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소년공을 선택한 시민의식이야 말로 역사의 위대한 진보아닌가?

  • 기사입력 2025.06.04 00:12
  • 최종수정 2025.06.06 00:56
  • 기자명 김기대 논설위원

선거가 끝났다. 누구는 졌고, 누구는 이겼다. 그러나 선거에서 가장 빛난 것은, 후보가 아니라 ‘시민’이었다. 이재명이 이긴 것이 아니다. 흙수저 소년공을 선택한 시민이 이긴 것이다. 기득권의 그늘 아래 신음하던 이들이 ‘한때 소년공’이었던 사람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계급 장벽을 허물려는, 시민의 의지 표명이다.

NL이니 PD 하는 오랜 진영 구분이 무의미해진 순간이다. 산업화 민주화라는 이분법, 남북관계와 계급투쟁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전통적 갈등은 이상 유권자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이제 시민의 눈은 ‘어디 출신인가’가 아니라 ‘누구 편인가’를 본다. 출신과 학벌, 계보와 인맥의 정치를 넘어서, 시민의 언어로 말하고 시민의 고통을 나눈 사람을 선택하는 정치. 이것이야말로 진보다.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특정 진영에 넣기 어렵다는 평가는, 오히려 오늘의 시민들이 지닌 정치 감각의 성숙을 반영한다. 그는 손엔 복지와 노동, 다른 손엔 질서와 국가를 들었다. 정책의 좌우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국민의 삶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가였다. 사람들은 이상 레토릭에 홀리지 않는다. 사민주의적 수사를 늘어놓는 지도자가 아니라, 가난한 현장에서 싸워 사람에게 마음을 것이다.

여기서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말을 떠올리지 않을 없다. 랑시에르는 정치는 무명의 주체가 이름을 갖는 과정이며, 말할 없던 이들이 말하는 장을 여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선거는 무명성의 끝에 자리한 인물이 익명의 시민들의 손에 의해 '이름' 부여받는 과정이었다. , 기존의 정치 주체에서 배제되었던 계층이, 투표를 통해 '자기 대표' 만들어낸 것이다.

 

정치가 존재하는 것은 없는 이들의 몫의 설립에 의해 지배의 자연적 질서가 중단될 때이다.

정치 이전에는 데모스 내지 인민 또는 민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가 존재하기 이전에 빈민은 없는 이들로써 ‘아무것에도 참여하지 않는’(아무런 몫도 지니지 않은) 이들에 불과했다. 이들 빈민, 자신의 몫을 갖지 못한 이들은 바로 정치를 통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전환된다.

(자크 랑시에르, 진태원 옮김, ‘불화, 도서출판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재명이 잘해서가 아니다. 이재명이 '다른' 정치인, 몫없는 무명출신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사람 곁을 지키면서 동시에 사람이 우리의 곁을 지킬 것이라 믿었다. 흙수저의 인생, 비정규직의 아픔, 재개발의 상흔, 강자 앞에서 움츠러드는 약자의 눈빛을 이해하고 있다는 직관. 바로 그것이 선택의 동인이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진보와 보수, 자주와 평등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진짜 시민의 얼굴을 자주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유권자들은 스스로 생각했고, 스스로 판단했다. 어떤 언론도, 어떤 조직도 그들을 움직이지 못했다. 선거는 ‘촛불 이후 시민의 자기 선언’으로 읽혀야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진보는 이제 시작이다. 진보란 좌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흙수저가 이름을 갖고, 이름이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 이제 NL, PD, 혁신도 개편도 이름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이재명이 아니라, 그를 선택한 시민들이 진정한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남태령에서의 키세스와 농민들의 만남이야 말로 이재명이 키워드였던 시기에 이재명 없이 시민들이 이루어낸 진보의 또다른 모습이다.

이재명은 기대 위에 많은 무명의 이름들을 불러낼 있을 것인가? 그것이 이재명에게 남겨진 몫이다. 자신의 정치 의식을 표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는 무명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호모 사케르’. ‘서발턴으로 명명되는 방외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호명될 역사는 계속 진보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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