전통에 따라 엘의 동생 오난과 재혼했으나 오난은 어차피 장손에게 돌아갈 재산 때문에 다말과의 잠자리에서 질외사정을 한다. 여기서 자위를 의미하는 오나니즘(onanism)이 나왔다.

오난이 죽자 막내 셀라도 죽을 것을 두려워 한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냈지만 셀라가 장성해도 다말을 부르지 않았다. 유다의 대를 이을 결심을 한 다말은 창녀로 변장해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임신에 성공한다.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다가 분노하자 다말은 그와의 성관계 때 획득한 증거물들을 제시함으로써 유다의 인정을 받는다.

유다의 두 아들과의 관계에서 임신에 실패한 다말이 결국 시아버지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 보다 더하다. 하필 왜 ‘이런’ 여성들만 메시아의 족보에 들어 가 있을까?

 

요람 하조니의 ‘구약성서로 철학하기’(김구원 옮김, 홍성사)에서 그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다. 하조니는 다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조물의 주체성이다. 그는 ‘농부의 삶’과 ‘양치기의 삶’을 구분하면서 땅에 예속된 농부의 삶보다는 양치기의 삶이 더 주체적이라는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 양치기 아벨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았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질서를 과감히 거슬러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자들을 좋아 하신다고 하조니는 주장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질서를 과감히 거스르는 자들을 좋아 하신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추방하면서 ‘고통 속에서 땅을 경작’하라는 선포를 했을 때 경작하다는 단어 ‘라아보드’는 섬기라는 뜻이다. 아담과 하와, 가인은 땅을 섬기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가인은 도시까지 건설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그들은 부동산의 노예가 되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

하조니의 주장을 다말에게 적용하면 다말은 주체적 여성이다. 예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도 (밧세바가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주체적 삶을 살았다. 다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유다의 대를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동적으로 유다의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다가갔다. 하조니의 주장과 다말의 행위를 연결시킨 사람은 체스터 브라운이다. 

그래도 ‘매춘은 좀?’ 하고 묻는다면 매춘보다는 매매춘이 ‘정치적 올바름’에 맞는 말이듯이 이 사건을 다말의 죄로만 돌릴 수 없다. 질외사정을 한 오난의 죄처럼 엄격히 말하면 유다도 질외사정을 한 셈이다.

체스터 브라운과 존도미닉 크로산의 글에도 나왔듯이 신약시대의 매춘은 일상이었다. 교회 내 매춘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바울은 이교도들도 안하는 짓을 한다며 다음과 같이 통탄한다.

 

여러분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그러한 음행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교만해져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러한 현상을 통탄하고,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서 제거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5:1-2)

 

요한계시록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버가모 교회 안에 심지어 매춘을 권장하는 자들이 있다며 이렇게 경고한다.

 

그러나 나는 네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가운데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일을 하게 한 자다.(요한계시록 2:14)

 

예수의 족보에 실린 여성들의 주체성

 

신약시대에도 이러할진데 창세기 시대의 매춘을 오늘날의 잣대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매춘의 역사가 고대 종교의 신전 무당들의 매춘에서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유다와 다말의 관계도 이해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오늘날, 여전히 부족하기는 하지만, 여성이 주체적 행위를 할 공간이 넓어진 시대에 매매춘을 그 시대와 결부시켜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인 샤버그는 예수의 족보 속 다섯 여성을 그들의 행위 보다는 주체성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예수의 족보에 들어가도 하등 부끄러울 것이 없는 주체성이다.

 

모방과 복사는 현대판 매춘이다

현대에도 이런 식으로 그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문제다. 매일 뉴스에서 조롱의 중심에 있는 어떤 여성은 신분 상승을 위해 거짓으로 학력을 세탁하고, 고위층에게 접근하고, 땅을 섬기면서 부를 축적해 왔다. 매매춘이 아니라 오롯이 죄를 짓는 매춘행위다. 이것은 여성의 주체적 행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 여성에게는 오직 모방과 복사만이 있을 뿐이다.

요한계시록은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한 두아디라 교회에서 조차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분개한다.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미혹시켜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다. (요한계시록 2:20)

과연 현대판 이세벨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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