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서부연방지방법원은 현지 시간으로 18일 “새로 작성된 선거구가 헌법이 금지한 ‘인종 선별적 게리맨더링일 가능성이 높다. 2026년 텍사스 연방 하원의원 선거는 2021년에 채택된 선거구 지도를 기반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새 선거구 안에 대해 예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의 선거구 재편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게리 맨더링을 만지작 거리던 다른 공화당 주의 시도들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트럼프에 맞서 캘리포니아주에서 민주당에 유리하도록 만든 선거구 조정안은 주민투표를 통과했기 때문에 그대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공화당 입장에서는 혹떼려다 혹붙인 격이 되고 말았다.
게리맨더링의 기원은 181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의 이름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당에 유리한 선거구를 만들기 위해 기괴한 모양의 지역구를 그렸다. 이 선거구가 도롱뇽(salamander)을 닮았다고 비난한 신문 만평에서 “게리맨더(Gerry-mander)”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미국 정치의 어두운 골목에는 늘 이 단어가 붙어 다녔다. 처음에는 농담이었고 희화화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게리맨더링은 미국 정치의 제도적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지도에 그어지는 선 하나가 선거의 공정성과 정치인의 생존을 결정하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지금의 선거구는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인구도 지형도 완전히 달라졌으니 한 번쯤 고칠 때가 된 게 아니냐” 라는 의견도 제기되었었다. 실제로 미국은 인구 이동이 심한 나라다. 텍사스는 라틴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캘리포니아는 도시와 교외의 인구 균형이 크게 바뀌었다. 플로리다,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은 이주 인구 증가로 지역 특성이 연달아 달라지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고려할 때, “오래된 선거구를 손보는 것 자체는 민주주의에 필요한 일”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필요한 개정’이 아니라 ‘정치적 개입’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텍사스 공화당은 라틴계 인구 증가가 민주당 지지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이 인구를 여러 지역에 분산시키거나 특정 지역에 몰아넣는, 이른바 희석(dilution)·압축(packing) 전략을 쓴다.
텍사스의 최근 사례를 보자. 공화당은 라틴계 및 흑인 등 소수인종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분산시키는 선거구를 만들었고, 이에 대해 연방 지방법원은 명확히 ‘인종적 게리맨더링’ 소지가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판사 패널(2:1 다수의견)은 정치적 목적을 넘어 인종집단을 분리·약화시키는 ‘불법적 인종 기반 게리맨더링’의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텍사스는 내년 중간선거에 기존 2021년 경계 지도를 다시 사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공화당은 이 개편을 통해 연방 하원 5석 정도의 추가 획득을 노렸으나, 소수인종 단체의 소송과 법원의 판단으로 저지된 것이다.
게리맨더링의 본질은 유권자가 정치인을 선택하는 구조가 아니라, 정치인이 유권자를 설계하는 구조가 굳어지는 데 있다. 이 구조에서는 경쟁이 사라지고, 극단주의 정치인이 당선되며, 의회는 타협보다 갈등을 택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양극화, 의회 파행, 민주주의의 후퇴는 선거구 조정이라는 기본제도의 오랜 변형과 직결된다.
따라서 선거구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선을 다시 그어야 한다는 것에 논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권한은 정치인이 아니라 비정당적 전문가와 시민이 가진 독립기구에 맡기고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야말로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건강을 좌우하는 질문이다. 미시간,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 여러 주에서 시도한 독립 선거구 재획정위원회(Independent Redistricting Commission) 모델은 완벽하진 않지만 분명히 더 투명하고 더 민주적이다. 지도 위의 선을 정당이 아니라 시민·전문가·비정당적 대표들이 공개적으로 조정할 때, 비로소 선거구는 정치적 이익의 전장이 아니라 공공대표성의 장이 된다. "지도 위의 선을 누가 그릴 것인가?" 오늘 미국 민주주의를 가르는 진정한 시험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