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우리 아들!
사랑해, 우리 아들!
  • 경소영
  • 승인 2016.09.11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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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API Rainbow Parents(동양계 성소수자 부모 모임) 설립자 클라라 윤 씨

[뉴스 M = 경소영 기자] 평일 오전 10시 반, 뉴욕 공립 도서관 앞은 아직 한산하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다. 날은 선선한데 손에 자꾸 땀이 찬다. 무슨 말을 먼저 건네야 할까. 대화 중 혹여 말실수로 상처라도 드리면 어쩌나. 트랜스젠더인 자녀를 둔 엄마와의 첫 인터뷰를 앞두고,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평범한 엄마, 클라라 윤 씨

“어머! 어떻게 지내셨어요? 건강하셨어요?”

지난 7월 성소수자 패널 워크숍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고 두 달 만이다.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맞잡았다. 순간 긴장이 확 풀렸다. 소위 ‘엄마 미소’가 가득한 클라라 윤 씨의 얼굴에서 한국에 계신 엄마가 스쳤다. 그렇다. 클라라 씨는 성소수자 활동가이기 이전에, 대학생 자녀가 있는 평범한 엄마다. ‘API Rainbow Parents(성소수자 부모들의 모임)’를 만든 것도 자녀가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카페를 찾아가는 길, 잠시 맨해튼 거리를 함께 걸었다. 그는 1980년대에 미국에 이민 온 1.5세대다. 뉴욕에서는 20년 이상 거주 중이고, 아이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우리 아들은 뉴욕에서 났으니 진짜 ‘뉴요커‘ 랍니다’라며 웃는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맨해튼 거리에서는 도통 대화가 힘든데, 역시 이 동네 주민은 이 와중에도 여유가 있다. 카페에 다다를 무렵, 그는 ‘아무도 우리 이야기 잘 들어주지 않는데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클라라 윤 씨는 대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엄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뉴스 M> 유영

딸이 아들이 되기까지 

클라라 윤 씨에게는 한 명의 자녀가 있다. 태어났을 때 성별은 여성이었다. 딸로 키웠지만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러운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엄마인 그 역시 세 자매 사이에서 자란 터라 여성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우리 딸은 다른 여자아이처럼 인형을 좋아하지 않을 뿐, 평범하고 털털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성적도 조금씩 떨어졌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 아니던가. ‘별일 없겠지’ 생각했지만, 이유 모를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조용히 부모에게 말을 건넸다.

“그때가 2010년이니까 6년 전이네요. 9학년이 끝나갈 때쯤이었어요. 아이가 저희 부부에게 ‘저는 남자입니다’라고 커밍아웃을 했어요. 집안이 발칵 뒤집혔죠. 그 후로 1년간 거의 악몽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처음 서너 달 동안은 아이에게 ‘병’이 있다고 생각했다. 치료를 위해 전문가를 수소문해 찾아갔다. 윤 씨 부부와 아이는 동행했지만, 방문의 목적은 서로 달랐다. 부모는 ‘당신의 자녀는 성소수자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고, 아이는 전문가를 통해 ‘트랜스젠더’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받고자 했다.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 

부모는 아이의 성 정체성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바꾸기 위해 ‘트랜스젠더’가 되는 과정에는 단계가 있다. 의학의 도움을 받아 실제 몸에 변화를 주는 것, 바뀐 성대로 사회적인 대우를 받는 것, 법적으로 이름과 성별을 바꾸는 것, 이렇게 세 단계이다.

이 모든 것을 당장 허락할 수는 없지만, 외모적인 변화를 주는 것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남자 옷을 입는 것부터 서서히 단계를 밟아나가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가 트랜스젠더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잖아요. 이걸 갑자기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요.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어요. 그 정신적 충격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었어요.

주변에 성소수자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일하던 회사 매니저도 게이였거든요. 그런데 내 아이가 성소수자인 것은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폭풍같았던 1년 여의 시간이 흐른 뒤, 윤 씨 부부는 자녀의 바뀐 성을 인정하게 됐다. 내 아이가 불행해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가 되는 과정을 돕기로 하고, LGBT 센터,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모임에는 동양인이 거의 없었다. ‘동양인 중에는 성소수자가 없나?’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양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아, 밖으로 나오는 성소수자 가족이 드물었던 것이다. 

