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는 ‘청춘의 독서’(웅진 지식하우스)에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헨리 조지가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역설적 현실의 원인을 토지 사유 제도에서 찾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토지 단일세(Single Tax)를 통해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사회 전체의 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헨리 조지의 이상을 높이 평가했다. 유시민은 이 책을 2009년에 처음 출판했는데 이번에 특별증보판으로 다시 나왔다. 어느 시대에 읽어도 그 시대를 꿰뚫고 있는 고전의 특징과 유시민 다운 책읽기가 콜라보를 이뤄 명저를 만들어 내었다. 특히, 그가 ‘진보와 빈곤’을 읽으며 "더 이상 땅을 사고팔아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역설한 부분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는 부동산 불패 신화와 자산 불평등의 심화를 앞서 예견한 듯하다. 이 이야기는 유시민이 2020년 12월 노무현재단 유튜브 '알릴레오 시즌3' 도서 비평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유시민은 헨리 조지가 리카도의 농업 지대론을 넘어 도시화와 산업화 시대의 핵심 불로소득원인 도시 토지의 지대에 주목했음을 명확히 짚어냈다. 즉, 토지 소유자가 아무런 노력 없이 사회 전체의 발전과 인구 집중의 결과로 발생하는 지대 상승의 과실을 독점하는 현상이야말로 빈곤의 근원이며, 이는 불합리한 분배를 초래한다는 헨리 조지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유시민의 해석은 독자로 하여금 헨리 조지의 사상이 단순한 고전 경제학의 한 줄기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인 자산 불평등과 불로소득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통찰임을 인식하게 한다. 그의 해설 덕분에 헨리 조지는 많은 한국인에게 '토지 단일세'의 개념과 함께 소환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유시민의 이러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해석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복잡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비판적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이 헨리 조지의 사상을 통해 제시한 문제 의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가 강조한 해결책으로서의 '토지 단일세'는 현실 적용에 있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심화된 21세기의 자본주의 현실에서 이상주의적 면모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다. 토지 단일세는 토지의 공공성을 극대화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자는 강력한 제안이지만, 이는 토지의 사적 소유 개념에 기반한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대한민국에서 토지 공개념이나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같은 논의가 '반헌법적',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거센 저항에 부딪히는 현실은 헨리 조지의 주장이 얼마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시민의 분석에서는 이러한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저항의 크기와 복잡성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다소 부족하다. 헨리 조지의 사상이 단순히 '옳은 주장'이라고 해서 쉽게 현실화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유시민의 해석은 독자에게 헨리 조지의 이상을 고양시키지만, 동시에 그 이상이 왜 현실에서 좌절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까지는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특히 오늘날의 빈곤문제는 토지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자본 이동, 디지털 경제의 도래와 플랫폼 노동의 확산, 기술 발전과 자동화로 인한 노동 시장의 변화, 교육 불평등, 그리고 금융 자산의 집중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심화되고 있다. 특히 자본 소득 불평등은 토지 소득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헨리 조지 시대에는 금융 시장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자본 소득이 전체 불평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암호화폐,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 자산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이는 소수에게 집중되어 자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유시민의 해석은 헨리 조지의 관점에 충실한 만큼, 현대 사회의 복합적인 불평등 요인들, 특히 토지 이외의 자본 소득 불평등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헨리 조지는 자신의 핵심 주장(토지 단일세, 불로소득 환수 등)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실제로 정치 활동에 뛰어들었으나, 선거에서 연이어 실패했다. 그는 1886년 뉴욕 시장 선거(연합노동당 후보)에서 2위로 낙선했고, 1887년 뉴욕주 국무장관 선거에서는 3위에 그쳤으며, 이후 1897년 건강이 악화된 가운데 무소속으로 다시 뉴욕 시장 선거에 도전하다가 선거 직전 사망했다. 그의 연이은 낙선에는 당내 분열, 마르크스주의자 등 이념 갈등, 기득권 세력의 견고한 저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기득권의 저항, 그리고 정치권이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아닌 ‘가짜 이익’과 불합리에 현혹되는 구조 역시 헨리 조지의 시대나 현대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그는 자체 저술과 활동을 통해, 토지 소유권을 가진 기득권이 사회적 개혁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며 제도 변화나 불로소득 환수에 비협조적임을 반복적으로 지적했다. 이런 기득권의 저항과 개혁 실패, ‘정치권이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모습’ 등은 헨리 조지 당대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유시민 자신이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개혁의 좌절을 경험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헨리 조지의 이상이 왜 현실 정치에서 좌절될 수밖에 없는지, 그 메커니즘과 타협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순히 정치권이 '가짜 이익에 현혹'된다는 비판을 넘어, 토지 개혁이 지니는 사회적 파장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역학 관계, 그리고 이를 조율하기 위한 현실적인 정치적 전략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다는게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헨리 조지를 통해 제기한 문제는 2025년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노동 소득으로 아무리 벌어도 부동산 자산 소득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망감을 청년 세대에게 안겨주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나 '벼락 거지'와 같은 신조어들은 부동산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사유재산 제도의 근본을 흔들지 않으면서 불합리한 불로소득을 환수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토지 공개념'을 둘러싼 논의에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의 주장은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제 체제 내에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개혁적 자본주의의 한 갈래로 해석될 수 있다.
유시민이 헨리 조지를 통해 던진 화두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뜨겁게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토지 문제만이 아닌 자본 소득 불평등, 기술 발전과 노동 시장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을 포괄하는 보다 정교하고 실현 가능한 불평등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지난 책 : 유시민,<국가란 무엇인가>
이번 책 : 유시민, <청춘의 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