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성소수자와 가족,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한인 성소수자와 가족,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 경소영
  • 승인 2016.09.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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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에서 미주한인성소수자부모모임과 작은자공동체교회 공동주최한 행사 열려
미국 사회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에게 성소수자 문제는 여전히 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사진 the 9th Annual Korean Pride Parade ⓒ 2008 M. Solis)

[뉴스 M = 경소영 기자] 성소수자 인권 의제는 현재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화두다. 그러나 같은 미국 땅에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성소수자 문제는 여전히 낯설다. 성소수자는 나라와 민족을 넘어서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이웃이다. 실제로 UCLA 법학대학원의 윌리엄스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 있는 아시아, 태평양계 인구 중 325,000명, 즉 2.8%가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 등)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는 동양계 성소수자 가족 및 지지자들이 모여 단체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성소수자 이슈가 있을 때는 협력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성소수자 관련 모임이 영어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가뜩이나 한인들은 성소수자 모임에 문을 두드리기 어렵다. 영어까지 불편한 한인 성소수자와 그들의 가족, 친구, 지지자라면 좀처럼 모임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

한자리에 모인 한인 성소수자와 지지자들 

그런 한인 성소수자와 지지자를 위한 모임이 처음으로 뉴욕에서 열렸다. 지난 11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작은자공동체교회에서 '한국계 미국인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들을 위한 워크숍'과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단편영화 '돌' 상영회를 진행했다. 미주한인성소수자부모모임과 작은자공동체교회가 공동주최하며, 아시아-태평양무지개부모모임, PFLAG NYC가 후원했다.

이날 모임에는 성소수자와 그들의 가족, 친구, 지지자들 30여 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한인 청년들은 밝은 웃음으로 서로를 반겨주었다. 누구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반면, 부모 세대로 보이는 몇몇 장년층의 한인들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공동주최를 맡은 작은자공동체교회 김동균 목사가 첫 모임의 시작을 알리려 앞에 나와 인사말을 건넸다.

"오늘은 사진 촬영도 극히 제한적이라고 들었어요. 사진 찍는 것까지 조심해야 할 만큼 성소수자들이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공동체와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교회를 비롯해 많은 분이 협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미주한인성소수자부모모임 클라라 윤 대표가 이번 워크숍의 취지를 설명했다.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한인 사회 안에서 2세들이 겪는 아픔은 큽니다.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성소수자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 자리를 통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가는 성소수자 청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 청년들에게 '한인 사회는 왜 이렇게 냉혹할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성소수자 권리를 지키고 지지하기 위해 활동하게 됐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소수자 부모이자 성소수자 지지자인 클라라 윤 대표는 이번 워크숍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뉴스 M> 유영

한인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듣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앤드류 안 감독의 단편영화 '돌'을 상영했다. 성소수자 남자 주인공이 조카 돌잔치에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괴로움, 가족에게 드러낼 수 없는 성소수자의 힘든 마음이 잘 표현된 영화였다. 안 감독은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약 9분간의 영화 상영이 끝나고 세 명의 패널과 토론하는 시간을 진행했다. 패널로는 20대 성소수자 두 명과 성소수자 가족이자 지지자인 클라라 윤 대표가 나섰다. 참석자들이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지지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이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진솔하게 나누었지만, 각자의 이야기가 한인 성소수자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영화 '돌'의 한 장면. 조카의 돌을 맞아 모든 가족이 모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성소수자의 고뇌가 담긴 영화다. ⓒ<뉴스 M> 유영

다음은 방청객과 함께 한 패널 토론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영화 '돌'을 보면, 성소수자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고 지지를 받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각자 커밍아웃의 경험이 있을 텐데, 특히 부모님께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준오(가명, 이하 김) : 저는 5살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어요. 부모님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편이라 아직 한국어를 잊지 않고 있죠. 제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해요. 새벽 네 시에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어요. 방에 들어서자마자 울기 시작했더니 엄마가 놀라서 저에게 다가오셨어요. 말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단어를 모르겠어서 '난 남자를 좋아해'라고 말했죠.

송가영(가명, 이하 송) : 제 부모님은 한국에 계세요. 저는 영어가 익숙하지만 부모님은 한국어가 더 편하시니까 커밍아웃은 한국어로 했어요.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기 무서워서 저는 전화로 했어요. (웃음) 사실 한국에서는 '동성애자'라고 하면 약간 부정적인 느낌이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선호해요. 부모님께 '저는 성소수자입니다'라고 했어요. 진실한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클라라 윤(이하 윤) : 제 아들의 커밍아웃은 곧 부모인 저의 커밍아웃으로 이어졌어요. 가장 난감했던 것이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말하는 것이었죠. 아들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밝혀야 했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특히 어머님께는 두 단계로 나누어서 이야기 했죠. 처음엔 '어머님의 손녀가 레즈비언이래요. 요새는 그런 경우가 많대요'라고 먼저 충격을 완화시키고, 두 번째에 ‘사실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말했어요. 지금은 많이 이해하고 계세요.