2012년에 동양인 성소수자 부모를 처음 만났다.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일본인 마샤 씨, 그가 책을 내고 뉴욕에서 강연회를 열었을 때였다. 윤 씨는 그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너무 반가웠다는 것이 눈물의 이유다. ‘나처럼 트랜스젠더 아들이 있는 동양인 엄마가 있네’라는 동질감만으로 감격할 수 있는 것이 성소수자 부모다.

클라라 윤 씨는 성소수자 가족을 격려하고, 성소수자 자녀의 인권 향상과 사회적 지지를 이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API Rainbow Parents of PFLAG NYC 페이스북 캡쳐)

마샤 씨를 만난 후 성소수자 부모로서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마샤 씨의 권유로 NQAPIA(전국아시안성소수자연합회)에 참여하여 동양계 성소수자 부모를 위해 캠페인을 하기 시작했다. API Rainbow Parents(아시아계 성소수자 부모 모임)를 설립하고 PFLAG(성소수자 부모와 가족, 친구 모임)에서 성소수자 가족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LGBTQ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한다.

아시아계 성소수자와 부모를 위한 단체를 만든 이유는 이렇다. 미국에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 온 사람이 많다. 그들의 꿈은 자녀가 공부 잘 해서 성공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민자의 자녀가 성소수자인 경우 ‘난 부모님의 꿈을 이뤄드리지 못할거야’라는 죄책감이 매우 크다고 한다. 커밍아웃하는 순간 가족의 희망과 평화가 깨질 것이라 생각하니 두려운 것이다. 특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줄곧 보며 자란 동양계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성소수자라고 성 정체성을 처음부터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껴지는 순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갈등이 시작된다. ‘나는 여자인데 왜 여자가 좋지? 다른 애들은 안그런데 나는 왜 이러지?’라는 생각에 괴롭다.

고통스러운 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이는 과정부터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인도 해보고 아닌 척도 해보다가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 갈등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혹독한 전쟁을 치른 후, 다음 단계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마음을 열어줄 지인에게 문을 두드린다. 미루고 미루다 가장 마지막에 부모에게 이야기한다. 그때부터는 이제 부모의 커밍아웃 단계가 시작된다. 자녀의 성 정체성을 부인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거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이러한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낸 클라라 윤 씨는 성소수자 부모들의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안다.

“성소수자 부모는 ‘내 아이는 성소수자입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해요. 저도 그랬고요. 아들이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쉽게 나올리 없죠. 얼굴부터 붉어지고요. 그래도 시간이 좀 흘렀고 말하는 연습도 많이 해서, 이제 저는 편안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정말 그랬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엔 평온한 미소가 가득했다. 성소수자 가족을 만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즘, 매일의 삶에 활기가 넘친다고. 물론 이러한 결과는 윤 씨 부부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힘내라고 위로를 건넨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한국 성소수자 부모와의 유대 관계로 인한 격려는 더욱 특별하다. 특히 지난 6월 서울시청 앞 광장의 퀴어문화축제에서 있었던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프리허그 동영상은 온라인상에서도 뜨거운 화제였다. 실제 해외에 있는 동양계 성소수자 부모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가족들이 프리허그 동영상으로 인해 희망을 안고 있을 때, 같은 달 미국 올랜도에서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동성애 증오’로 인한 총격으로 50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많은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다. 더불어 올랜도 참사로 인해 성소수자들이 하나 둘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기 시작했다. 윤 씨의 아들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혔다. 다음은 동의를 받아 발췌한 그 글의 일부다.

