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품 교회 / 온라인 사도행전(21)
신상품 교회 / 온라인 사도행전(21)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3.05.04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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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로 아둘람이 3주년이 되었다.  2020년 4월 어느 주일 아침에 페북 친구인 김수일 씨가 “여기 좀 들어가보세요”라 하면서 메시지를 남겨서 무심코 클릭을 했더니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몇몇 평신도들이 모였던 평신도 교회가 대면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서 비대면으로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임은 만난 적은 없으나 당당뉴스에 오래 동안 같이 칼럼을 써와서 피차에 이름만 알고 있던 왔던 신성남 씨가 주축이 되어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나를 알아보고 “지 목사 님이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주어서 금방 나올 수가 없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나는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을 퀘이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앙을 입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도 실제적이지 못하고 관념적 추상적 내용은 더욱 어색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다시 대면 예배가 시작되자 대부분의 오클랜드에 있는 평신도 교회 신자들은 돌아가서 온라인 모임은 소수만 남게 되어 더욱 빠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 안식년을 맞고 있던 뉴욕의 정영민 목사에게 참여를 요청하고 지인들에게도 권유를 시작했다. 이름도 처음의 ‘온라인평신도교회'에서 '아둘람온라인교회'로 했다가 ‘교회’가 아닌 ‘공동체’로 바꾸었다. 즉 새로운 공동체, '온라인공동체’의 실험인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계속 좋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세계적으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역동적이 되어갔다. 그러나 모임을 하면서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하게 되었다. 아둘람은 어느 누가 혼자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있는 모임이 아니고 가능한한 참여자 전원이 대화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주어진 시간에 효과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세련된 운영 기술을 가져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설교가 아니라 전체가 참여하는 토론 위주의 온라인 모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말의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언제나 말이 없는 사람 보다 말이 많은 사람 때문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한 번 발언시간을 2분으로 규정했다.

설교도 누구나 돌아 가면서 하기로 하고 이름도 ‘담화’로 바꾸었다. 10분 내외로 누구나 돌아가면서 의무적으로 해야 해서 40호봉 목사인 내 순서도 4개월에 한 번 정도 순서가 돌아온다.  담화 후 30분 정도 토론을 하는데 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매번 담화 때마다 기대를 하게 되고 결과는 항상 기대 이상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보통 4 달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와서 준비를 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목사들도 여러 명 참여를 하지만 목사 보다 평신도가 담화를 할 때가 더 귀한 내용들이 많아서 한 마디도 버릴 말이 없다. 왜냐하면 평생에 걸친 신앙의 결정체가 녹아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항상 높은 수준의 담화만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어떤 목사가 와서 아둘람의 분위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길거리 노방전도 수준의 막무가내 신앙관을 강력하게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잘 들어주고 성숙하게 토론을 했다. 바로 신앙에 관해서 어떤 자세도 포용하고 대화 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2021 9월에 비로소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ZOOM을 통하여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만나보니 역시 평소의 나의 지론인 “인간의 품격, 품질은 합리성, 현실성, 상식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귀한 사람들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지만 ‘창조 또한 필요의 아들’이다. 신은 오프라인 세상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온라인 세상을 창조했다. 그러나 온라인 세상을 만든 인간을 만든 원천기술은 신에게 있었으니 온라인 세상도 결국 신의 창조의 세계인 셈이다. 그러므로 온라인 공간에서 신앙공동체를 만든 것도 신의 창조의 작업에 동참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반드시 건물이 있는 교회가 필요하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Communication만이 필요할 뿐이다.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에게는 ‘신앙’이 즉 ‘교회 생활’이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에서는 신앙이 ‘교회’가 아니라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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