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체제 넘어서 '사법독재 시대' 끝내기

제6공화국 헌법의 공백을 악용한 법복 입은 비적들의 전성시대

  • 기사입력 2024.09.02 11:35
  • 기자명 이태경 부소장/토지+자유연구소

87년 체제는 열광과 낙담,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와 반동 정부로의 퇴행이라는 영겁회귀에 갇혀 있다. 이는 민주당의 실력부족과 의지박약에도 상당부분 기인하지만 본질적으로는 87년 체제, 더 정확히 말하면 6공화국 헌법의 내재적 한계에도 일정 부분 연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의 집권을 선거의 외피를 쓴 연성쿠데타의 성공이라고 규정할 때 문재인 정부의 무능 및 유약함과는 별개로 검찰, 법원 등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사실상 전무했던 6공화국 헌법의 공백에서 가능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즉 6공화국 헌법은 군부독재의 재현 예방에만 골몰한 나머지 법복 입은 귀족들이 법을 무기로 법치주의를 참칭(僭稱)하면서 주권자의 주권을 일상적으로 강탈하는 것을 저지할 장치가 사실상 부재했다.

형사사법에 관해 거의 모든 권한을 한 손에 거머쥔, 그리하여 통상의 문명국에선 존재할 수 없는 검찰은 말할 것도 없지만 87년 헌법은 법관들에게 너무나 많은 권한과 재량을 부여했다. 군사깡패들의 위세에 눌려 법관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들은 사법권을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도록 해주면 법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기본권 보장과 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의 최후 보루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믿었다.

기대가 환멸로 바뀌고, 믿음이 배반에 자리를 내주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권자들이 피투성이 싸움 끝에 군사깡패들과 인간백정들과 반란군 두목들을 축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시키고 법원에 사법권을 속하게 만들자, 민주화에 손톱만한 기여(기여는커녕 훼방만 놓았다)도 하지 않은 법관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독식하며 사법권을 마치 사유물처럼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헌법의 주요 기본원리 중 하나인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관의 지배'로 완벽히 전락했다.

 

근래 우리가 신물나게 경험 중인 것은 직업법관들로 구성된 법원에게만 사법권을 속하게 할 경우, 직업검사들로 구성된 검찰에 검찰권을 독점시킬 경우, 어떤 파멸적 결과들이 초래되는가이다. 법원의 구성·재판 과정·법관에 대한 탄핵 등 사법의 전 과정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가, 검찰의 구성·검찰의 권한 조정·기소 과정·검사에 대한 탄핵 등의 검찰권 구성 및 행사의 전 과정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가 담보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사법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또한 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이면서도 윤 정부 하에서 공소권 남용 사실까지 확인된 검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마저 기각시킨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도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수술이 긴절하다. 헌법재판관의 구성부터 재판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권한에 이르기까지 주권자의 통제가 반드시 필요함을 매일매일 확인하는 요즘이다.

법률로 가능한 것은 그것대로, 헌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것대로 각각 준비하고 추진해 법원에 속한 사법권과 검찰에 속한 검찰권을 원래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탄생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으면서 대한민국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종심급 행세를 하는 헌법재판소도 본분을 일깨워줘야 할 것이다.

알량한 시험 한 번 합격한 것으로 웃기지도 않는 신(神) 행세를 하고 있는 법관과 검사와 헌법재판관들에게 ‘너희들도 어김없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인간이며 주권자의 종복’임을 상기시켜 줘야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전하는 충고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과 헌법재판소에게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들이 숭배하는 미국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쓴 불후의 명저 '연방주의자 논설' 중 한 대목을 들려주고 싶다. 경청하기 바란다.

“​만일 인간이 천사라면, 어떤 정부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천사가 인간을 통치한다면, 정부에 대한 그 어떤 외부적 또는 내부적 통제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해 인간에 의해 운영될 정부를 구성하는 데서 최대의 난점은 여기에 있다. 먼저 정부가 피치자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정부가 그 자체를 통제하게 해야 한다. 인민에 대한 종속은, 의문의 여지 없이, 정부에 대한 일차적 통제이다. 하지만 경험은 인류에게 보조적 예방책의 필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더 나은 동기의 결핍을, 상반되고 경쟁하는 이해관계를 이용해 보충하는 이런 방책은 인간사의 모든 공적·사적 체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특히 권력을 하위〔직급〕에 배분하는 데서 그런 방책이 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불변의 목표는 각자가 서로에 대한 견제 수단이 될 수 있고, 모든 개인의 사적 이익이 공적 권한의 파수꾼이 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각각의 직책을 배분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빈틈없는 고안물은 국가의 최고 권력을 배분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필수 불가결하다”

-연방주의자 51번 [매디슨] 1788. 2. 6.

​제임스 매디슨은 불완전한 인간이 정부를 구성해 통치할 때는 인간의 덕성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구성된 정부에 대한 외부적 또는 내부적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제임스 매디슨은 (주권자는) 정부를 구성하는 각자가 서로에 대한 견제수단이 될 수 있도록 각각의 직책을 배분하고 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매디슨이 본 인간은 불완전하며, 정념에 휘둘리고, 특권에 경도되는 인간이다.

설마 자신을 천사라고 생각하는 검사와 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없을 것이다. 인간에 불과한 검사와 법관과 헌법재판관이 각각 구성하는 검찰과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다른 국가기관과 나누고(내부적 통제), 주권자인 국민이 외부에서 기관의 구성·기소 및 재판과정·기소관 및 법관(헌법재판관)에 대한 징계참여 등의 방법과 경로로 검찰과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통제(외부적 통제)하는 것은 매디슨에 따르면 너무나 정당하고 합리적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온전히 구현되기 위해선 주권자가 직접, 간접의 방법을 통해 기소관이 되고, 법관이 되고, 헌법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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