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輿論, Public Opinion)’이란 ‘공중(Public)의 의견’이라고도 표현하는데 18세기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장 가브리엘 타르드는 대화와 토론 등을 거쳐 자발적으로 공적인 의견을 형성한 인간 집단을 ‘공중’이라고 불렀으며 이들의 생각인 ‘여론’은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4대 대통령인 제임스 매이슨은 ‘여론(Public Opinion)’이란 에세이에서 권력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선거 시기 정치인을 선출할 때만 그 권력이 극대화되고 사라지는 대의 민주주의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여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거 시기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 방식으로 선거 결과를 예측한 것은 1930년대 미국 대선에서였는데 ‘여론조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갤럽은 표본 조사를 이용해 장모의 선거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당선을 예측해 명성을 올렸다. 하지만 불완전한 표본추출 방식으로 이후 듀이와 트루먼의 대선 예측은 보기 좋게 실패해 여론조사는 참고자료로 봐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여론조사는 결과에 대한 궁금증과 화제성으로 뉴스 가치가 높은데 특히 한국에서는 여론조사를 매개로 정치인들과의 만남이 쉽게 이어지기 때문에 ‘권력 통로’의 의미도 더해진다. 지난 총선에서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 과정을 주도했던 명태균씨가 대표적 사례다.
명태균씨는 직업이 불분명하지만 여론조사전문가(pollster)라고 할 수 없다. 활동 행태가 ‘연구자’들인 여론조사 전문가들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김영선 의원과 세비를 반반 나눠가졌다는 점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 소통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권력형 선거 브로커’로 보는 게 타당하다.
과거 “내가 가는 곳은 모두 진실한 사람이다”라며 ‘진박 감별’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조원진 전 의원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명태균씨를 ‘실력있는 여론조사가’라고 표현했는데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명태균씨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와 서울대 법대 동기인 김영선 전 의원을 통해 검찰총장 시절 윤대통령 부부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이후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되면서 지속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등 친분을 쌓아갔다. 당시 명씨와 윤대통령 부부가 얼마나 밀도있게 교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김건희 여사 초청으로 취임식 맨 앞자리에 앉은 걸 보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명태균씨는 <미래한국연구소>란 여론조사업체를 운영했는데 연구소 대표가 누구인지 불분명해 차명으로 운영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선관위여론조사심의위원회 사이트에서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4월 30일까지 <미래한국연구소>를 검색해 보면 공표 여론조사가 총 35건 검색되는데 조사 시행은 모두 피플네트웍스(PNR)에서 전담했다.
특히 2020년 4월 총선 당시 김영선 전 의원이 수도권에서 활동하다 고향인 창원진해 선거구에 도전했을 때 <미래한국연구소>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여론조사’가 아닌 ‘여론조작’의 흔적이 상당히 의심된다.
당시 창원진해선거구는 미래통합당 소속 총 7명의 후보가 경합을 벌였는데 <미래한국연구소>가 경남 연합일보(‘연합뉴스’가 아님)와 함께 2020년 2.28∼29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거주하는 만 18 세 이상 성인남녀 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설문항이 ‘유도성 질문(leading questionnaire)’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사용된 설문지를 분석해 보면, 먼저 ‘정당 지지도’와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는지’를 물은 후 미래통합당 김영선 전 한나라당 당 대표와 민주당의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을 가상 양자대결로 물어본다.
그 다음 이어지는 세 개의 질문은 당내 경선 가상대결을 3인(김영선-이달곤-엄호성), 4인(김영선-유원석-이달곤-엄호성), 8인(김영선-이달곤-유원석-엄호성-김순택-박지원-이성희-박재일)순으로 총 3번 묻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층이 조사 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문은 민주당과의 가상대결 문항에 이달곤 또는 유원석을 넣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된다. 응답자들은 가상 양자대결처럼 경쟁 구도에 들어간 후보가 당내에서 가장 유력할 것으로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실제 미래통합당 당내 2인 경선에서 올라간 유원석 후보는 당내 4인 경선 문항에서 등장해 의도적 배제를 보여준다. 여론조사전문가들은 이런 식으로 문항을 짤 수 있지만 실전에 쓰지는 않는다. 조사결과 왜곡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태균 씨를 여론조사전문가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김영선 전 후보는 고배의 쓴잔을 마신다. <미래한국연구소>의 공표 여론조사에서 유원석, 이달곤 후보를 2배 차이로 앞서던 1위의 김영선 후보를 탈락시키고 2,3위인 유원석, 이달곤 후보가 경선하는 것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김영선 전 의원과 명태균 씨는 정치적 동지가 된 것 같다.
잘못된 여론조사에 의해서 민주적 절차로 진행되어야 할 공당의 경선이 영향 받아서는 안된다. 명태균 씨가 여론조사 기법을 조금 알 수는 있었겠지만 전문가로서 갖춰야할 직업윤리의식은 매우 약했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수사를 통해서 여론을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교란 행위라는 것을 엄하게 본보기로 보여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