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글벗
  • 승인 2024.01.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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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뮌처와 마르틴 루터의 관계

통성기도, 방언기도, (특별) 새벽기도, 목적기도, 중보기도, 침묵기도 등등. 기도의 종류도 많다. 슬라보예 지젝은 그의 시차적 관점에서오늘날에는 오직 무신론자들만이 기도를 것” 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장르로 드려지는 유신론자들의 기도가 향하는 곳은 욕망의 지점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을 르네 지라르의 말로 바꾸면 모방이다. 우리의 기도는 코인이나 주식으로 돈을 사람들의 재산증식을 욕망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 전문직을 가진 이웃집 자녀의 삶을 모방하라고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그럴 바에야 오늘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진중하게 따지는 무신론자들이 종교적이지 않겠느냐는 지젝의 일갈이다. 기도의 대상이 초월자가 아니라 옆집 남자와 뒷집 자녀들을 모방하는 기도라면 간절히 모은 손을 잘라버리는 편이 낫다.

잘라라, 기도하는 손을’(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자음과 모음) 책과 혁명에 관한 기록이다. 무언가를 욕망하기 위해 손을 모으기 보다는 읽고 쓰는 행위가 혁명 과감한 변혁을 가져 온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문맹자인 무하마드가 붓을 쥐었을 쓰라!” 음성을 들었다. 이슬람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성서를 읽다가 자신이 배워웠던 이야기들이 성서에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열심히 성서를 읽는 중에 교회의 왜곡을 발견하고 95 반박문을 자신의 성당앞에 게시했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서막이 되었다.

종교개혁의 연장 선상에 있지만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말았던 농민전쟁도 읽고 쓰는 힘이었다. 루터가 토마스 뮌처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아서 농민전쟁을 일으킨게 정설같지만 사사키 아타루는 오히려 농민전쟁은 완전히 루터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농민전쟁을 일으킨 이들도 성서에서 정당한 준거를 찾았고, 요구가 신의 성서에 반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요구를 취소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요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의적인 수탈 절차를 중지하라. 농노제를 폐지하라. 제후에 의한 수렵이나 어로의 자의적인 제한을 철폐하라. 농지의 임대 기간을 엄수하되 의논하지 않고 단축하지 마라. 산림에 들어갈 있는 권리를 반환하라. 멋대로 사유화한 공유지를 반환하라. 성문법에 의한 정당성있는 재판을 행하라. 교회가 억지로 빌려준 돈의 이자를 받지 마라. 합법적인 이유없이 부당하게 빼앗은 토지를 돌려주라 운운.당연하고 정당한 요구들 뿐입니다. 부당하게도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명문화된 텍스트가 선행합니다. 95개조의 의견서가 있었던 것처럼 12개조의 요구가 있습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여기서 흘린 피는 무익하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전쟁이 종결된 이듬해인 1526 슈바이엘에서 열린 제국의회에서 황제에게 보고된 보고서가 12개조의 요구에서 많은 것을 빌어 왔고 대부분이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현대 사회 분쟁의 발단이 되는 근본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의 노년 층에서 특히 심각하다. 읽기 보다는 나누며(퍼나르기) , 쓰기 보다는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로 그들의 의사를 표현한다. 이런 이들을 향하여 지은이는 이렇게 외친다.

“어차피 읽히는, 읽히는 것밖에 읽지 않는, 읽지 않아도 이미 안다며 얕보고 읽지 않는 안일함이 죽음을, 한없는 죽음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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