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시가 부적이 될 때
노래와 시가 부적이 될 때
  • 글벗
  • 승인 2024.02.2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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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멕시코 시티에서 일어난 비극

1968 10 12 열린 멕시코 올림픽은 200미터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명의 미국 흑인 선수가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오른 손을 높이 쳐든 장면으로 유명하다. 그해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 주니어 목사가 암살당한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1960년대 중후반은 세계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났으며 영향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모든 권위에 도전했기에 강의실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모욕당하는 장면이 익숙하던 시기였다. 미국에서는 반전운동과 히피 문화가 반 권위운동이었다면 흑인 민권운동은 흑인 생존권에 대한 간절한 운동이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권위를 부정한 까지는 비슷했으나 그것은 마오저뚱이 주도가 관제 혁명이라는 문제였다.

올림픽이 열린 멕시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은 마약으로 오명을 날리며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죄 국가로 그려지고 있지만 1960년대 후반에는 비교적 나가는 개발도상국이었다. 이런 발전에는 어두운 면도 있는 , 올림픽을 목전에 1968 10 2 틀라텔롤코 학살(Tlatelolco massacre) 일어났다. 멕시코시티의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반정부 시위대를 멕시코 정부가 학살한 것이다. 그해 9월에 학생운동이 정치범 석방, 집회의 자유 등을 요구하자 정부는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를 점령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 나왔는데 시민들까지 가세해서 "우리는 올림픽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혁명을 원한다!(¡No queremos olimpiadas, queremos revolución! )’ 구호를 외쳤다. 올림픽 개최에 사활을 걸었던 멕시코 정부는 진압을 위해 발포를 시작했고 과정에 3~400명이 희생된 대규모 학살이었다.

영화 로마에 나오는 틀라텔로코 학살 장면
영화 로마에 나오는 틀라텔로코 학살 장면

 

칠레 작가 로베르트 볼라뇨의부적’(김현균 옮김, 열린 ) 이런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군인들이 멕시코 국립자치 대학에 난입해 학생들을 잡아 아욱실리오라는 여성은 화장실에 숨어 13일을 버텨낸다. 우루과이 출신의 불법체류 여성인 아욱실리오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에 갇혀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노래와 시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선계(仙界) 넘나드는 점에서는 이외수의 소설벽오금학도같기도 하다.

아욱실리오는 멕시코 대학가에 전설처럼 떠도는 실존 인물로 1968 당시 같은 상황에 처했던 우루과이 여성 일시라(Alcira)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틀라텔롤코 학살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Roma)’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로베르트 볼라뇨는 소설의 제목을부적이라고 했을까? 그는 부적이라는 말을 소설 마지막에 쓴다.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랑을 있었을까? 계속 귓전에 울리는 노래만을 남긴채 그들이 계속에서 사라졌을 나는 궁금해졌다. 그들의 부모에 대한 사랑, 그들의 개와 고양이들에 대한 사랑, 그들의 장난감에 대한 사랑,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이 함께 나누었던 사랑과 욕망, 그리고 쾌락.

내가 들은 노래는 비록 전쟁과 희생당한 라틴 아메리카 젊은 세대 전체의 영웅적인 위업에 관한 것이었지만 나는 다른 무엇보다 용기와 거울들, 욕망 그리고 쾌락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있었다. 노래는 우리의 부적이다. (로베르트 볼라뇨, 부적, 열린책)

소설 제목 스페인어 amuleto 부적, 호신부(護身符, 몸을 지켜주는 부적). 한국의 부적은 주로 도상(圖像)으로 되어 있지만 서구 세계에서 몸을 지켜주는 모든 이미지, 행위, 도구가 부적이다. 한국의 부적보다 넓은 의미다.

액을 막고 복을 불러 들이는 제액초복(除厄招福)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면서 간절한 염원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 유지 욕구와 의지가 하나의 상징적 도상으로 표출되는 것이 부적이다. (김영자, 한국의 부적, 대원사)

부적은 저주용품과는 달리 오직 개인의 행복에만 관심을 갖는다. 볼라뇨에게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젊은이들은 투사라기 보다는 시와 노래를 즐기던 여느 젊은이들과 같았다. 다만 그들이 부르던 노래와 시가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었고 사소한 노래와 시를 모두 행복하게 부를 있는 세상을 만들려다가 죽어간 젊은이들을 기리는 소설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인용문에서 '그들'은 망자들이다. 노래가 망자들의 영혼도 지켜주는 부적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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