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백을 만든 그녀
샤넬 백을 만든 그녀
  • 글벗
  • 승인 2024.01.17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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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무는 독서 일기) 샤넬 핸드백에 어깨끈이 없었다면

1895 3 프랑스 오바진 마을의 수도원에 3명의 여자 아이가 버려진다. 아버지는 얼마전 아내를 잃고 딸을 키울 자신이 없어 수도원 부설 고아원에 맡겨 버린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버려지지 않았다. 13, 12, 8살의 딸은 그후로 다시는 아버지를 없었다. 그중 12살짜리 가운데 가브리엘이 나중에 커서 명품 브랜드 샤넬을 시작한 코코 샤넬이 된다.

 

샤넬은 고아원 생활을 거짓말로 일관했다.

가브리엘은 아버지가 거대한 포도 농장을 갖고 있는데 포도주 수출 사업 때문에 뉴욕에 거주하고 있어서 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아버지는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니까 미국에서 돈을 버는 것은 장난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업에 전념하고 있어서 코레즈 지방의 빈곤한 마을까지 시간이 없는 것이라고 붙였다.

사소한 일로 대서양을 건너올 필요까지 없어!” 하고 가브리엘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해서 어린 가브리엘은 아버지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꿈을 구체적으로 꾸며내기 시작했다. (코코 샤넬, 앙리 지델 지음, 이원희 옮김, 작가정신)

한국 사회에는 1960 8 17일자 경향 신문에 파리에서 열린 샤넬 컬렉션 기사가 실렸다. 1986 롯데 면세점에 처음 입점했고, 1991 샤넬 코리아를 설립한 후 1997 갤러리아 백화점에 진출했다. 2023 연말 샤넬 핸드백은 모종의 구설수에 올랐다.

코코 샤넬이 어깨끈을 달기 전까지 모든 여성들은 손에 핸드백을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끈을 연결한다고 해도 손목에 있는 정도의 짧은 끈이었지요. 샤넬은 여성의 손이 핸드백에서 자유롭기를 바랬고, 그래서 핸드백에 어깨끈을 달게 되었습니다.

만약 코코 샤넬이 핸드백에 어깨끈을 달지 않았다면 아직도 수많은 여성들이 가방을 들고 다닐 때에는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없었을 것입니다. (코코 샤넬, 오영석 지음, 다산어린이)

코코 샤넬의 삶은 명암이 교차했다. 잦은 거짓말, 나치 스파이설 등이 그녀의 어두운 면이다. 나치 스파이설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은 후에 고향 프랑스에 묻히지 못하고 스위스에 묻혀야 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밝은 면을 보자면 남성들에 의존해야만 여성들의 지위를 보장받을 있던 시절, 샤넬은 그런 여성들을 향하여매춘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끈없는 핸드백도 여성들의 독립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남성들의 색깔로 여겨지던 검은색을 과감하게 여성의 패션에 적용한 것도 그녀였다. 샤넬의 창의성은 소련을 자극해 향수 샤넬 No.5 레드 모스크바 향수가 등장하게 만들었다.

2023년말 한국 사회 논란의 중심에 섰던 샤넬백을 좋아하는 그녀는 코코 샤넬의 어떤 면과 닮아 있을까?

# 다음 독서 일기 주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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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2024-01-18 08:20:40
인간의 욕심. 그것을 이용한 악마의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