방청객(성소수자의 아버지) : 우리 딸이 어렸을 때는 남자 친구들이 많아서 잘 몰랐어요. 그런데 커갈수록 집에 여자 친구들을 많이 데려오는거예요. '혹시 우리 딸이 레즈비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어요. 짧게 몇 개월간 우리 부부가 고민하고 상의했는데 '만약 그렇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자. 언젠가는 이야기 하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 딸의 레즈비언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가 어느날 자살을 했어요. 자살 동기는 그 아이의 부모가 안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고통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건이 우리 부부에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더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결론을 내렸죠. '레즈비언이면 어때. 본인이 행복하면 됐지'라고요.

지금은 우리 딸이 성소수자인 것이 자랑스러워요. 우리 아이가 열심히 사회 생활도 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니까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우리 딸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더 도와주고 싶어요.

한인 사회에서 교회, 성당, 사찰 등이 매우 중요한 공동체이죠. 성소수자와 가족 입장에서 종교 단체로부터 받은 메시지가 있나요.

윤 : 한 지인은 우리 가족이 성당에 다니지 않아서 아들이 트랜스젠더가 된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들었어요. 물론 그분은 나중에 생각이 바뀌셨지만요. 워낙 성당이나 교회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한인 사회에서는 이러한 말들이 중요하게 여겨지죠.

송 : 교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사랑하지만, 동성을 사랑하는 행위는 금지해야 한다’고 말해요. ‘동성애를 고쳐야 너희를 받아주겠다'라는 거죠. 저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청년이었어요. 리더가 되려고 후보에 등록하러 갔는데, 규칙이 있대요. 그중 하나가 동성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더 이상 교회에 다닐 수가 없었어요. 실망을 많이 했죠. 교회를 나온 후로 한인 사회에서 멀어진 것 같아요. 저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도 지금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분들을 조금씩 다시 만나고 있어서 마음을 열고 있는 중이예요.

김 : 저는 성당에 10년 넘게 다녔어요. 동성애에 관련된 구체적인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분위가 자체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린 듯 했어요. '내 이야기는 어디에 있지, 내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꼭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나요.

송 :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할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일이니까 저희도 조심스럽거든요. 준비가 됐을 때는 당연히 지인들에게 알리게 되니까 꼭 기다려주세요.

둘째, 성소수자 각자의 이야기를 일반화시키지 말아주세요. '너네들은 어때? 그쪽 세계는 어때?'라는 질문을 받으면 좀 불편해요. 왜냐하면 제 얘기는 단지 저만의 이야기이고, 모든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예요.

셋째, 종교 단체의 모임이 있을 때,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성소수자 지지자들이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교회나 다른 종교 모임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침묵하지 말아주세요.

윤 : 저는 성소수자 부모 입장에서, 성소수자 지지자로서 말씀드릴게요. 주변에 아직 커밍아웃하지 못한 성소수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들은 지난 올랜도 사건처럼 두렵고 힘든 상황일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요. 그게 참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지지자들이 간접적으로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가볍게라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들이 성소수자에게는 큰 힘이 되어요.

성소수자 가족으로서 저처럼 앞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분들이 거의 없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한인 사회는 성소수자에게 냉담해요. 성소수자 또는 성소수자 가족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고요. 저처럼 공개해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인 성소수자 청년들이 클라라 윤 씨를 비롯한 성소수자 부모들과 가족,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클라라 윤 씨는 이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성소수자 청년과 포옹했다. ⓒ<뉴스 M> 유영

'연합과 지지'라는 말이 어색해 질 때까지

세 명의 패널은 각자의 경험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나누었다. 방청객으로 참여한 한 성소수자의 아버지의 고백 또한 많은 참석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이날 많은 성소수자와 가족,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패널 토론 후 소그룹 모임을 하며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기자도 한 그룹에 속해 그들의 진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성소수자의 어머니, 아직 커밍아웃하지 못한 청년,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기독교인, 이미 커밍아웃하고 미국에서 한인 성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 등 다양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울렁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눈물과 감격으로 가득찬 대화를 나누기에 약 40분 가량의 모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이번 워크숍에서 오갔던 각각의 이야기들은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더욱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워크숍을 공동주최한 김동균 목사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했다.

"성소수자는 그저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지금은 '연합, 지지'라는 단어를 쓰지만, 언젠가 그런 말들도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성소수자가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좋겠어요. 기독교인도 이웃 사랑을 넘어서서 '우리와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어떤 세상이 열릴까요.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작은자 공동체 교회 김동균 목사는 이번 워크숍의 공동주최를 맡으며, 성소수자에 대해 더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교회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포용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뉴스 M> 유영

이번 워크숍은 오는 10월 15일에 워싱턴에서 있을 '미주 한국 성소수자 세미나 부모 모임 세미나'로 이어진다. 미국내 성소수자 부모, 한국의 성소수자 부모,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자리다. 브라이트대 강남순 교수가 '기독교 커뮤니티 안에서의 성소수자 수용'을 주제로 강연한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한인 사회에 성소수자 지지와 이해를 구하고자 본격적으로 나서는 중요한 시점이다. 미주 전역의 성소수자 부모들이 공동체를 설립하고, 성소수자 자녀들의 인권 향상과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첫 걸음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 10월 15일 워싱턴에서 열릴 세미나에 대한 문의는 이메일로 가능하며 온라인으로 세미나 참가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

- 미주 한국 성소수자 부모 모임 : lgbtq.karp@gmail.com

- 세미나 참가 신청서 온라인 작성 : karpseminar.eventbri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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