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청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최병인 편집장
  • 승인 2024.01.2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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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퇴근을 하고 장바구니를 챙겨 마을 중심부에 있는 마트에 갔다. 감자를 듬뿍 넣은 카레를 해 먹을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서 적립을 꼭 해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잊은 채 계산대를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이 식자재 마트 자리는 원래 갈비탕 집이었고 낚지볶음 집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사거리에 있는 데다가 널찍한 주차장으로 인해 언제나 대형 체인점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10년 전에 마트가 들어온 뒤, 이 자리는 드디어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광장처럼 변모했다. 주차장으로 활용되었던 공간은 더 이상 차량 진입이 안 되었고 곳곳에 과일만 판매하는 가판대들이 놓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 대부분 이 마트 앞을 지나가야만 했다.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면 줄곧 그 마트 앞에서 만나곤 했다. 모두와 만나기에 가장 공평하고 편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앞을 일부러 지나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교회를 떠나고부터 쭉 그래 왔다. 그 마트는 모교회 옆에 있었다. 별다른 마음은 없었고 교인들을 마주치는 게 피로할 따름이었다. 특히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적 없지만 안면이 있는 사이가 힘들었다. 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못 본 척 지나치기 민망해서 서로 공허한 말들을 잠시 주고받는 그 순간이 매번 버거웠다. 사실 못 본 척 눈길을 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상대방도 그러하는 걸 몇 번 눈치를 챈 적이 있는데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감자 몇 알만 사서 집으로 곧장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보며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A 누나였다. 반짝이는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한 남성 세 명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금요일 8시, 오피스가 없는 마을에서 풀정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클리셰다. A 누나는 경호원처럼 보이는 남성들을 먼저 보내고 내 앞에 섰다.

중학생 시절 나를 가르쳐 주었던 스무 살 교회 선생님, 지금도 여전히 교회 곳곳에서 사역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건너 들은 적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즐겁게 나누었고 다리가 저릴 정도로 오래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갑자기 누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끝내 자기도 교회를 나오기로 결정했단다. ‘끝내’, ‘자기도’라는 단어가 내내 맴돌았다. 나도 이 두 단어를 가지고 교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청년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였다. 나는 2016년, 어느 주일에 교회를 떠났다. 그날 나는 청년부 예배에 지각을 했다. 전날, 엄동설한에 아랫지방 농민들이 트랙터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는 뉴스 보도에 신학교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을 향했다. 막차 시간을 놓쳐 아현동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세수만 하고 꼬질꼬질한 상태로 교회를 간 것이다. 예배당 입구에 영관장교 출신의 수석 장로님이 서 있었다. 청년부 회장이 예배에 늦으면 어떡하냐고 야단을 치셨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나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큰 이불킥을 자아내는 멘트지만, 나의 순수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읊어 본다. “나라가 이런 상황인데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 아마 지금은 이 정도까지 비장하지는 못할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이런 류의 말들을 했고, 장로님의 한마디 답변에 나는 그날로 교회를 떠났다. “박정희 때였으면 다 밀어 버렸어!”

 

10년 동안 많은 청년이 ‘끝내’, ‘자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교회를 이탈했다. 물론 동일한 상황 때문은 아니다. 최근에도 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형, 저도 떠나요.” 이야기를 전부 듣고, 혹시 앞으로 다닐 교회는 결정했냐고 물어보았다. 마트 앞에서 만난 누나도, 그리고 이 동생도 마찬가지로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교회 바깥으로 나왔다. 다음 거처를 결정하지 않은 채 이전 거처를 떠난다는 것은 매우 아픈 일이다.

시간의 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흘러가기를 바란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지지해 주고,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를 소망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기 마련이다. 이 기다란 줄이 어느 지점에서 잘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우리는 좌절한다. 우리는 나의 과거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우울의 늪에 빠지고, 미래라는 줄도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불안의 미궁에 둘러싸인다.

요즘 교회를 떠난 지 10년 정도 지난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교회에 관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는 데 어려움이 많이 사그라들었음을 경험한다. 무언가 그 시절의 사태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관점이 청년들에게 생기게 된 것 같다. 일찍이 교회를 떠난 청년들은 한동안 교회니, 믿음이니, 신앙이니 하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자기 바깥으로 밀어내고는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인생을 살았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저항이나 인간의 원죄에서 비롯한 죄성이라기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사랑, 의지에 가깝다. 마치 시간의 단절을 경험하고 디베랴 바다로 다시 돌아간 어부 베드로와 같은 심정일 테다. 그는 그리스도가 곁에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 끊어진 자신의 과거의 줄을 되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끊어진 과거의 단면, 그 자리에 서 계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그분의 말은 끊어진 시간의 봉합이며, 영원으로의 포섭이다. 그리스도는 무수한 실패, 낙심, 좌절 속에서 시간의 단절을 느끼는 이들을 영원한 사랑으로 안아 주시고 수용해 주시는 분이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과 분석이 담긴 글들이 많이 보인다. 여태껏 교회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길래 뒤늦게 이러한 작업을 하는지 우선 의문이 든다. 날 선 생각을 갖자면, 이 또한 비인격적인 대상화로 느껴진다. 잃어버린 청년들이 곧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결코 그들이 청년으로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내 친구들은 아저씨가 되었다. 그러니까 ‘청년’이란 얼마나 고정적인 단어인가. 교회 안에 중간 나잇대가 들어차길 바라는 지극히 구조적 관점이 담긴 말이다. 그들을 청년이라는 공허한 단어 안에 가두지 않고, 하나의 존귀한 인격으로 모두를 대했다면 어땠을까. 어느 청년이 우리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다. 한 인격이, 한 그리스도인이 청년이라는 틀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도 교회가 아직까지 청년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면,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00년생은 이미 온 지 오래고, 그 너머에서 10년생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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