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치적 왕조를 무너뜨렸습니다. 앤드루 쿠오모에게는 사적인 행복만을 기원합니다. 그러나 오늘 밤, 그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소수만을 위해 다수를 외면하던 정치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뉴욕이여, 오늘 밤 당신은 해냈습니다. 변화를 향한 사명, 새로운 정치를 향한 사명, 그리고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도시를 향한 사명을 이루어냈습니다.”
위에 인용한 글은 11월4일 미국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조란 맘다니의 당선 소감문 중 일부이다. 우간다 출신으로 34세의 인도계 무슬림 하원의원, 심지어 본인이 민주사회주의자라고 선명한 깃발을 들고 뉴욕의 거물들을 차례로 무너트리며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시의 111대 시장이 된 것이다. 2024년 10월23일 뉴욕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니 1년 정도 만에 기적을 만들어냈다. 출마 선언 당시 지지율은 1%로 되지 않았다.
시내버스 무료화, 공공 보육, 시영 식료품점 설립, 임대료 동결, 공공임대주택 건설, 부유층과 기업 증세 등, 트럼프가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할 만큼 급진적인 공약을 내세우면서 당선됐다. 1차 관문인 민주당 경선 경쟁 상대는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였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였다. 그러나 무관심은 우려로 바뀌었고 우려는 기적과 같은 현실로 바뀌었다. 파격적인 진보 정책과 시민 속으로 들어가서 현실의 고통에 공감하고 지지자가 함께 참여하는 캠페인으로 뉴욕의 MZ세대들을 열광시켰다.
캠페인 과정에서 형성된 2만 7천여 명의 지지자들은 그들 스스로 거리에서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지지자들은 선거 캠프에 와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맘다니의 메시지를 뉴욕시 전체에 확산시켰다. 캠페인의 핵심은 SNS였다. 지지율 1위 앤드루 쿠오모가 레거시 미디어에 340억 원을 퍼부으며 돈 잔치 캠페인을 벌이는 동안, 조란 맘다니 SNS를 중심으로 열성적인 지지자들과 캠페인을 펼쳤다. 특히 코니아일랜드 겨울 바다에 양복 정장을 입고 뛰어들며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 공약을 얘기한 영상은 1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6월에 있은 앤디 쿠오모와의 경선에서 가볍게 승리한 맘다니는 경선을 불복하고 민주당을 탈당한 채 본 선거전에 뛰어든 쿠오모를 10%p에 가까운 격차로 승리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엄청난 사건이다. 말도 안 되는 대역전극이 펼쳐진 것이다. 조란 맘다니는 역사상 최고 수준의 좌파 공약으로 당선된 것이다. 30년 동안 선거 컨설팅을 해 온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에는 맘다니 같은 혁신적인 정치인이 있을까? 서민과 시민들의 고통에 들어가서 그들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정치인이 있는가? 모든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신념을, 선거를 통해 돌파하려는 정치인이 있는가? 맘다니는 2025년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아마도 지금 여의도나 그 어느 선거전에서 맘다니 같은 주장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대다수가 ‘미친 x’이라고 욕을 하거나 ‘분별없는 몽상가’라고 외면할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보다 더 자본주의 원칙과 정신이 뿌리 깊은 뉴욕시에서 맘다니같은 주장으로 시장으로 당선된다고?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맘다니 뉴욕시장을 만든 것은 트럼프의 인종 혐오·반이민 정책, 파시즘적인 정책이 큰 동기가 되었을 듯하다. 더 나아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미국 경제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부의 양극화가 가장 심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추악한 이면 때문에 발생했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12.3 내란을 통해 발생한 국가 위기를 6개월에 걸친 국민의 투쟁으로 극복해 냈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의 탄생도 다수를 지배하는 소수의 권력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위대한 뉴욕 시민들의 투쟁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조란 맘다니가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은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 캠페인에서 보여준 그의 능력이라면 재선, 삼선 아니라 그 너머의 큰 꿈을 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맘다니를 보면서 직업이 국회의원이 된 정치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조란 맘다니를 보며, ‘지금 우리에게는 왜 저런 정치인이 없을까’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