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도 5.18이 있었다

대구의 5.18, 두레 양서조합 사건

  • 기사입력 2025.05.17 12:31
  • 최종수정 2025.05.18 05:25
  • 기자명 글벗

1980 5 대구에도 5·18 광주 항쟁에 호응하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중요한 사건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놀라웠습니다.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을 펴낸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의 말은 한국 민주화운동사에 놓인 커다란 공백을 일깨운다. 우리는 광주에만 5월’이 있었다고 믿어왔지만, 책은 대구에서도, 비록 미완의 형태로 끝났으나 분명한 항거의 몸짓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되살려낸다.

두레양서조합은 1970년대 유신 말기의 금서 조치에 저항하며 양질의 사회과학 서적을 보급했던 책방이었다. 경북대 후문 앞에 있던 서점은 대학가 농촌운동 서클과 가톨릭농민회를 잇는 지식과 연대의 거점이자 민주화운동의 숨은 기반이었다. 1980 5, 이들은 광주에서 전달받은 ‘전두환의 살육 작전’ 문건과 학살 테이프를 입수하고, 대구 시민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한 행동을 계획했다. ‘민주시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유인물 5,000부가 준비되었고, 5 27 동성로 시위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계엄군의 광주 장악 소식에 계획은 철회됐고, 유인물은 불태워졌다.

하지만 미완의 시도조차 군부의 탄압을 피해갈 없었다. 같은 9, 두레서점은 사복 경찰들에 의해 급습당했고, 100 명이 영장 없이 연행됐다. 군부는 사건을 ‘인혁당 잔존 세력이 조직한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하려 했다. 14명은 전기고문, 물고문, 성고문 극악한 고문을 당했고, 간첩 혐의는 벗었지만 빨갱이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10 넘게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고,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누릴 없었다. 누군가는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는 살아남은 죄책감에 평생 입을 닫고 살아야 했다.

책의 저자 김상숙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던 시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연구 과정을 통해 사건을 처음 접했다. 같은 경북대 출신이자 새내기 시절 차례 방문했던 두레서점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그는, 무명의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침묵의 세월에 충격을 받았다. 책은 충격에 대한 응답이자, 잊힌 진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표현이다. 피해자들과의 구술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의 맥락과 구조, 국가폭력의 실상을 복원해낸 연구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빠졌던 퍼즐 조각 하나를 끼워 넣는다.

2022 5 18, 사건으로 기소되었던 피고인 전원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구지법은 당시 계엄포고령이 헌법과 계엄법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적용 법률의 모호성과 포괄성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무죄 판결은 단순한 법적 정정이 아니다. 광주를 향한 대구의 연대가 명예를 되찾은 것이며, 억울하게 고문당했던 시민들의 삶을 다시 품는 사회적 사과이기도 하다.

두레 사건은 결국 유인물조차 뿌리지 못한 실패한 항쟁으로 끝났지만, 정신은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지 기억만이 아닌, 진상 규명과 가해자 책임, 피해 회복이라는 역사 정의의 완성을 요구한다. 저자는 지휘 명령 체계는 물론, 고문 가해자들도 아직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끝까지 말하지 못한 침묵의 무게”가 오늘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라고 말한다.

책에는 양서조합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사람들의 여러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김영석씨 인터뷰 일부다.

5.18 겪고 수형 생활을 했더니, 마음속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찼었죠. 울분을 삭이는데 15,20년이 걸린 같아요. 고문당했던 일은 잊고 있다가도 갑자기 불쑥불쑥 기억났어요. 몸이 기억하다 보니 세수할 코에 들어가는게 싫고 목욕탕이나 수영장에 가면 잠수를 못해요. 몸이 받아 주더라고요. 해마다 5월이 되면 몸살을 하고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워져요. (중략) 예전엔 무엇이든지 메모하고 일기도 열심이 썼는데 사건을 겪은 후론 일기도 쓰고 메모도 하고 무엇이든 증거를 남기려고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상생활을 한계가 있더라고요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김상숙 지음, 책과 함께)은 지역사 복원의 차원을 넘는다. 광주에 고립되지 않은 1980년의 진실을 보여주는 책은, 5·18 전국적 항쟁이었다”는 역사 인식의 전환점이다. 우리가 이제라도 ‘대구의 5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그것이 ‘우리의 5월’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과 침묵을 포착하는 감수성에서 다시 시작된다.

 

5.18 의미를 폄훼하거나 광주만의사태 보는 이들은 정치인의 자격이 없다. 아니 그냥 인간으로서도 실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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