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가족이 된다고
아프면 가족이 된다고
  • 최병인 편집장
  • 승인 2023.08.04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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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을이

이 년 전, 정확히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날 가을이를 집 앞 화단에서 데려왔다. 흙으로 빚어진 듯 보이는 생명체였다. 배꼽에 이상한 실 같은 게 달려 있었는데 그게 탯줄이었다. 어미는 자신의 편에서만 가을이를 끊어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다.

가을이를 인간 세계로 데려온 뒤 반 년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가을이가 조금 달라졌다. 간혹 굵은 목청으로 울기도 하고 집안 모서리 곳곳에 얼굴을 비비더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아무래도 발정기가 찾아오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신뢰하는 랜선 수의사 두 분이 있었다. 마이펫상담소의 윤쌤과 미야옹철이라 불리는 김명철 선생님인데, 두 분 모두 발정기를 겪고 있는 반려동물에게는 중성화 수술이 불가피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물과 사람은 한 공간에서 살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납득이 가면서도 의심스러운 말이었다. 어찌 되었든 동물의 중성화를 결정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불편했다. 그래서 자료를 더 찾아보니 고양이의 발정에는 로맨틱한 서사가 없다는 데 수긍하게 되었다. 가을이는 말을 못하고 정확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는 반려인간이 더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내와 가을이의 중성화 수술을 결정하고 병원을 예약했다. 곧이어 닥칠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가을이는 병원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까불거렸다. 동물은 정말 연약한 존재다. 평소에도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가을이라서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순조롭게 가을이를 수의사 선생님에게 넘길 수 있었다.

그사이에 아내와 나는 잠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약 1시간 정도가 흘렀다. 수술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돌아갔는데 가을이는 보이지 않고 수의사 선생님이 우리를 따로 불렀다. 중성화 수술을 하던 중, 가을이의 한쪽 난소가 기형적으로 다른 장기에 붙어 있는 걸 발견하고는 배를 다시 봉합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첨언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마취 상태에 있는 가을이를 큰 병원으로 옮겼다. 새로운 수의사 선생님은 출혈이 많은 큰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가 워낙 어려서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 흔한 중성화 수술이 다른 차원의 수술로 흘러간 거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가을이는 회복을 위해 3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우리는 일과가 끝나면 곧바로 가을이를 보러 갔다.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님이 물었다. “원래도 가을이가 사납나요?” 온종일 긴장을 풀지 않아서 아이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혹여 물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정말이지 처음에는 멀리서 다가오는 아내를 가을이가 못 알아보고 이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이름을 두세 번 부르니 그제야 알아보고 봉합되어 있는 아픈 배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가을이가 울고 있었다. 고양이도 눈물을 흘린다는 건 전혀 몰랐다. 서로의 감정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 체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을이는 우리에게 아픈 배와 눈물을 보여 주었다. 서로를 향한 아픔을 확인한 뒤 우리는 더 가족이 되었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대화가 떠오른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사람들이 너무나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린 서로를 필요하게 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는 너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최병인 편집장 / 뜰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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