“난 내가 다른 어떤 것보다 올란도 참사에 대해 더 고통스러워 하는 이유를 안다. 태어나서 이렇게 두려움을 느낀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는 것만으로는 나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당신은 우리를 파괴하고 억누를 수 없다. 절대 우리를 없앨 수 없다. 당신은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없애려는 당신, 그러나 성소수자는 아직 더 있고, 언제나 있을 것이며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당신이란, 성소수자에 대한 여러 가지 억압과 증오를 뜻한다)

윤 씨의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이 글을 버스 안에서 보고 두 시간 내내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못을 박아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아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을 퀴어(Queer)라고 칭한 것을 처음으로 이 글을 통해 보았다는 윤 씨, 그동안 수많은 성소수자와 자신의 자녀가 얼마나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부모로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명서를 냈다. 올랜도 참사로 성소수자 자녀, 친구를 잃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와 사랑을 구하고 싶었다. 

클라라 윤 씨는 성소수자인 아들이 더는 불행한 삶을 살기 원하지 않는다. ⓒ<뉴스 M> 유영

성소수자 엄마의 부탁

부모의 마음은 다 같다. 자식에 대해 마음 아픈 이야기를 할 땐 울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 같이 유쾌해진다. 성소수자 부모도 마찬가지다. 윤 씨는 성소수자 부모들과의 만남이 굉장히 재미있다. 아들 딸의 데이트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할 수 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일이 생기면 힘을 합해 의견을 내기도 한다. 얼마 전 뉴욕주 상원의원 정승진 민주당 예비후보의 반동성애 발언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즉각 낼 수 있었던 것도 성소수자 부모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경직되고 보수화된 한인 사회가 변화되길 바란다. 미국 내에서 한인 사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더 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색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분야에 유대 관계를 맺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한인 커뮤니티와 특히 한인 교회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배제되기 쉽상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요. 다양성은 문제 해결과 창조적인 일을 해나가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열쇠예요.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한인들도 조국에 대한 향수에만 그치지 말고, 여러 분야의 소수자도 끌어안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클라라 윤 씨를 비롯한 한인 성소수자 부모들은 오래도록 고민해온 끝에, 한인 사회에 성소수자 지지와 이해를 구하고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한국계 미국인 무지개 부모모임(Korean American Rainbow Parents; KARP)이 미국내 한인 사회를 대상으로 아웃리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고자 한 것이다.

9월 11일 ‘성소수자 지지자를 위한 워크숍’을 시작으로 10월 15일에는 워싱턴 D.C에서 미주 한국 성소수자 부모 모임 세미나로 이어진다. 미국내 성소수자 부모, 한국의 성소수자 부모,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획기적인 첫 만남이다. 브라이트 신학대 강남순 교수가 ‘기독교 커뮤니티 안에서의 성소수자 수용’을 주제로 강연도 할 예정이다.

오는 10월 15일  워싱턴 D.C에서 미주 한국 성소수자 부모모임 세미나가 열린다. (Holy Cross Korean Church에서 trulo Anglican church로 장소가 변경됨.) 이 세미나에선 미주 전역의 성소수자 자녀를 둔 한인 부모님들이 공동체 설립과 성소수자 자녀들의 인권 향상과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낼 방법 모색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강남순 교수가 '기독교 커뮤니티 안에서의 성소수자 수용'을 주제로 강연한다.

한인 사회의 혐오 정서는 많은 한인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미국내 한인 사회를 떠나고 가족을 분열시켰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인 부모들과 지지자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를 가시화 시킨 일은 없었다. 윤 씨는 올 가을에 있을 모임들을 통해 분위기가 변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저도 참 오래걸렸어요. 내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든데, 나와 다른 타인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데에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는 여러 단계가 있잖아요. 괜찮은 것 같아도, 때때로 안 괜찮은 순간도 있어요. 그 과정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워크숍, 세미나 등을 통해 정보를 드리고 싶은거죠.

성소수자 부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식의 행복은 꼭 부모가 생각한 방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결혼, 직장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는거죠. 아이가 직접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할 때 자녀의 행복이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내 아이는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불행할거야’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것이죠. 자녀가 스스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예요.”

성소수자 모임을 그 어떤 모임보다 밝게 진행하고 싶다는 클라라 윤 씨, 그는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은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지 똑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동정이나 측은함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저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과 미국의 성소수자들이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마음을 열고, 올 가을 열리는 성소수자 모임에 문을 두드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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