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 힘러의 마사지사와 윤석열을 마사지한 부역자들

이안 부르마, '부역자'

  • 기사입력 2025.04.10 00:38
  • 최종수정 2025.04.12 23:13
  • 기자명 글벗

펠릭스 케르스텐(1898~1960) 홀로코스트를 이끈 나치 고위 인사 하인리히 힘러의 전속 마사지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케르스텐은 티베트와 중국에서 익힌 독특한 마사지 기술을 가진  코박사로부터 마사지를 배웠다고 하는데 코박사라는 사람이 실존 인물인지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그는 이런 부정확한 경력으로 '손끝에서 마법이 나오는 사람’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홀로코스트의 최고 기획자 하인리리 힘러의 마사지사가 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패배가 눈앞에 다가오자, 케르스텐은 자신의 생존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며 유대인을 구하려 노력했다고 밝혔으며, 힘러를 설득해 네덜란드 주민을 동유럽으로 강제 이주시키려던 계획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점령 지역에서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려던 음모 역시 중단시켰다고 전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회고록을 그는 전후에 출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안 부르마의 부역자’(윤영수 옮김, 글항아리)’에는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에 기여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인리히 힘러의 마사지사였던 펠릭스 케르스텐은 그중에서도 단적으로 ‘권력의 안락함’을 상징하는 존재다.

 

한국 사회는 지금 마지막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사건은 단순한 권력자 개인의 추락이 아니라, ‘권력의 사유화’와 ‘헌정 파괴’를 가능하게 했던 전체 생태계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생태계 안에는 힘러의 마사지사처럼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협력했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케르스텐처럼 눈에 띄는 가해자가 아니다. 법복을 입고 중립을 말했고, 강단 위에서 합리성을 설파했으며, 카메라 앞에서 언론 자유를 말하면서도 검찰권 남용에는 눈을 감았다. 그들 대부분은 직접 명령하지 않았고, 총도 들지 않았다. 다만 체제에 거슬리지 않도록 움직였고, 불편한 진실을 피하고, 가능한 자기 자리에서 무사히 다음 정권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런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마사지사다.

이승만은 부역이라는 말을 전쟁 이후에 끌어다 썼다. 진짜 부역자였던 친일 세력을 처벌하지 않았기에, 권력의 정당성을 위해선 가짜 부역자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한국 전쟁 생존을 위해 하는 없이 협력했던 양민을 부역자로 처단했고 전쟁 이후 친일은 더욱 건재해졌다

프랑스는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전후, 수많은 나치 협력자들이 단죄되었고, ‘국민 화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과정에서 가장 선명한 윤리의 목소리를 인물이 알베르 카뮈였다.

카뮈는 나치 점령기에 레지스탕스 언론콩바(Combat)’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단순한 저항이 아닌, 진실의 윤리와 기억의 정의를 지켜내려 했다. 그는콩바 통해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 언론인들과 지식인, 기업가, 관료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강력한 도덕적 비판을 가했다. 그에 따르면 “관용은 정의가 이뤄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고, 진실을 덮은 흘러가는 용서는 공모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카뮈는 부역의 본질을 사악한 동기가 아니라 비겁한 침묵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는 언젠가 우리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책임져야 한다”고 썼다. 책임은 단순히 과거를 밝히는 그치지 않는다. 기억을 기록하고, 이름을 남기고, 권력에 침묵한 목소리를 드러내는 , 그것이 전후 프랑스 사회에서 부역을 단죄한 핵심이었다.

또한 카뮈는 부역자를 처벌하는 기준에 있어서도 정치적 편의가 아니라 도덕적 일관성을 요구했다. 그는 드골 정부조차도 부역 단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고, ‘콩바 실린 글에서는 “레지스탕스는 전쟁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후 사회를 정의롭게 세우는 과제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적었다.

점에서 보면, 윤석열 정권을 가능케 한국 사회의 구조 역시 단죄의 대상을 몇몇 핵심 인물에 한정할 없다. 말을 아꼈던 법조인, 회피한 언론인, 침묵한 지식인, 중립을 핑계 삼은 전문가들 모두가 체제를 가능하게 요소였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공범이면서 동시에, 다음 정권에서도 살아남을 준비를 끝낸 사람들이다.

카뮈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언제부터 그들과 함께 있었는가? 그리고 언제 침묵을 선택했는가?

한국은 질문에서 도망쳤다. 박근혜 탄핵 이후도 그랬다. 국정농단은 몇몇 인물의 사법처리로 끝났고, 체제를 유지한 수많은 사람들은 곧장 새로운 권력에 자리를 틀었다. 그래서 부역은 반복된다. ‘그때 사람들’이 이름만 바꾸고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제 윤석열 이후의 정국에서그때 사람들 다시 불러내서는 안된다. 질문은 누군가를 형사처벌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억의 목록에 올려야 한다. 한국 사회가 어떤 권력을 용인했는지, 누가 권력의 안락한 소음을 만들어주었는지를. 케르스텐도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는 그에게부역자라는 이름표를 달아 주었다.

부역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뒤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사람, 말없이 서류를 넘기는 사람, 아무 없이 회의실을 나가는 사람. ~ 또있다. 난데없이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도 내란 처벌의 대중적 열망을 희석시켰다는 점에서 부역자에 포함시켜야 한다. 한덕수는 어디에 속하냐고? 그는 유시민의 말처럼내란 수괴 권한대행이다. 부역 정도로 처벌할 수준이 아니다.

꼬리를 무는 독서일기 지난 주제 : 계엄령

꼬리를 무는 독서일기 이번 주제 : 부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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